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시민 VS 기후난민

뜻하지 않은 코시국 3년차, 지난 3월 동해안 산불이 그랬듯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재난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난민으로 남을 것인가, 기후시민으로 거듭날 것인가. 이제는 다시 소셜디자이너를 이야기할 때!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 발화로 시작된 동해안 산불은 213시간 43분만에 주불이 잡혔고, 뒤늦은 비였으나 그 덕에 진화체제로 전환될 수 있었으며 완전 진화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 역대 최장, 최대 피해를 기록한 화재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주택 319채를 비롯해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종교시설 31개소 등 총 643개소가 소실되었고, 13일 오전 6시 기준 산림 피해 추정 면적은 2만4,940ha로 서울 면적의 41%라고 하니 가히 역대급이라 할 정도의 피해 규모였다. 근 열흘간의 화재는 인근 문화재와 원전까지 집어삼킬 듯 순식간에 번졌고, 불길은 잡힐 듯 말 듯 일생을 바쳐 갉고 닦아온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같은 시기 전국 곳곳에서 추가로 들려온 크고 작은 산불 뉴스는 온 국민의 불안을 가중케 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산불의 원인 분석에 의하면 자연발화가 보고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상 사람에 의한 실화가 대부분이다. 산불은 진화되었으나 산불 예방을 위한 교육과 빠른 진화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강하는 일은 우리에게 남은 중대 과제가 되었다. 산림청을 비롯한 지자체들은 더욱 강력한 산불방지 대책을 발 빠르게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계속 확대되는 재해의 가중치는 인력으로는 도리가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을 기후변화로 꼽는다. 특히 이번 울진 산불이 크게 번진 이유는 겨울에 비와 눈이 오지 않고 건조한 날이 장기간 지속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고 거기에 강한 바람이 더해져 산불의 방향이 수시로 바뀐 탓이라고 한다. 겨울 가뭄이 봄 가뭄으로 이어지고, 토양습도가 35%까지 떨어지면서 숲이 불쏘시개 그 자체였다는 거다.

이전의 삶으로 되돌릴 순 없겠지만 이재민들의 일상회복과 피해 복구를 위해 국민 성금이 신속히 모아지고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쓰나미로 사는 곳을 떠나야 하는 이주민이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고 있고 급기야 기후난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이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는 직접적이고 심각한 징후들을 볼 때 결코 남의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불길함마저 든다.

기후 변화가 훑고 지나간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기후 난민의 등장이다. 기후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정립돼 있지 않지만, 세계은행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해수면 상승, 폭풍 해일 등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생존을 위협받아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사람들을 기후 이민자로 정의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실향민은 780만 명에 이르고 기후 난민이 분쟁 난민보다 3배가량 더 많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050년 안에 기후 관련 사건으로 최소 12억 명이 실향민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주거 위협은 인프라가 열악한 국가를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세계은행은 2018년 보고서에서 기후 관련 조치가 전 세계적으로 취해지지 않으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 3개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기후 이민자가 2050년 안에 수천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1.8.15. 경향신문 기사 발췌
NETFLIX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 포스터.
NETFLIX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 포스터.

존 햅터스, 크리스틴 사무엘슨 감독의 《체념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이라는 다큐를 봤다. 체념증후군은 스웨덴에 난민 신청을 한 가정의 아이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강한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 말수가 줄고 밥을 먹지 못하다 결국 장기간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증상이다.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현실을 피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해석이다.

체념증후군은 최근 스웨덴에 난민 신청을 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발병하고 있고 최근 보고된 것만 200건이 넘는다고 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난민들의 유토피아였던 스웨덴이 난민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정부의 난민 정책이 급격히 바뀐 것을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망명 과정이 까다로워졌고 망명 심사시 법정에 가족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데 이주 과정에서 있었던 잔혹했던 사건 기록을 어린아이가 있는 앞에서 모두 읽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큐에서도 부모의 증언이 등장한다. 망명 과정 중 국가로부터 아빠가 당한 폭력과 엄마가 당한 강간 사건까지 아이가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성인보다 언어습득이 빠른 어린아이기에 스웨덴 말을 부모보다 더 빨리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막내가 모든 상황을 듣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망명이 거절되면서 아이는 점차적으로 잠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부모가 겪은 끔찍한 상황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게 되고 결국 깊은 잠에 빠지는 것으로 현실을 도피하게 된 것이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말이다. 이는 난민들에게 적대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호주의 난민수용소에서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 문제는 개인의 인권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이권, 해당 국가의 정치적 노선 등이 얽혀있어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으나 난민을 보는 인식 문제, 난민 문제를 푸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해법의 부재, 인간의 무한 이기심을 허용하고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먼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노래할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눈앞에 닥친 현실을 체념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기후난민의 확산 문제를 체념증후군과 연결시키기엔 아직까진 직접적인 연계성은 없고 명확히 보고된 바도 없다. 그러나 2050년까지 실향민 12억 명을 예측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의 보고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예측 불가능의 시대의 예측은 오히려 그 신빙성이 크게 증폭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경험했듯이 기후난민의 확산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심각한 징벌을 맞닥뜨리게 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희망제작소의 [기후]문제해결을 위한 소셜디자이너, 기후위기×시민 시리즈 강연 소식을 접했다. 언제부턴가 기후 강연과 정보는 넘쳐나는데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찬찬히 내용을 들여다봤으나 역시나 많이 들어본 익숙한 내용이었고 크게 끌리진 않았다. 그러나 참여했던 희망제작소 기획에 실패한 기억이 없던 터라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과 기후문제는 같은 내용을 백번 들어도 모자라단 생각에 참가신청을 눌렀다.

