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페트라 켈리의 『녹색을 생각한다』] ① 삶이 곧 정치다

녹색 정치는 지배와 억압 대신 생명의 연결성을 존중하는 ‘다정한 대항권력’을 통해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는 하향식 체제를 거부하고 시민 개개인이 내면의 ‘자아를 녹색화’하여 풀뿌리 민주주의의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데서 시작된다. 결국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영성과 생태적 가치를 회복하는 삶의 전환만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소수의 사려 깊고 헌신적인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은 항상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 마거릿 미드

우리가 서독 녹색당을 창당했을 때, 우리는 정치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묘사하기 위해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러한 정치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즉 모두에게 자연스럽고 공통적이며, 모두가 공유하면서도 모두가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대항권력”에 기초를 둔다. 이러한 변혁의 권력은 사회 안에서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게 할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을 발견하는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지배·공포·억압의 권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런 식의 변혁의 권력이야말로 무기력함을 치료할 최고의 해결책이다.

권력을 인간과 자연을 지배하는 데 사용하는 일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했고 우리는 결코 그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부터 생각하고 행동할 방법을 배워야 하며,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방법을, 그래서 광대한 생명의 그물 속 각각의 실타래가 지닌 가치를 존중할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영적 관점이며, 동시에 모든 녹색 정치의 기반이다. 그것은 지배가 더 이상 주요한 작용방식이지 않도록 사회구조와 우리의 사유방식을 근본적이고 비폭력적으로 변혁한다. 모든 녹색 정치 활동에 뿌리에는 비폭력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서 시작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일편단심 평화만 보고 걷는 작은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녹색 정치는 우리가 다정하면서도 또한 전복적이기를 요구한다. 다정함을 정치적 가치로 긍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전복적이다. 우리는 녹색정치 안에서 다정함을 실천하는데, 이 다정함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행해지고, 사상, 예술, 언어, 문화를 돌보면서 행해지며, 지구를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면서 행해진다.

녹색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들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곳에서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구에 거주하는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집단적으로 생산되었으며, 이 문제들은 우리에게 집단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고립으로 후퇴할 수 없다. 녹색당이 보는 정의로운 사회는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권리가 보장되고 보호되며, 모든 사람들이 착취, 폭력, 억압에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가치들에 대해 연설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을 약화시키려고 애쓴다. 현행 정치 및 경제 체제의 혜택은 특권층에만 주어진다. 따라서 의미 있는 사회 정의 운동은 체제 변화, 즉 소수의 손아귀에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는 억압적인 국가와 경제 구조 모두를 바꾸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녹색당의 방법론은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민 공간과 민주적인 사회 형태를 육성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운명을 지위하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녹색 정치는 풀뿌리 정치다.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정치는 거의 항상 부패하고 타협적이다. 아래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우리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도덕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풀뿌리 조직, 교육, 역량 강화를 통해 국가를 지향하는 정치 구조를 뒤집고, 권력자들의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민 공간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정치 수뇌부의 실질적인 변화는 아래에서 충분한 압력이 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 녹색 정치의 본질은 우리의 가치들을 살리는 데 있다. 우리 서독 녹색당은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다정함을 유지하지 못해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입혔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들에 다시 헌신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차이점을 관용하면서, 서로를 강요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비폭력, 생태주의, 사회 정의, 페미니즘은 녹색 정치의 핵심 원칙이며, 그것들은 서로 불가분하게 이어져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산업화된 북반구의 낭비적인 생산 및 소비 패턴이 환경을 고갈시키고 파괴하며, 남반구의 약소국으로부터 물자를 폭력적으로 약탈하고 전 세계적으로 낭비적인 군사화 과정을 추진하는 동기와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와 국가사회주의 국가 모두에서 인간은 경제 단위로 전락하며, 인간적 혹은 생태적 희생에 대한 고려는 거의 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향식 정치, 즉 위계적 지배 패턴은 가부장제의 특징이다. 권력이 남성들의 수중에 있고, 혜택이 다른 그 누구보다 남성에게 돌아가며, 그렇기에 여성이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착취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와 모든 것은 복잡한 생명의 그물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자아의 녹색화.
사진출처 : Ekaterina Astakhova

정치에 대한 녹색당의 접근은 일종의 축하행사와 같다. 우리는 우리 각자가 세계의 문제의 일부인 동시에 그 해결책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있다. 위험과 치유의 잠재력이 우리의 외부에만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노력하기 시작한다. 이상적인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단순화하고, 생태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지키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시작했기에, 더 나은 조건이 오는 것이다.

