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단호한 비판
2025년 6월 28일 토요일 오후 9시, 생태적지혜연구소 협동조합 안에서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철학자 신승철을 추모하는 축제가 열렸다. “가까이 만나 따뜻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축제에 앞서, 같은 날 오후 1시에서 9시 사이에, ‘생태적 지혜’라는 주제 아래 식전행사(Pre-ceremony event)들이 이어졌다. 식전 행사는 다음과 같은 나눔의 총 합이었다. 추모의 말 나눔, 생태적 지혜 나눔, 추모의 노래 나눔, 상 나눔, 채식 밥상 나눔, 책 나눔.
“생태적지혜연구소는 …… 생명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이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최신 정보취득이나 생존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과 문명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생태적 지혜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답으로 주어진 현실을 거부하는, …… 실험, 도전, 모험 등을 통한 공동체와 네트워크 등의 과학, 예술, 문화, 자기경영, 프로그램, 시스템 등의 노력과 실천의지에 대해서 주목한다. 이를 통해 과거적 지혜에서 방법론과 연결방식, 판짜기 등을 배워오면서도, 다가올 미래의 색다른 현실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학과 예술의 실험적 노력에서의 지혜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미래진행형적 지혜의 판(plan)을 만드는 데 목표를 갖는다.”

웹사이트 《생태적 지혜》의 소개글 중 일부이다. 이 글의 내용에 따른다면, 생태적지혜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생명 위기 상황을 방치한 모든 생각과 사회적 틀에 대하여 가장 단호한 비판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비판의 대상이 될 듯한 사상이 담겨있는 고전들을 연구했던 나는, 비록 그러한 연구에 있어서 비판적 반성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에도, 축제가 시작되기도 전 식전행사에서 조합원들이 보여주는 8시간에 걸친 식전행사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속성으로 배우기 위해 받는 ‘지옥훈련’ 같았다. 그렇지만, 쑥떡과 과자와 과일이 등 뒤에 즐비하다는 것, 그리고 채식 밥상 마련하는 냄새가 퍼지고 있는 것이, 나로 하여금 몇 시간 동안이나 훈련장 1열에 꼬박 앉아있을 수 있게 해주었던 듯하다.
행사는 이승준 조합이사장의 추모사로 시작되었다. 그는 모든 존재들의 공존·공생을 생각하는 쪽으로 자기를 이끈 사람이 신승철이라고 말했다. 빠르게 읽어내리는 말 중에서 ‘공존과 공생’은 확실히 들렸다. 이 소장이 추모의 말을 하기 전에 준비한 두 장짜리 글을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농담 삼아 “야, 우리는 왜 이렇게 길게 쓰는 거 밖에 못하는 거냐?”라고 한 말 때문에 서둘러 읽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었다.

