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동화] ⑤ 2025년 7월의 시들

아주 조금은 남겨진 이 빌라마을의 숲에서, 작은 나뭇가지 긁어모아, 비가 그치면 다시 가람 따라 자신이 살던 마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노인은 뒷산 가다귀로 피워낸 작은 연기로, 이 여름 모든 것들을 안아보고 싶다.

2025년 7월,

가람

여름이다. 2025년의 여름.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는 놀라 꽤나 자주 눈물을 쏟아내는 듯하다.

한편, 이제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쓰는 게 예전보다 불편해진 어느 노인이 집 밖으로 나와 누군가 내어 놓은 오래된 나무의자에 앉아, 가금에 빗물 받아들이며 묵묵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언덕길 작은 빌라마을 가녘에 앉아있는 노인은, 저 멀리 가람이 될 빛줄기를 듣는다. ‘이 아가의 눈물이, 가락가름 모여 언젠간 바다가 될 거야’

아이가 우는 동안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공기 구름 흐르던 보이지 않는 길들이 노인 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직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난 가을이 떨군 가드라든 낙엽들이, 좀, 더 땅에 가까워진다.

노인은 가람 따라 가다보면 있는 고향의 불을 지피면 피어나던 냄새가 문득 그립다. 아주 조금은 남겨진 이 빌라 마을의 숲에서, 작은 나뭇가지 긁어모아, 비가 그치면 다시 가람 따라 자신이 살던 마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노인은 뒷산 가다귀로 피워낸 작은 연기로,

이 여름 모든 것들을 안아보고 싶다.


어린 새가 운다

어린 새가 운다

작은 몸, 사방을 둘러싸고

굵은 눈물방울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네

어린 개가 운다

어린 개가 운다

자신이 왜 이곳에 묶여있어야 하는지 몰라서,

보이지 않는 엄마에게 울음을 들려주네

새는 젖은 가지 움켜잡고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보네

개는 비 그치고 내일은 무지개가 뜰 수 있다고 믿으며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을 가만가만 들으며

기다리네.

남산에서. 사진 : 규리

하나, 둘 씩 콩을 깠다.

오른손의 어린 아이가

저 멀리서 나를 다시 찾아온다.

할머니,

지금 가고 있어요.

빗속에서 걷는 제 걸음 소리 들려드릴게요.

할머니의 오른손이 점점 살아난다.

휘야

아— 이 아 이 아–

우— 호— 이, 후–

오— 우— 랑— 랑

풀잎 함부로 꺾지 마라, 손 벤다.

가풀막에,

풀잎 등골에

물이 되어 녹아버린 너가

흐른다.

나는 너를 쪽쪽 빨아들이며

애도하고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볼, 솜털, 귀, 머리카락, 잎들, 목덜미, 겨드랑이, 다리 사이로 부는 실바람에 너는 네 이야기를 싣고 간간히 내게 불어와 작지만 넓고 깊은 어떤 공간이 있다는 걸 비밀처럼 말해주었지.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어디 있어?

너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혼자 갈매를 껴안고 있어.

여름아, 여름아

너는 무엇이 되려고 그렇게 우는 거니?

자, 여기로 안으로 들어와.

내 등을 타고 흙으로 들어와.

더듬더듬 내 뿌리를 찾아가.

나는 오래도록 너를 감고 싶어.


아— 애— 이— 오— 우

왜 내가 나로 가득 차서

자꾸자꾸 무너져서

물이 되어

떨어져서

너희를 삼켜내야 하는 걸까?

오— 애— 이— 애— 오— 이— 애— 오— 이— 우

나, 네게 갈래, 풀에게 갈래, 나무에게 뿌리에게 갈래

꽃잎이 되어 떨어져보고 싶어


풀은 애도한다. 사진출처 : DominikRh

비 내린 뒤

땅과 가까이 사는 것들은

모두 갑삭.

풀은 애도 한다

살아나네.


복날

개들이 운다 집 앞 카페의 개가 높은 소리로 울면 숲 속 보이지 않는 개는 낮은 소리로 운다. 처음에 카페는 어린 개 두 명을 키웠지만, 더 이상 어린 개가 아니게 될 때 결국 한 명만 남고, 나머지 한 명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빨간색 파란색 개 목줄이 된 전기선.


석양이 뜨기 시작할 때

길가에 사람은 없고

카페에도 없으니

우리는 그때 대화를 해야 한다.

왜 내 가족들은, 나와 비슷한 몸을 가진 것들은

다들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 것일까.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내 안에는 빗방울도 있고, 산도 있고, 까치도 있고, 샘도 있고, 계곡도 있고, 냇가도 있고, 강도 있고, 바다도 있다.

이른 아침, 그리고 깊은 밤

인간이 없을 때면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나와 비슷한 존재들에게

켜켜이 쌓이게 된 내 바다를 들려준다.

나의 바다는 너울너울

내 강물은 서서히 차올라

너에게로 간다.

한참을 듣고 있으면,

낮에는 명개만 남는다.

반짝이는 것이 섞인 고운 흙에 내 발등을 비벼보고,

또 뒹굴어보고도 싶다.

낮의 시간은 매미에게 넘겨준다, 매미가 제 바다를 들려주도록.

집 뒤엔 작은 그늘이 있다.

혼자서 바다를 듣고 있는 동안, 내게도 바다가 생겨난다.

규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언젠가부터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계절 동화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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