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 앞에서 공통의 감각, 슬픔을 가르치다

할로윈 축제 중 3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인파 속 압사였다. 자라나는 학생들과 함께 추모하며 무엇을 나누어야 할까? 기후위기,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필자는 연대의 능력이 필요하며 연대를 위해 공통의 감각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참사 앞에서 나눌 감각이란 슬픔일 수밖에 없다.

10월 30일 아침.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속보는 줄을 이었으며 사상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10월 초부터 반 아이들이 파티에 대한 기대를 부풀린 터라 아이들 생각을 하며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 속 상황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인파 속에서 죽어간 청년들의 소식을 들으며 2014년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들은 청소년과 청년의 푸릇한 시절이 세월호 참사와 팬데믹,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으로 도배된 재난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를 청은 가능성이 돋아나는 초록이 아닌 우울함을 뜻하는 파랑인 것 같았다.

기사를 보며 졸업생들 생각이 났다. 그 자리에 있었을 친구들은 떠올리며 졸업생들에게 연락을 하고 SNS를 열어 이름을 검색하며 피드를 확인했다. SNS에는 현장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들로 넘쳐났다. 안타까움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이를 그대로 보고 있을 반 아이들이 생각나 학부모와 함께 있는 채팅방에 아이들과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시되 SNS에 올라오는 영상을 접하지 못하도록 주의시켜줄 것과 이를 청년들의 탓으로 돌리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공지 글을 올렸다. 교사로 이를 아이들과 어떻게 나눌지 생각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할로윈의 밤, 참사가 일어나다

10.29 참사 앞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나눌 가장 근본적인 나눔은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 이 감각이야말로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슬픔이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될 수 있다. 
사진출처 : Youngjin
10.29 참사 앞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나눌 가장 근본적인 나눔은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 이 감각이야말로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슬픔이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될 수 있다.
사진출처 : Youngjin

밤이 다 되도록 이 일을 아이들과 어떻게 나눠야 할지 고민했다. 지난 참사들을 아이들과 적절히 나누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반성이 있었던 터. 참사나 불평등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묻어나는 무심함이나 뒤에 이어지는 생각들은 교사가 가진 한계를 느끼게 했다. 이를 느끼는 감정을 짧고 간결하며 즉시 휘발되는 듯했고 뒤에 오는 판단은 길고 명료하며 아이들의 삶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듯 보였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이런 문제의식의 줄기에는 몇 년 전, 공교육의 중학생 아이들과 기후위기 수업을 하며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기후위기의 참혹함과 불평등한 재난의 증거들, 옥스팜의 불평등 보고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해 주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정보를 넘어서는 실제적인 경험을 수업에서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옥스팜 보고서의 수치와 같은 불평등 상황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실험해보자고 제안했다. 정보와 이미지에 지친 아이들은 수업의 지루함과 흥미가 뒤엉킨 수락을 하였다.

수업 내용은 옥스팜 보고서를 본 따 학급의 10%의 아이들에게 전체 책상과 의자의 절반을 주고, 학급의 50% 아이들에게 전체 책상과 의자의 10%만 준 후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식이었다. 좁은 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는 아이들은 불만이 가득했으며 금방 수업의 의지를 잃은 반면 넓은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였고 더 많은 문제를 맞추려 애썼다. 여기까지는 생각대로 수업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헌데 문제의식은 그 후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커졌다. 불평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보다 가난해지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부정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소위 상위 계층을 점해야 하겠다는 아이들의 다짐을 들으며 수업의 근본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10.29 참사로 이어졌다. 아이들과 나눈 결론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사회의 부정의를 극복하는 방향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무엇이 빠진 것일까?

지인들과 문제의식을 나누고 도움을 청하며 이것이 멀리 있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가까이에 있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그만큼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슬픔, 무력과 분노로 이어지는 그 감정이 올바른 정치를 구현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들과는 참사와 재난을 그를 대하는 감정부터 나눠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음 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휴일 동안 아이들이 접한 정보를 나누고 궁금한 것을 묻게 했다. 시작부터 아이들의 질문은 날렵하고 날카로웠다.

“축제였다는데 몇 시부터 축제였나요? / 사람들이 왜 죽었나요? / 어떤 안전장치가 있었나요? / 우리나라 문화가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이 모였나요? / 작년에도 많이 모였을 텐데 왜 올해 사고가 났나요? / 왜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한 건가요? / 사망자가 150명이 넘는다는데 생존자는 몇 명인가요? / 생존자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 실종자들도 있다는데? / 축제에서 입장료는 얼마였나요? / 응급처치는 어떻게 했나요? / 유명인을 따라가다 그렇게 되었다는데? / 밖에서 사고 났는데 클럽 안에서 사람들이 술 먹고 춤추고 있었다는데?” …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 왜 하는지를 물었다. 적잖은 아이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도 맞는데 우선은, 이것이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 학교 사람들을 다 합치면 150명이 안 되거든. 그런데 만약 내가 학교에 오지 않은 어느 날 사고로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죽었다면 어떨 것 같아?”

아이들은 다양한 감정들을 말해 주었다.

“죄책감이 들 것 같아요. / 미안할 것 같아요. /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것 같아요. /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것 같아요. / 공허할 것 같아요. / 학교 올 의지가 없어질 것 같아요. / 하루종일 집에서 울 것 같아요. / 숨이 안 쉬어질 것 같아요. / 멍해질 것 같아요. /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 같아요. / 더 잘 해줄 걸 하며 후회할 것 같아요. …”

“그래! 그런 일이 일어난 거야. 누군가가 놀러 갔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안정장치가 없는 곳에 갔다가 허무하게 죽은 거야! 이건 그런 일이야!”

그리고는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답하고 마무리하였다. 방과 후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간략히 추모행사를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사서 선생님께 아이들과 나눌만한 그림책을 골라달라 부탁드려 추천받은 마이클 로젠의 『내가 가장 슬플 때』를 함께 읽고 묵념을 한 후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유가족들에게 메모를 남기는 방식으로 작은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연대를 위한 공통의 감각, 오늘은 슬픔

참사와 재난에 대해 아이들이 가져야 할 공통의 감각은 어쩌면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Tara Winstead
참사와 재난에 대해 아이들이 가져야 할 공통의 감각은 어쩌면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Tara Winstead

나는 이 과정을 겪으며 아이들이 너무 큰 일에 대한 감정적 저항을 내려놓고 슬픈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슬픔이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 가족 간의 단절을 회복시켜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당면한 초연결 사회는 그 연결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연결이 곧 생존의 길임을 당위로 설명할 뿐 연결된 끈의 질감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연결의 결과는 손쉬운 연결과 차단이며, 교감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애도 기간 내내 사회에서는 애도를 넘어 정치행위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동의한다. 그러나 교사로 아이들과 만나며 가장 기본적인 것, 가정 근본적인 것을 한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였다. 아이들이 사회의 주체로 변화를 추동해가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연대를 위한 공통의 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참사와 재난에 대해 아이들이 가져야 할 공통의 감각은 어쩌면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리노

사유를 ‘좋아하지만, 조금 부족한 사람.
가르치기 위해 배우고 자르치며 배우는 사람.
성미산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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