첫 강의는 놓쳤고, 실천 사례에 해당하는 두 번째 강의부터 들었다. 소설가 최정화의 ‘없이 살기’는 냉장고, 세탁기, 인터넷, 화학제품과 새 옷 없이 사는 삶을 선택한 지난 5년간의 이야기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기후행동의 대표 사례라면, 심재철 소장의 ‘나를 넘어 우리 모두 실천하는 온실가스 감축 3+1’은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다는 5천 세대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운영을 두고 입주민 대표를 하면서 적극적인 에너지 절감 전략으로 경비원의 일자리를 지켜내고 주민 다수를 기후행동에 긍정적으로 동참시킨 정의로운 전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상당히 구체적인 기후시민으로서의 성공담은 그야말로 모범답안이었고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이 있었다. 유튜브 생중계 강연임에도 140명이 넘는 참가자가 거의 이탈 없이 끝까지 강연을 듣고 있었고, 의견과 질문에도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득 ‘이런 것이 희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은 역시 수작(秀作)이란 생각도 함께 말이다.

우리집 두꺼비집(배전함) 라벨링.
우리집 두꺼비집(배전함) 라벨링. 사진제공 : 한영미

약함이 모여 이루는 연대의 힘은 이렇게 시민 한 명 한 명의 작은 관심과 의지가 모여 더 큰 강함을 이루는 것이라는 진리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나는 배운 걸 즉시 행하기로 했다. 당장 두꺼비집을 열어 스위치를 하나씩 내려보고 각 스위치의 전원을 라벨링했고 에어컨에 해당하는 스위치는 사용 전까지는 내려두기로 했다. 당장 냉장고와 세탁기, 인터넷 없이 사는 건 못하지만 비건지향 식생활은 3년째 무리 없이 유지하고 있고 화학성분 없는 세제로 모두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다. 잔뜩 끌어안고 있던 물건과 옷들은 한 달 전부터 대거 버리거나 나누기 시작하였고, 아직까지는 소비의 즐거움을 끊지 못해 새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은 못하겠으나 사는 빈도는 확연히 줄었으니 이 상태를 잘 유지해 보는 것으로 강연 이후의 자가 점검을 마쳤다. 그리곤 시리즈 강연의 홍보 문안를 다시 찾아봤다.

“평범한 나도 지구를 구할 수 있나요?
거대해 보이는 기후문제, 내가 바꿀 수 있을까요?”
작지만 끊임없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해 온 시민과 활동가, 환경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내가 하는 일상 속 작은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출처 :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텀블러 하나 사용한다고 지구를 구하지 못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고 이 정도의 기후 정책으로는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한다는 냉철한 진단으로 괜한 희망고문 따윈 하지 말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 힘은 나를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는 점이고, 거대 담론에 비해 궁색한 발버둥으로 보일 진 모르겠으나 구체적인 일상의 작은 실천이 삶을 더 선명한 진보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멀리 보면 희미해 보이는 희망이 일상의 꾸준한 노력만으로도 증명되는 것을 현실에서 목격하는 것이랄까. 체념증후군으로 깊은 잠에 빠진 다리아에게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난민 승인 소식과 더불어 끊임없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결국 다리아는 1년이 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듯이 말이다. 이어서 유튜브에 업로드 된 기후위기×시민 시리즈 강연 윤순진 교수의 1강과 마지막 강좌까지 정주행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넋 놓고 기후난민이 된 채 체념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기후시민이 되어 우리의 삶부터 바꾸어 나갈 것인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물려주고 지구를 구하는 선택,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소셜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 글은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월간영청문] 4월 13일자 〈그레이스칼럼〉에 실린 글을 수정 후 재게재한 것입니다.

한영미

굴러 굴러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에 있습니다만 날마다 진로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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