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상태에서 벗어나 사건들과 마주침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정동을 생태적지혜연구소 故신승철 소장은 늘 강조했다. 그 말처럼, 걷기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물들과 마주치며 끊임없이 생각을 깨우고 발명들을 생성한다. 심지어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묵상할 수 있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정신은 내 다리가 움직여야 작동한다.”며 걷기로부터의 생각을 예찬했다. 여기에 들뢰즈와 가타리는 걷기는 세계와 연결하고 세계를 드러내는 본질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직관”이라고 정의한다.
쿄토에는 일본 철학 체계를 세운 철학자 니시타 기타로가 매일 교토대학에 출근하며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고 오스트리아 하일리겐슈타트에는 ‘베토벤 산책길’이라 불리는 숲길이 있다. 이외에도 도시마다 보들레르, 헤겔, 하이데거, 버지니아 울프, 조지훈, 이응노 등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몸을 만끽하던 길이 있다. 브루스 보가 지은 책 『플라뇌르, 산책자』는 전 세계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매혹한 길들을 따라 걸으며 길과 생각의 교차를 음미한다. 이렇게 걷기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철학가와 예술가뿐 아니라 걷기는 새로운 발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선물한다. 지역을 발명하는 〈노플랜워크숍〉에서도 지역을 걸으며 관찰하는 와칭(watching) 프로그램을 특별하게 생각해 『지역의 발명』 속에 관찰 방법, 과정, 사례 그리고 관찰자의 태도를 안내하는 ‘지역을 발견(발명)하는 관찰’이라는 장이 있다. 이렇게 지역을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일상 속 사건들과 마주침으로 감각을 증폭시켜 강렬한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재배치된 몸이 다른 생각과 체험을 담을 신경세포를 수천 개씩 만들어낸다고 한다. 길 위의 세계에서 만난 가시적/비가시적 사물들과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상호경험으로 온몸이 진동하며 깨어나는 자극적인 경험이다.
짧게는 4시간부터 길게는 3일 동안 진행되는 〈노플랜워크숍〉 와칭은 사람들 행동을 관찰하는 방법과 생활환경을 관찰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구성된다. 걷는 동안 시시콜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고, 주인 없는 간판이 쓰러진 창고가 눈에 들어오고, 바닷가 마을의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불규칙한 돌담의 리듬을 느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비결은 지역 주민에게는 반복되는 환경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버스정류장, 길거리 의자, 자전거 등 주제를 주고 지역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에게는 주제 없이 자유롭게 발견과 발명을 제안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아무렇지 않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지역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숨 가쁘게 지역을 구성하는 인간/비인간 요소들과 관찰자의 생각 사이에 위치조정이 시작되고 익숙한 배치를 재구성할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지역 발명의 순간이다.

알게 모르게 철학자와 예술가, 지역의 발명가들이 사용하는 거리를 걷는 일이 2013년 영국 런던의 사업가 데이비드 펄에 의해 스트리트위즈덤(street wisdom) 워크숍으로 탄생해 런던, 시카고, 솔트레이크시티, 멜버른 등 여러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스트리트위즈덤은 ‘거리와 관계 맺는 익숙한 방식을 바꿔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는 컵셉과 정해진 정답 없이 ‘단순하고’, ‘재밌다’는 장점이 있다.
오픈 소스로 공개된 데이비드 펄이 안내하는 3단계로 나눠진 스트리트위즈덤 방식이 있다.
첫 번째 The Tune Ups (15분) :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3분씩’ 오감을 차례로 발현시키는 단계. 첫 3분 동안에는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색, 형태, 도구 등 주제를 줄 수 있다.) 다음 3분 동안에는 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다음 3분 동안에는 냄새에 집중한다. 다음 3분 동안에는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맛에 집중한다. 마지막 3분 동안에는 촉감(느낌)에 집중한다.
두 번째 The Quest (45분) : 걸어서 오감을 ‘튜닝’한 다음 탐색을 시작하는 단계. 내가 가진 질문과 외부의 오감을 연결하며 천천히 걷는다. 보이는 것, 소리, 냄새, 맛, 촉감과 내가 가진 질문을 자유롭게 연결하고 확장해본다.
세 번째 The Sharing (15~30분) : 함께 한 사람들과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단계.
서로의 다양한 생각들이 교환되면서 아이디어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국내에 스트리트위즈덤을 소개한 THE LAB h. 김호대표는 스트리트위즈덤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워크숍을 진행하는 중이다.
1. ALONE 혼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TOGETHER 혼자 하지만 동시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함께한 사람들과 나눌 때 아이디어가 더 풍성해진다. 3. SLOW DOWN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4. SOMETIME STOP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하면 멈춰서 글을 쓰거나 스케치한다. 5. WANDER 정해진 목적지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다.
〈노플랜워크숍〉 와칭에서는 주의를 기울이거나 생각 없이 몽상하며 걷는 동안 모든 감각을 총체적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런 다음 불쑥불쑥 영감이 올라오는 색다른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고 기록한다.
생동하는 봄이 왔다. 메모지와 펜, 사진기, 줄자, 스케치북, 탁본을 할 종이 그리고 물통과 모자를 챙겨 운동화를 신고 거리로 나가자. 발명의 씨앗들이 온몸 사이사이로 틔워져 올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