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을 알아채고 배치하기 : 펠릭스-가타리의 배움을 따라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 중 욕망과 탈주의 경험을 주제로 글을 쓰지만 어렵다. 어렵긴 하지만 또 재미있다. 쉽게 쓴 철학서도 좋지만 어려운 철학서를 읽고 철학자가 말하는 개념을 쫓아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신선하다. 모두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지점에 공감할 수 있다면 바로 그곳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첫 번째 이야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재작년 겨울 어느 날, 퇴근하고 왔더니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굵은 눈물을 떨구며 펑펑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 우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나름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고교 시절을 평탄하게 보내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울면서 힘들다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가 고2 기말고사 시험을 망치고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시험은 다음에 잘 보면 된다고, 토닥토닥해주는 나의 얄팍한 위로로 아이의 슬픔이 곧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순간 나는 아이가 힘겨워하는 이유가 단순히 성적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원하는 학교는 ‘대학을 잘 가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50분 안에 문제를 풀고, 맞은 개수대로 점수가 나오고 등수가 매겨지는 입시를 준비하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아이 내면의 욕망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차별보다는 평등한 학교의 문화를 원했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욕망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푹 자고 싶다” 등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욕망은 나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조건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는 학교라는 안전한 공간과 학급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며 학창 생활이 평화롭고 행복하길 바랬다. 그러나 현실 속의 학교는 진정한 배움과는 거리가 멀다. 더 이상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사제지간의 돈독한 정을 쌓으며,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지 않는다. 왜 학교는 아이들이 느끼는 욕망으로부터 멀어져 있는가?
두 번째 이야기.

올해 참 힘든 아이를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아역배우를 지망하고 있다. 가끔 촬영을 가기 위해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해 결석하고는 영화배우를 만나고 왔다고 자랑한다. 수학을 지독히 싫어해서 시간표를 바꾸어 달라고 떼를 쓴다. 자신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반면 다른 아이들이 자기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절대로 참지 않는다. 누군가 자기에게 한 말과 행동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는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하여 소리소리 지르며 따진다. 자신만이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 교사로서 난감하다. 자신만을 봐달라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1명의 아이 때문에 나머지 23명은 늘 조마조마하다.

24개의 빛깔의 다른 욕망이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그 관계 속에서 배치받은 내 욕망을 만난다. 학급이라는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욕망 중에는 거칠고, 어렵고, 힘든 욕망도 있지만, 창의적이고 반짝반짝하는 욕망도 있다. 어떤 욕망이든 나는 그 속에 있고, 나는 그 관계 속에서 나의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과학, 예술, 혁명의 원동력이며 대안 사회를 만들고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욕망으로 보았다고 한다. 24개의 욕망은 어떤 욕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세 번째 이야기.

며칠 전 “개성 쩌는 축제”라는 제목으로 학생회 주최의 축제를 열고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혁신학교이기에 가능했던, 아이들이 기획하고 준비하고 즐긴 축제였다. 교사는 옆에서 거들 뿐. 아이들은 반짝이고 ‘쌈박한’ 내용으로 새로운 축제를 만들었다. 6학년 학생회장이 교사 다모임에서 자신들이 기획한 축제계획서를 발표했다. 감히(?) 교장샘에게 ‘1~2학년은 교장샘이 책임지고 부스를 운영해 달라’고 역할을 나누어 주고, 과학실에 방탈출 부스를, 교실에 노래방을 꾸미는가 하면, 빼빼로 만들기 체험, 드론 날리기 등 교사들 머릿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다양한 코너를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냈다. “방 탈출과 이어달리기를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고 밝힌 어떤 아이의 말처럼, 아이들의 다양한 욕망이 반짝반짝 빛나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축제였다.

한 철학 교수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관중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졌나요?”라고. 인간을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일에 몰두하지 못할까? 우리는 왜 지식이 늘어나도 자유롭지 못할까? 우리는 왜 충만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할까? 왜 창의적이지 못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할까?

내가 찾은 답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헌신과 책임감, 관용과 예의 등은 중요한 삶의 가치이나 재미가 없다.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의 욕망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보이고, 자신이 찾은 그 길에 몰두하여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삶이 재미있어져야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저,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새물결, 2003)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저,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새물결, 2003)

코로나 19를 겪는 동안 나는 펠릭스-가타리라는 철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읽었던 신승철 박사의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 철학』은 한마디로 어려웠다. 리좀, 다양체, 무의식과 분자적인 것, 추상적인 기계와 배치물, 기관 없는 몸체, 리토르넬로, 유목론, 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쉽게 이해하기에는 까다로운 개념들로 가득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서 『천개의 고원』은 읽어도 읽어도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철학을 접한다는 것은 복잡한 현대사회를 보는 새로운 철학적 시각을 갖는 일인 동시에 나에게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했다.

지금까지는 살아오면서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나를 살펴보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욕망과 욕구를 구별하지 못하고 욕망을 잘못된 욕심인 줄 알았다. 욕망을 억누르며 애써 무시하고 살아왔다. 항상 나의 행위는 도덕적이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과 연결되어야 하고, 운동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욕망이 있을까? 어떤 욕망이 있을까? 욕망이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것과 계열화되어 있는가? 그리고 내가 만나는 것이 어떤 것이 욕망을 갖게 하는가? 들뢰즈와 가타리의 ‘탈주선(line of fight)’개념을 사용하면, 기존에 주어진 배치를 전복하여 다른 배치로 변환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기존의 배치를 유지하는 욕망, 기존의 배치에 있는 길든 욕망을 탈영토화하여 새로운 배치, 새로운 욕망으로 변형시키는 것이고. 다른 욕망의 배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탈주란 기존의 배치 안에서 정해진 것, 고정된 것, 강제되는 것에서 ‘벗어나 달리는 것’이고, 기존의 지배적인 가치나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나 방법을 창안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탈주란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하여금 도망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욕망은 배치로서 존재하지만, 어느 하나의 배치에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흐름이며, 이 흐름은 주어진 배치가 만들어 놓은 벽이나 선분(segment)들에 갇히지만 차면 흘러넘치며 다른 배치를 향한 탈영토화운동을 야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욕망은 일차적으로 탈주적인 흐름이라고 하지요. 이들이 말하는 욕망의 이론을 종종 ‘탈주의 철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이진경, 2009)

나처럼 소심한 인간은 탈주를 쉽게 경험하지 못한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 의무감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눈높이에 벗어나거나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의 소수자보다는 다수자로 지금까지 성실하고 착실하게 세상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자들에게 “자신의 욕망의 존엄함을 위해서 행동에 나서라”고 말한다. 기존의 가치나 방법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하여금 도망치게 하는 것으로 생각과 사고의 배치를 바꾸라고 한다. 또한 색다른 욕망이 다른 미래를 가능케 하며, 모든 욕망하는 생명체는 존엄하다고 한다. 욕망하는 기계로서 다시 내 삶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 배치하고 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나는 들뢰즈-가타리 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다.

아직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 그들의 철학이 아직 내 삶 속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일 것이다. 사람은 혼자 할 때보다 여럿이 할 때 더 행복하다. 사람들과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며 좀 더 행복한 배움을 이어가야겠다. 그리고 욕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야겠다. 그래야 내 욕망이 매끄럽게 탈주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

투모로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위해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30년차 초등교사입니다. 아이들이 배움에 몰입하는 모습을 가장 좋아하며, 등산과 음악을 삶의 즐거움 삼아 살고 있습니다. (오늘보다 더 의미 있는 내일을 살자)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13 + 13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