
서울구치소 우리 방 최고령 수감자의 나이는 당시 65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웃으면 그 얼굴이 얼마나 인자하고 귀엽던지, 눈밑을 감싸는 굵은 주름하며… 쳐다보는 마음마저도 푸근해졌다. 흡사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 같달까. 어느 날 삼존불 할머니가 면회하러 나간 사이, 깜빵 동료들에게 그녀의 범죄에 얽힌 전말을 듣게 되었다.
경동시장인지 어딘지, 큰 시장에서 장사하다가 인근 상인들과 ‘계’를 조직해 계주가 되어서는, 곗돈을 가지고 날랐다는 건 꽤 흔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그 심보와 기세가 남달랐다. 50억은 된다는 큰돈을 꿀꺽하고는 붙잡혀 와서, 5년형을 몸으로 때우고 있단다. 돈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삼존불 할머니 가라사대, “내가 잘 숨겨 놨지. 자식들도 모르지. 그것들이 알면 날 면회라도 오겠어?”
그 말을 하며 짓는 비릿한 그녀의 미소. 문득 그 주름 사이에 덕지덕지 숨어 있는 심술이 느껴졌다. 피해 상인들이 일부 돈만이라도 되돌려 받으려 했지만, 결국 당사자에게 실형을 살리는 것 외엔 얻어낸 것이 없다고 했다.
생리 때만 되면 도벽이 발동해서, 이미 여러 차례 빵살이 중인 오십대 ‘분홍 입술’도 있다. 유독 입술 빛깔이 인공적인 분홍색이라 눈에 띄었는데, 이유는 입술성형을 해서라고 했다. 드라마 속 애순이처럼 단정한 단발이 인상적이었는데, 간혹 자신의 애정사를 늘어놓곤 했다. 일본인 사업가 애인이 얼마나 자신에게 자상했는지를. 그때만큼은 아련한 눈빛의 소녀가 되곤 했다. 나는 빵 안에서 사랑니 때문에 엄청난 치통을 경험했는데, 타이레놀 한 알을 어금니로 꽉 물고 있으면 좀 낫다고 알려 주었다. 손톱깎이로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기도 했고 심지어 얼굴의 점을 뽑아 주기도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단숨에 손톱으로 파냈다. 한참 후에 한 대학 동기는 “잃은 것은 점이요, 얻은 것은 빵살이”라고 이 시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중 이야기지만, 석방되고 며칠 뒤, 택시 안에서 라디오 저녁 뉴스 한 자락으로 분홍입술 소식을 듣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생리 때 생기는 도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오십대 이 여성은 가게에 진열된 옷이나 소품 등을 수차례 훔쳐 수감되었고, 이번 석방은 세 번째였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수감자들로서는 알 길 없는 소문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여기 안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품 중에 잠옷이 있었어. 근데 어느 해엔가 잠옷으로 목매 자살해서 그 후 팔지 않게 되었지.”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진위 확인이야 할 수 없었지만, 납득은 갔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현상에만 착목해서 근시안적인 해결방법을 내세우는 건 빵 안에만 있는 일은 아니기에. 한 번은 옆 방 누군가가 복도를 향해 야지를 떴다. 구치소 내 처우개선에 관한 것인 듯했다. 자세한 내용을 미리 전달받지 못했지만 쇠창살에 매달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심히 불렀다. 거의 방마다 있던 국보들의 우렁찬 구호도 따라 외쳤다. 후에 우리 방 사람들은 “맨날 조용하더니 잘 부른다”며 기특해하셨다.
당시 바깥세상에서는 ‘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살해’사건이 화제였다. 살인범인 그 임신부가 다른 방에 수감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방안에서도 미움을 받는다고 했다. 점심 식사 후 모두들 줄지어 운동장에 나가 한 시간씩 볕을 쬐는 시간 동안, 그렇게 좁은 방의 세상은 다른 공간과 연결되고 소통되기도 한다. 밖에서 미워하면 빵에서도 그랬다. 더 맹렬하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던가. 빵에서는 죄를 미워하고 사람은 더 미워했다.

사진 출처: Maryseh
지금은 없어진 ‘간통죄’. 우리 방에도 한 명 있었다. 아마 거의 방마다 한 명 이상 있었던 듯. 나에게 ‘부부 마사지’라며 가르쳐준 손 마사지는 요새도 가끔 써먹곤 한다. 사근사근한 말투의 30대였던 ‘부부마사지’, 흐릿한 점으로 얼굴이 반쯤 덮여 있던 인상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랑이 죄냐?”고 우스개를 하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잘 때 화장실 바로 앞자리를 주는 걸 보면 사회적 시선은 그리 녹녹치 않은 듯 했다. 그녀가 ‘부부’ 마사지임을 강조했던 이유는 마사지 전에 발라주는 로션 때문인 것 같았다. 질퍽하게 손가락 하나하나부터 손목, 손바닥 골고루 바르고 주무른다. 끝으로 팔목 근육을 자극하다가 마지막으론 “힘 빼” 소리와 함께 손목을 쥐고 ‘탁’ 턴다. 그때부터일까, 마사지를 좋아하게 된 건. 개그맨 이경실이 그랬다. “나는 내 어깨를 주물러 주는 누구든,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진다!”고. 나도 동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