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여름은 역대급, 기상관측 이래 최고, 최대, 최장 이런 수식어로 가득했습니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입추(立秋)로부터 보름이나 지나 도래한 더위가, ‘쉰다,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을 가진 처서(處暑)에도 서울의 온도가 최고 32도, 최저 27도였으니 모기 입이 비뚤어지기는커녕 더위에 헐떡이느라 벌어진 우리 입이 한밤중에도 닫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높은 온도에 더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엄청난 습도였습니다.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뜨겁고 축축한 탓에 달궈진 몸과 마음을 식힐 방도가 없었습니다. ‘찐만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는 농담처럼 우리 모두를 찜기 안에 들어 있는 만두 신세로 만들어 버린 여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세등등하던 여름도 서서히, 느리지만 분명하게 물러나고 있습니다. 여름에도 끝이 있다는 게, 그리고 그 끝에서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에 끝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요? 만일 여름을 보내고 맞이하는 계절이 봄이었다면 삶이 조금은 지루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여름 다음 계절이 겨울이었다면 삶은 아마도 더 혹독했겠지요? 어쨌든 여름에도 끝이 있고 거기서 가을이 시작한다는 게 참 다행입니다.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변화를 감지합니다. 그런데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 속에서 살며시 바뀌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겨우내 차갑게 식어있던 도시 속에서 변화된 계절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회색을 뚫고 나온 어린 초록빛 새싹과 하얗고 노란 작은 봄꽃들입니다. 아직 냉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을 때 조그맣게 나타나는 봄의 화사한 색감들이 우리의 눈을 자극하며 시각을 통해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줍니다. 봄은 우리 눈으로 먼저 옵니다. 여름내 한껏 달궈진 도시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알아챌 수 있는 우리의 오감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이 짙푸르기만 하고 아직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기에는 한참 이르니 눈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름의 시작은 비릿한 밤꽃 냄새와 흙먼지를 일으키는 비냄새로 후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가을은 아직 뚜렷한 향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숲에서 촉감으로 느낄 수 있는 아침저녁 시원해진 바람도 열섬현상을 품어 밤낮 없이 뜨거운 도심 속에선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제철 음식을 잃어버린 주제에 미각으로 계절을 알 수도 없습니다. 이제 오감 중 하나 남았습니다. 네. 가을은 귀로 먼저 옵니다.
무슨 가을이 귀로 오냐고요? 나희덕 시인의 시에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이고 노래한 ‘귀뚜라미’의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풀잎 없고 이슬 한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보내는 내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갈 수 있을까”
가을느낌 물씬한 가수 안치환의 목소리로 듣는 이 노래는 가을이 귀로 먼저 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매미 소리는 한여름을 알리는 사이렌입니다.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는 모두가 같이 웁니다. 독창이 아니라 합창입니다. 그나마 참매미는 ‘맴 맴 맴 맴 매애애애앰’ 나름 곡조가 있건만 높낮이 없이 같은 음으로 목청껏 길게 질러대는 말매미 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귀따거운 사이렌 소리 같습니다. 그래도 땅 속에서 몇 년이나 보낸 후 한여름 길어야 겨우 한 달 사는 매미의 구애를 향한 노래라 생각하고 참아보지만 도시 불빛에 밤낮이 헷갈리고 열대야로 잠 못든 매미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면 저절로 ‘아이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곡조도 없고 가락도 없는 매미들의 소음과도 같은 떼창 속에서 늦여름부터 작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귀뚜라미의 연주는 고독한 사색의 시간, 가을이 드디어 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매미는 울림통을 울려 소리를 내지만 귀뚜라미는 앞날개를 비벼 소리를 내기에 연주라 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한 나무에서 동시에 울어대는 매미와 달리 귀뚜라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며 독주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그 구역의 외로운 수컷 한 마리의 독무대가 열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고독한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누가 감히 시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혼자 있는 저녁시간에 귀뚜라미 연주를 듣게 된다면 누구나 그 소리를 마음에 담아 가슴에 실어가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함께 번성하는 뜨거운 한여름에는 매미들의 큰 합창 소리가 어울린다면 들끓던 열기와 소음을 잠재울 조용한 가을의 시작은 고독한 귀뚜라미의 연주 소리가 합당합니다. 이렇게 가을은 심지어 도시 속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없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도 귀뚜라미의 날개를 타고 귀로 옵니다.


9월입니다.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숨 가쁘게 달려온 여름이 서서히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정열적인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웠던 수국, 자귀나무, 모감주나무, 배롱나무, 능소화 같은 나무들에게서 분꽃, 코스모스, 구절초, 왕고들빼기, 참취, 쑥부쟁이와 같은 풀꽃으로 내려앉게 될 것입니다. 몸이 크고 호흡이 긴 나무들은 지금 꽃을 피우면 열매로 만들 시간이 부족하지만 몸이 작고 한살이가 짧은 풀들은 이제 꽃을 피워도 열매를 맺어 씨앗을 뿌릴 시간이 충분합니다. 그러기에 가을꽃은 나무보다 풀꽃이 많고 이는 우리 시선을 낮게 떨구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가을을 영어로 떨어지다는 뜻을 가진 Fall이라 부르나 봅니다. 아직은 먼 듯하지만 곧 낙엽을 떨구게 하는 차가운 바람도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겠지요. 그리고 뜨거운 여름 내내 익혀낸 햅쌀, 대추, 밤, 단감, 사과, 배가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온통 가을로 물들게 할 겁니다.
아직은 뜨거운 여름이 주저하며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시간. 깔끔하게 끝마무리를 맺지 못하고 끈적거리는 여름을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가을의 시작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작은 소리로 시작한 가을은 곧 숲과 세상을 물들이고 마침내 비워내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늦더위는 참아줄 만합니다. 다행입니다.
잔잔한 가을이 오는 풍경이 그려지네요
수채화 같은 글 한편 잘 읽었습니다
가을은 소리로 오고, 내려 놓으며 함께 있나봅니다.
자연의 법칙은 어울림이죠.
여름과 매미, 가을과 귀뚜라미, 그리고 작가님의 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