만남도 스쳐감도 나눔
생태적 지혜 나눔은 9개의 자유 발표로 이루어졌다. 생태철학[김준영], 욕망이 다시 쓰는 민주주의[심기용], 내부작용[남미자], 시 낭송[한승욱], 시민의회[김영준], 세 가지 생태학과 생태학살[장윤석], 다단계로 신승철을 기억하다[김지연], 성선설[한제아], 근성예술[천근성] 이다.
한승욱 회원의 시들은 그의 생활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생각도 담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좋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숨을 잘 쉬어서일 것이라는, 엉뚱할 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까다롭고 미묘하게 인간관계가 얽히는 업무를 잘라낼 수 없는 직장인 같았다. 매사에 섬세하기를 요구받는 생활을 하고 있을 듯하였다. 그 속에서 잠깐씩 주어지는 여유를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면, 그는 무거운 피로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좋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까닭은 호흡 한 번의 여유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심성을 가져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준 회원은 선거가 아닌 추첨에 의하여 공직을 배정하는 정치를 이야기하였다. 이런 정치는 예전에 어디에선가 들어보긴 하였지만, 그때는 흘려들었었고, 이번에는 듣고 생각을 좀 해 보았다. 근력 센 사람이 권력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하늘의 뜻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 있었다. 권력은 세습되기도 한다. 아니, 거의 세습된다, 교묘하게 내세워진 여러 명분과 기준에 의하여 그렇게 되고 있다. 특정하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을 기준으로 한 시험 결과가 권력 서열이 정해지는 데 끼치는 영향은 지금 여기의 우리가 매일 체험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 가운데 하나인 공직선거는, 그것이 비록 공정하게 행하여진다고 하더라도, 선거로 뽑힌 사람이 엘리트가 되고, 그들의 습관과 문화가 주류가 되고, 그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권력의 세습을 조장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요컨대 권력의 배분에는 여러 방식이 있었고, 모든 방식이 각각 나름대로 정당화될 만한 근거가 있었으나, 모두 한계를 가진 것이기도 하였다. 추첨에 의하여 공직을 배정하는 정치 또한 한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더 나은 정치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라면 한번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택일지 모른다. 6개월이 지나도 깨끗이 제압되지 않는 반란 중에 살아보니, 가급적 다양한 정치를 여러모로 상상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사진 : 조해민
2인 1조가 되어, 붓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상대의 초상을 그려보게 한 천근성 회원의 근성예술 나눔과,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과 그것에 이르기까지 신승철이 주었던 도움을 강원도 현장에서 벌이는 환경운동과 관련시키면서 이야기한 장윤석 회원의 세 가지 생태학살 발표 나눔은 차별점 못지않게 공통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두 회원은 모두 그들의 말을 좀처럼 들어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입장인 듯하였다. 그 둘은 모두 웃음과 경계심 없는 분위기로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과 대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하였다. 초상화 그리기도 그런 관계 맺기 과정의 한 단계라고 하였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회원 모두 운동도 하시고 몸에 좋은 음식도 충분히 드시라는 바람을 가졌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한제아 회원은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발표하고 토론했던 내용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발표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성선설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듯 했다. 그때 그는 사랑하는 가족이 착하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거나, 주변 사람들이 착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어려움을 근거 삼아 성선설을 옹호하려 했다고 한다. 한때 유교 경전을 연구했던 나로서는 성선설 논증에 관해서 의견을 보탤 수도 있었지만, 더 관심이 머문 곳은 토론 참여자들이 충분히 발언할 수 없는 수업 시간의 풍경이었다. 토론에 참여했지만 충분히 발언하지 못하거나, 토론 과정에서 느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거나, 치밀하지 못하게 설계된 토론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크게 아쉽고 두려웠다.
아홉 개의 생태적 지혜 나눔은 각각 별개의 주제인 듯하면서도 모두 서로 연결된 것인 듯 싶었다. 그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다. 스쳐간 부분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뇌리에 남는 부분도 많았다. 나눔은 새로운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계기였다. 사람들은 생태적 지혜뿐만 아니라, 추모의 노래도 나누었고, 작은 상과 경품도 나누었다. 채식 밥상에는 책 나눔이 이어졌다. 책 나눔을 하면서, 그 책을 쓰거나, 사거나, 사고도 못 읽은 사연을 포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아깝지 않을 듯 유익한 시간이었다.
춤판 벌어지는 마당을 상상하다
식전행사가 본격적인 축제로 넘어가면서, 여러 종류의 술잔이 오가기 시작하고, 함평에서 올라온 봉숭아꽃과 백반을 사람들이 경이로움 속에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작년에 참여하였던 1주기 추모 축제를 생각하였다. 그때, 모두가 어우러져 춤추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축제에서 빠져나왔었다. 춤에 익숙하지 못해서였지만, 그때 나는 춤이 불필요한 경계를 허물고 서로가 이어질 수 있게 하여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가까이 만나 따뜻하고 자유로운 시간은 춤으로 완성되리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일었다.

조합이 입주해 있는 건물 2층에서 내려서서 건물을 나서니, 건물 앞 마당이 있었고, 북쪽으로 얕은 내리막길이 여의도 방향을 향하여 이어지고 있었다. 그곳이 각종 군사 관련 시설에 둘러싸인 곳임에도, 생태적 지혜가 더 널리 퍼지게 되면, 그 마당에서 조합원들과 인근의 시민들이 함께 춤추는 일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때도 나는 구경만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