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산책] ⑲ 꽃은 왜 아름다운가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나뭇가지에서 찬란하고 부드러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참 신비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신비로운 꽃들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어린 친구가 묻습니다. “꽃은 왜 아름다워요?”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나뭇가지에서 봄이 되니 신비하게도 찬란하고 부드러운 꽃들이 나옵니다. 사진 제공 : 강세기

어린 친구들과 공원에서 꽃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나뭇가지에서 어쩜 그리 찬란하면서도 부드러운 꽃을 내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그만 나도 모르게 “애들아, 이 꽃들 좀 봐. 참 아름답다. 그지?”하고 동의를 구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내었습니다. 같이 꽃을 보고 있던 어린 친구들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정말 어린 친구들이었기에 아름답다는 단어보다 예쁘다는 단어를 썼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단어보다는 질문하는 이의 마음에 관심을 두는 순수한 아이들답게 모두 꽃처럼 맑고 경쾌한 소리로 “네”하고 합창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흩어지기도 전에 한 아이가 질문을 해왔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꽃은 왜 아름다워요?”

이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질문을 푸른 봄날 하늘 아래에서 받아 본 적이 없기에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대답을 푸른 봄날 하늘 아래에서 최종학력이 유치원 재학 중인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보다 훨씬 오래 산 인생 선배답게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되치기 기술을 시전했습니다. “와 좋은 질문이다. 친구들아, 꽃은 왜 아름다울까?” 색이 이뻐서요, 만지면 안돼서요, 그냥요, 몰라요, 자기들 키만큼 고만고만한 대답들이 나올 때 한 아이가 “고양이다”하고 외치는 순간 모두다 그리로 달려가며 푸른 봄날 하늘 아래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질의응답 시간은 끝이 났습니다. 고양이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요? 아이들은 ‘그냥요. 꽃은 그냥 아름다워요’라고 답합니다. 사진 제공 : 강세기

하지만 아이들과 헤어진 후에도 그 질문은 여전히 제게 남아 있습니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요? 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은 수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꽃가루를 날라 줄 벌레나 새, 작은 동물들을 불러들이도록 여러 색과 향과 모양을 만들어 진화했다고 식물생리학은 설명합니다. 이러한 식물의 생존전략이 역시나 동물인 인간에게도 효과적으로 통한다는 것이지요. 개중에 고등동물인 인간은 꽃이 만들어낸 고도의 화학 배합물인 향이나 꽃잎의 규칙적 배열이나 대칭적 형태, 색의 대비가 주는 시각적 조형미에 매료되어 꽃을 아름답게 여긴다는 겁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식물이 꽃을 피우는 곳은 인간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기억과 꽃이 있는 곳에는 먹을 수 있는 열매도 있었다는 긍정적인 기억이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에 인간은 꽃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인문학적으로는 순간 피었다 금세 지고 마는 꽃의 유한함에 인생의 덧없음을 투영하여 무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하지도 변함없지도 않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존재를 상징하는 의미로 꽃을 바라보기 때문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느 문화에서나 연인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선물로, 영원한 죽음 앞에 올려지는 애도의 마음으로, 무한한 신에게 아름다운 제물로 바쳐지는 꽃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 설명들로 꽃은 왜 아름다운지에 대한 답이 되시나요? 이러저런 설명들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하지만 어딘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걸 제 어린 친구들이 알아듣게끔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어린 친구들의 말이 가장 공감이 되는 답인 듯합니다. ‘그냥요. 꽃은 그냥 아름다워요.’

마종기 시인의 ‘꽃의 이유’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마종기「꽃의 이유」중에서) 사진 제공 : 강세기

시인은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고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면서 그 중간에 이 구절을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뜬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군가 사랑의 이유를 물어 온다면 멋쩍게 웃으며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하고 분명한 멋진 답이 없기에 시인도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싶은 거겠지요. 시인이 생각하는 꽃의 이유도 어찌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 사랑의 이유와도 같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으니 그것은 꽃이 피었다는 것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상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울 뿐입니다. 여기에는 논리도 이유도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기에 저 이의 모든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이지요. 저는 여기서 꽃이 아름다운 이유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꽃은 왜 아름다운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이런 저런 고민과 걱정도 많은데 쓸 데 없는 질문에 답까지 생각해야 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봄이니 그러지 마시고 잠깐이나마 고민과 걱정 내려놓고 우선 꽃을 보러 나가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꽃은 높은 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도블록 틈 사이, 화단 돌 틈, 낮고 낮은 자리에도 가득합니다. 사진 제공 : 강세기

시방 사방은 꽃 천지입니다. 봄이 오도록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한 것이 없고 차가운 꽃샘추위와 봄 가뭄의 목마름 속에서도 응원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도 꽃들은 차별하여 나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모양으로, 향으로 꽃을 내어 우리 모두에게 펼쳐주고 있습니다.

꽃은 우러러봐야 하는 높은 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도, 화단 가장자리 돌 틈에도, 낮고 낮은 자리에도 가득합니다. 제 어린 친구들은 높은 가지 위에 있는 꽃보다 이 낮은 자리에 있는 작은 꽃들을 더 잘 발견합니다. 푸른 봄날 하늘 아래 꽃들과 눈을 맞추고 물어보렵니다. 꽃은 왜 아름다운가? 그런데 나보다 훨씬 오랜 인생을 살고 지고 한 꽃들이 이렇게 되치기하면 어떡하죠? 너는 왜 나를 아름답다고 하는가?

강세기

빨리 이루고 많이 누리기 위해 무겁게 힘주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조금씩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풀과 나무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숲과 산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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