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픈 깜빵생활] ④ 생태적 윷놀이

여러 명이 한마음으로 밥알을 뭉쳐 정성껏 윷가락을 만들었다. 윷가락에 담긴 웃음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회색일 것만 같은 구치소에서도 삶의 숨소리가 가득하고 다양한 색감으로 활력이 샘솟는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누군가 사식으로 오징어를 주문했었다. 영치금으로 책도 주문하고 음식도 시켜서 먹을 수 있었다. 사식으로 들어오는 여러 간식은, 정해진 규칙이 아닌데도 혼자만 먹지 않고 다들 나누어 먹었다. 특히 오징어는 인기였는데, 내부에서 화기를 이용할 수 없으니, 굽지도 않은 말린 오징어를 조금씩 잘라 입안에서 오래 씹어 삼켰다. 그래도 그 짭조름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의 즐거운 시간이 방해받은 일이 있었다. 젊은 교도관은 방 내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아유, 이게 무슨 냄새야?” “이년들, 처먹긴 잘하네.”

느닷없는 욕설에 깜짝 놀랐다. 환기가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맡지 못했다. 일종의 오래된 말린 어류가 풍기는 꼬린내일 뿐, 누구에게는 입맛 돌게 하는 쿰쿰한 그 냄새가, 또 다른 이에게는 짜증나는 역한 냄새가 될 수도 있음을 그때 알았다. 그렇다 쳐도 새삼 깨달은 건, 수형자들과 교도관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강이었다. 바깥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수한 위계와 서열은, 물리적인 나이는 그냥 넘어서는 것임을 실감했다. 손녀뻘, 딸뻘 정도 되는 교도관에게 그녀의 조롱과 모욕적 언사를 따져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백발의 ‘삼존불’도 그저 허허 웃으며 뒤돌아 가는 뒤통수에 “수고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고, 발소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주눅 들어 그저 묵묵히 오징어를 씹을 뿐이었다.

‘국보’가 재판을 2주 정도 남겼을 때, 우리 방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구치소 내 희대의 장난감, ‘윷’을 만들자고 처음 말한 건, ‘부부마사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윷가락은 네 개의 나무 막대기만으로 알고 있을 때였고, ‘그게 가능한가?’ 어안이 벙벙한 채였다.

“그래, 국보가 출소하기 전에 윷놀이 한 판 해야지.”

공기알처럼 손안에 쏙 들어오던 그 윷가락들은 손때 묻고, 차갑고 반질거리는 촉감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사진출처 : Dominiquedo17, wikimedia commons

‘삼존불’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자, 그때부터 심혈을 기울인 윷 제작에 돌입했다. 며칠에 걸쳐, 세심한 준비와 제작공정이 시작됐다. ‘부부마사지’는 매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어떤 과정에 와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얘기가 나온 당일부터 저녁식사 시간에 재료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배식받은 밥에서 윷가락 만들 밥알을 따로 조금씩 네 덩어리 떼어 남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 밥이 굳기 전에 치댄다. 10분쯤 열심히 떡 같은 질감이 될 때까지 문지르다가, 성형을 한다. 한 알의 크기는 성인 손가락 한마디쯤 될까. 처음에는 동그랗게 빚다가 완성단계에서 타원형으로 만든 후 꾸욱 눌러 조금 납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완전히 말리기 전에 알마다 앞면 뒷면을 표시한다. 볼펜으로 가운데 세로선을 조심스럽게 긋고, 그중 한 알에만 가로선을 짧게 남겨 ‘빽도’표시도 만든다.

말리는 단계가 제일 중요한데, 절대 햇빛을 보면 안 된다. 갈라져서 말라버리면 실패다. 응달에서 서서히 굳혀야 형태가 유지된다. 이틀간 공들여 말리면 완성이다. 공기알처럼 손안에 쏙 들어오던 그 윷가락들은 손때 묻고, 차갑고 반질거리는 촉감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구치소 내에서 부족함 없던 건, 검은 볼펜과 편지지였다. 매일 매일 우리 방 사람들 대부분은 부지런히 편지를 썼다. 바깥 세상에 우리의 안부를 알리는 유일한 수단은 우편물이었기에. 아무튼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 윷판을 그렸다.

경험한 적은 없지만, 교도관들이 불시에 수형자 소지품을 조사하기도 했나 보다. 아주 가끔 실시하는 이 ‘검빵’에 대비해 윷가락을 어떻게 숨길지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윷놀이는 우리 방에서만 하는 놀이가 아니었나보다, ‘분홍입술’이 “이제까지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단언했다. 윷놀이에 집중했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놀면서 사귀면서 친해지면서 공동체는 풍성해지고 문화도 발전한다.” 그림 출처. Ylanite Koppens

‘국보’가 출소하기 일주일 전부터 거의 매일 윷놀이를 했고, 출소 전날 벌어진 윷판에서, 던지면 연달아 모와 윷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모가 세 번이나 연속 나오자 ‘삼존불’이 푸념처럼 말했다.

“여기서 나가는 운을 누가 말려.”

구치소에서 석방되는 것이 가장 큰 운이라는 그 말에 거짓말 같은 그 상황이 이해되기도 했고, 참으로 ‘삼존불’다운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존재’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놀면서 사귀면서 친해지면서 공동체는 풍성해지고 문화도 발전한다.

깜빵 안에서, 밥알을 뭉쳐서 윷가락을 만들어 냈다. 비록 손때는 꼬질꼬질하게 묻었지만, 정성껏 빚어 소중히 다루었다. 우리가 만든 밥알 네 덩어리가 없었다면, 그 많은 웃음과 즐거움은 무엇으로 나누었을까? 잘 모르는 누군가 들으면 ‘소가 웃을’ 일이지만.

마이티

‘마이티’는 ‘힘센’이라는 뜻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던 카드놀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우누리 시절, 나의 아이디였다.

한살림 조합원 사 년 차.
녹색당원 오 년 차.
생태적지혜 연구소 조합원 이 년 차.

나는 스러지는 불처럼 살고,
흐르는 물처럼 글 쓰며,
상처입은 나무처럼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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