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 요즘은 취미로 즐기는 운동에도 역시나 많은 돈이 들더라는 경험담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골프였습니다. 골프장 그린피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비싼지, 골프채는 얼마나 비싼지, 18홀 도는 동안 서너 개씩 잃어버리기 일쑤인 공은 또 얼마나 비싼지 공 하나 숲으로 날려먹을 때마다 입도 안댄 햄버거 하나씩 처박는 셈이라며 별로 운동도 안 되는 골프가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아느냐며 한탄인지 자랑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비싼 공을 박스로 들고 다닌다는 얘기에 여럿이 공 하나 놓고 떼로 뛰어 다니는 축구와 그나마 소수정예로 넷 또는 둘이 공을 주고받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를 즐기는 친구들은 말없이 눈알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그래도 우린 축구처럼 맨 몸은 아니야. 라켓도 사야 돼’라는 말이 작게 들렸고, 더 작은 소리로 ‘라켓도 공격용이랑 수비용이랑 따로 있어’라는 말도 들은 듯했습니다. 이때 치고 나온 친구는 자전거 라이더였습니다. 역시 장비발은 자전거라며 소형차 값에 비등한 자전거 얘기에 모두 입을 벌리고 경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싼 운동을 어떻게 하냐며 돈 안 드는 운동으로 등산 예찬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둥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없다는 둥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에서 지하철만 타도 갈 수 있는 멋진 산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는 둥 모두가 아는 레퍼토리가 끝나갈 때쯤 등산화, 등산복, 배낭, 등산스틱, 코펠, 버너, 침낭, 텐트 등 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고지고 갖춰야 할 장비가 얼마나 많은지 결국 등산도 장비빨(자장면과 짜장면 모두 표준어이듯 장비빨도 표준어로 인정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라며 무게를 줄일 수만 있다면 그램당 만원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백패킹 매니아의 주장에 등산도 돈이 많이 드는 운동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결국 신발만 있으면 되는 달리기가 최고라며 요즘 대세 운동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로 친구들의 수다가 마무리 될 즈음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달리다 보면 신발도 카본 플레이트에 뭐에 첨단자재로 만든 수십만 원짜리를 신게 되고, 기능성 옷과 모자는 기본에 스포츠 고글도 써야하고, 뛰는 데 불편하니 이어폰도 골전도 이어폰으로 바꾸게 되고, 달리기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스마트워치도 차야하고 이거 저거 갖출 게 많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미 수천만 원짜리 자전거 얘기도 들은 차에 그 정도 장비는 애교 아닌가 할 때, 마지막으로 뛰기 좋은 한강공원이 바로 곁에 있는 아파트가 필요하다는 말에 가장 비싼 운동 취미는 달리기인 것으로 만장일치 결론이 났습니다. 아, 미처 몰랐습니다. 달리기에 그리 돈이 많이 드는 줄은.

흔히들 인생은 마라톤이라며 장거리 달리기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인생에는 돈이 많이 드는 건가요. 그런데 살다 보니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풀려 쓰러질 듯한데 도대체 코스도 모르겠고, 반환점은 어디 있는 건지, 어디가 결승점인지, 있기나 한 건지, 남보다 앞서 도착해야만 하는 순위가 있는 건지, 언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건지, 그보다 왜 뛰는 건지 도통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학교 다니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승진하고 차 사고 집 사고 또 승진하고 더 큰 차 사고 더 큰 집 사고 이렇게 앞으로 앞으로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우리는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직만 하면, 승진하기만 하면, 내 집을 장만하면, 노후를 위해 몇 억을 모아 놓으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자꾸만 자신을 채근합니다.
사람들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오늘의 기쁨을 유보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 그래야만 하는 줄 압니다. 이런 삶의 특색은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이 가득한 사회는 피곤합니다. 행복을 자꾸만 내일로 유보해 놓아 오늘을 경축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내일이 언제야?” 엄마가 답합니다. “오늘 하룻밤 자고 나면 내일이란다.”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 묻습니다. “엄마, 오늘이 내일이야?” 엄마가 답합니다. “오늘은 오늘이지. 내일은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이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또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오늘이 내일 맞지?” “넌 누구 닮아 이렇게 머리가 나쁘냐? 오늘은 오늘이라니까. 내일은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이라고.” 도대체 내일은 언제 오는 걸까요? 오기나 하는 걸까요?

길어야 백 년 사는 인생을 장거리 마라톤에 비유하며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우리네 삶을 보며 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강원도 정선군 두위봉에 있는 주목(천연기념물 제433호)으로 그 나이가 약 1,400년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최고 어르신 나무 중 하나로 꼽히는 성균관대학교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9호)의 나이는 약 500년이라 추정합니다. 우리 인간의 기준으로는 까마득하지요. 굳이 천연기념물이나 노거수로 지정된 보호수가 아니어도 숲에서 만나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거나 우리가 떠난 후에도 우리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과도 함께 할 나무들입니다. 요즘 이들은 다가올 겨울을 위해 남김없이 떨궈야만 하는 나뭇잎을 곱게 물들이며 이별을 위한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비오면 비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피워야 할 것들은 피우고 떨꿔야 할 것들은 떨구며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존재들입니다. 여름 장마와 태풍에 떨어질 잎 걱정으로 봄날 나른한 즐거움을 놓치는 법이 없고, 가을 열매 맺을 염려로 여름날 찬란한 꽃잎의 기쁨을 흘려보내지 않으며, 겨울 춥고 외로울 빈 가지 근심으로 가을날 찬란한 단풍의 축제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 이들을 만나 오랜 세월을 살면서 어떻게 하루하루 오늘을 경축하며 살 수 있는지 물어보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마침 상념의 계절 가을이네요.
“이미 우리가 가진 것들조차 즐길 수 없다면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까지 이뤄 낸 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더 많은 것을 추구할 이유도 생기는 것이다.” 나무가 한 말은 아니지만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하고 인생학교가 지은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벌써 11월입니다. 일 년을 마감하는 12월을 준비한다며 그저 바쁘고 분주하게 흘려 보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짧은 가을의 한 달입니다. 아름다운 단풍 아래 이미 가진 것들을 헤아려 보면서 왜 더 이루고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여유를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