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첫 만남은 4월 27일이었어요. 토종벼 농사를 짓고 계신 분이 밭벼 발아한 걸 조금 나눠 주셨거든요. 마침 담아올 통이 없어서, 마시던 커피를 급하게 마저 마신 후 그 컵에다 흙을 담고 벼를 넣어서 데려 왔어요.
15일 후에 짜잔~ 이렇게 새싹이 쏘옥 올라와서 인사를 나누었어요.

물도 제대로 못 주었는데도 흑흑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 주었지 뭐예요.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이젠 독립시킬 때가 되었어요. 제가 사정이 있어 한참동안 밭에 김매주는 걸 못했는데 말이에요.

세상에 너어무 기특하지 않나요? 저 풀이랑 같이 자라면서 열매를 만들어 내다니 말이에요.
여러 풀들 사이에 보이시려나 모르겠네요. 나락을 맺기 시작한 밭벼가 보이세요?

짜잔, 두둥~! 저 하얀 뽀시래기들이 바로 벼꽃이에요.
대부분 식물은 꽃이 먼저 피고 열매가 맺히지만, 벼꽃은 나락이 먼저고 나중에 꽃이 핀다고 해요. 꽃이 핀지 2시간 안에 자가수분을 끝내므로 일생이 매우 짧다는데, 말로만 듣던 벼꽃을 보게 될 줄이야 꺄아아.

가을이 다가오면서 이제 하나씩 고개들을 떨구기 시작했어요. 가느다란 줄기가 열매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연에선 이렇게 점점 땅에 가까워지고 씨앗이 떨어져 다음 해 봄에 다시 싹을 틔우겠지요.
여기까지가 한뼘 한뼘 자라나는 모습과 한 알씩 영글어가는 제 밭벼 자랑이었어요.
예전에 박물관에 가면 청동기 시대의 벼농사 관련 유물이나 농사법에 대한 내용을 보면 ‘응, 그런 일이 있었나보네’ 라고 스쳐 지나갔는데 요즘엔 민무늬토기에 찍힌 볍씨자국에도 감탄을 하면서 한참을 봅니다. 뭐 대단한 거 보는 줄 알고 주위에 사람들이 같이 들여다볼 정도로요 하하.

‘밭벼’라고 쉽게 부를 수도 있군요! 밭에 물을 대서 논으로 만들어 모내기하는, 생산력 중대를 꾀한 이앙법은 아마 18 세기 이후 일 겁니다. ’직파법’이라고만 알고 있었네요.
커피 컵에 토종 씨를 조금 가져 왔다는 말에, 왜인지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 밀수한 익점 아저씨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사진이 많아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구우 님을 응원합니다~
제가 언젠가 유투브를 한다면 썸네일로 써먹어야겠어요 ‘밀수한 밭벼’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