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및 차별 정책이 시행되면서 해당국은 물론 세계 전체를 혼란으로 뒤흔들고 있다. 차별과 불평등은 당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임상 의사인 저자는 차별과 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이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차별과 편견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차별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것이기도 하며, 왜 우리가 차별과 편견과 싸워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차별과 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연구자의 발언과 함께 차별과 편견이 만연하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차별의 대상이 되는 장애인이라는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 활동가는 장애를 ‘사회적 차별이 장애를 정의한다’고 말한다. 즉, 신체 일부의 손상이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사회참여의 제약으로 이어질 때 장애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차별과 불평등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까지도 위협하는 예를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이즈에 대한 낙인과 혐오는 자신의 감염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을 꺼리기에, 오히려 비감염인이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즉, 편견과 낙인이야말로 의학적으로 감염인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혐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기에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에이즈 감염을 법·종교·도덕의 관점이 아니라 공중보건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우리 인류는 타인을 끊임없이 차별해 온 기나긴 역사가 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시작으로 독일의 유대인 차별 및 학살, 우생학, 그리고 미국의 노예제도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인간의 두뇌가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자극을 범주화해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편견을 갖는다. 따라서 아무리 계몽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편견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나 역시 내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해야만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고정관념을 가진 대상과의 계속적인 관계 맺음으로 내재적 편견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공동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정과 회사와 학교의 문 앞에서 멈춰 있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가 일상에서 구현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본 것이다. 차별과 편견으로 인하여 자살이나 자살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도, 민주주의 사회도 아닐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질병보다는 건강이,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 사회는 아닐까?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 HIV 감염자 및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이 여전히 강하게 혐오 발언을 하고 있다. 따라서 반동성애자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뒤에서 작동하는 힘을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한 인터뷰이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사회에는 미투 운동과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이 끊이질 않는데, 이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정착과 함께 건강한 개인 및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라도 차별과 편견 그리고 혐오를 제거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