중성자탄, 원자로, 스타워즈의 방어 시스템, 그 밖의 여러 가지 대량 살상수단 등, 우리는 서로를 죽일 생각을 할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는 완곡어법과 추상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죽이고 있다. 전쟁에서 우리는 “적”이라고 부르는 수천, 수백만 명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사람들을 비인간화하고, 자연을 경시하며, 협소하게 정의된 자기-이익(self-interests)을 찬양할 때는, 분명히 파멸이 뒤따른다. 우리 행성을 치유하는 데에는 정치와 삶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이 사고방식의 핵심에는 모든 것은 복잡한 생명의 그물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녹색 정치의 주된 목표는 내부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애나 메이시 (Joanna Macy)는 이를 “자아의 녹색화”라고 부른다.1

정치에는 영성(靈性)이 필요하다. 우리 행성을 치유하기 위한 심오한 정치적 변화는 단편적인 문제 해결이나 마음속의 깊은 열망과 직관을 간과하는 지적인 분석을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 동료 녹색당원 중 몇몇은 여전히 그들의 독단적인 좌파적 관점을 고수하며 영성을 기성 종교와 혼동하여 의심한다. 나는 그들의 종교 제도 비판에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그들이 영적 고통과 지혜를 무시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지구에 조화를 가져오기 위한 오랜 노력에는 성숙한 가치들과 깊은 직관에 기반한 전체론적 시야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정치는 통합보다 권리 주장을, 종합보다 분석을, 직관적인 지혜보다 합리적인 지식을, 협력보다 경쟁을, 보존보다 팽창주의를 선호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몇 가지 새로운 발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내면의 삶을 풍부하게 가꾸고 모든 생명과의 연결을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들 중 실제로 우리의 안녕에 중요한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소비를 줄이고 자연계나 다른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그 어떠한 행위에도 협력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희생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다.

사회─여기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연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고립된다─에 만연해 있는 소외를 해결해야 한다. 녹색당원인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의 소외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 구조는 이러한 소외를 형태 지우며, 사회 구조 또한 소외에 의해 형성된다. 이는 악순환이며, 우리가 해야 할 치유의 노력은 이 전체 과정을 다뤄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뿌리가 통합된 삶의 방식에 있음을 잊어왔다. 우리는 호주와 미국 원주민의 문화 그리고 여타 다른 문화들로부터 배움을 얻어야 하는데, 그들은 자연에게서 지혜를 얻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을 유지해왔다. 비극적이게도 이러한 원주민 사회 대다수는 환경을 위협하는 세력과 동일한 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자신들의 가치와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의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한 소멸 위기에 처한 사회 중 하나인 티베트는 무자비하게 착취당하고 부족민들은 폭력적인 억압을 받아왔다. 티베트 민족의 추방된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Dalai Lama) 성하는 영적인 관점이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본보기다.

평화는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가질 때, 우리는 주변인과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의 공동체가 평화로울 때, 그 평화를 이웃 공동체와 나눌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서로와 자연환경에 대한 책임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2

정부나 기성 정당에 희망을 걸 이유가 거의 없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늘 그들 자신의 권력을 키우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풀뿌리 수준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힘과 상상력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녹색당은 오직 풀뿌리 민중의 이익과 권익 신장을 위해서만 정치 체제 안에서 활동한다. 정부 청사 내에서의 우리의 노력은 풀뿌리 운동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선출해준 유권자들에게 향한다. 우리는 그들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협력하여 우리 시대의 문제에 있어서 삶을 긍정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녹색 정치는 직접 민주주의에 기반한다. 우리의 노력은 권력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도록 권력을 재정의하고 재정립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권력을 탈중앙화하고 개인, 공동체, 사회의 자유 및 자기 결정권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는 중앙집권적 관료 조직, 특히 군산(軍産)복합체의 손에서 권력을 빼내어 지역 단위에서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평화와 생태를 위해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정부의 권력을 국가에서 훨씬 더 작은 단위의 조직체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경제학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노동자의 자주-관리를 극대화하고 기업과 정부의 통제를 최소화하는 생산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된 규모의 생산단위, 그래서 지역의 요구에는 잘 부응하면서 전 지구적으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생산단위를 의미한다. 녹색당이 기성 정당 중에서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동반자를 찾을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정부 내에서 반정당의 정당, 즉 편의를 위해 근본적인 가치를 타협하지 않는 급진적인 야당의 실험으로 활동해야 한다.

녹색을 생각하는 것, 즉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정치적 난관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 난관 대다수의 해결책이다. 생산, 소비를 계속 늘리고 천연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은 고통의 길로 빠져들게 할 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핵분열로 모든 것이 변했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하루빨리 도래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목적과 수단은 분리될 수 없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그 길이다.3


  1. Joanna Macy, World as Lover, World as Self, Berkeley: Parallax Press, 1991, p. 183.

  2. The Dalai Lama, 「The Nobel Peace Prize Lecture」, in A Policy of Kindness, Ithaca: Snow Lion Publications, 1990, p. 19. [한글본] 달라이 라마,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아 달라이 라마 지혜의 큰 바다』, 강옥구 옮김, 동쪽나라(=한민사), 1999.

  3. A. J. Muste, 『The Essays of A.J. Muste』, edited by Nat Hentoff, New York: Simon & Schuster, 1970.

[번역: 페트라 켈리의 『녹색을 생각한다』] 시리즈는 약 5회에 걸쳐 페트라 켈리의 『녹색을 생각한다 -환경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비폭력에 관한 에세이』 (1994, 국내 미출간) 중 일부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책 먹는 오리

영어 번역하고 글 쓰는 '책 먹는 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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