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제주] ⑧ 폭력에 침묵하는 학교를 거부한다 -반인권적인 공교육의 민낯

나는 오늘 학교를 자퇴합니다. 백호기 고교 축구대회 응원전에서 일어난 반인권적인 상황을 알리기 위해, 2차 가해와 방관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학생들을 자살로 내몰고, 친구들을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내모는 살인적인 공교육을 거부하기 위해 폭력을 눈감는 학교를 거부합니다.

4월 22일, 내 인생의 변환점을 맞이한다. 내 삶이 한번 꽃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나는 1년이 넘게 다녔던 고등학교를 스스로 그만두었다. 백호기라는 고교축구대회의 응원을 통해 드러난 이기주의적이고, 살인적인 공교육을 거부한 것이다.

백호기는 50년 넘게 이어진 제주도의 고교 축구대회이다. 이 대회가 유명해진 이유는 바디섹션, 카드섹션 등 학교마다의 응원문화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글자를 만들고,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을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옷을 펼치고, 접어가며 또는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펴가며 바디섹션을 진행한다. 50년이라는 기간 동안 제주도의 소위 명문 고등학교들 다섯 군데에 남아 있다. 이 5곳에 속한 고등학교 동문은 졸업하면 백호기 응원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끈끈한 애교심 등을 추억하게 된다. 과연 그 ‘끈끈한 애교심’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가 연습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은 이러했다. 연습장소인 체육관에 가면 학생회 간부들은 대열에 맞춰 서 있고, 응원하는 학생들은 정렬을 맞춰 체육관에 들어가 자신이 위치한 구역에 반별로 들어간다. 학생회 간부들의 “뒤돌아보지 말라고”, “누가 뒤돌아보래?” 등등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응원 연습이 시작되면 폭력적인 실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응원이 시작되면 가운데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지시하고 10여 명의 학생회 간부들은 뒷짐을 지고 정렬된 대열 사이사이를 지나며 소리친다. “대답은 악으로 합니다 알겠습니까?”, “배운 거 맞냐?”,“목소리 봐라”,“웃음 나오지?”.“손동작 똑바로 안 하냐”,“뒤돌아보지 마라” 같은 말을 한다. 학생회장이 가운데서 “학생회! 립싱크하는 애들 잡아내” 등과 같은 말을 하면 학생회는 “악”이라고 대답하며 입만 벙긋거리는 애들을 잡아낸다. 이러한 행위는 학교에서 내세우는 대로, ‘애교심’을 기르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풍경은 인권침해이자, 전체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학교에 대한 애교심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에 대한 충성심과 전체주의적인 감정이 깃들이게 하는 것이나 아닌가? 사진 제공 : 정근효

집단의 이념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학생을 인간이 아닌 수단으로, 응원 도구로 보는 것일 것이다. 응원 연습을 시작하는 자세 중 하나가 45도 각도에서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자세이다. 600여 명이 동시에 이런 자세를 취한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이 모습에서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연상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신이 한 몸’이라는 내선 일체라는 말을 내세우며 일본의 조상신을 보고 참배하도록 강요한 것인데, ‘학교와 나는 한 몸’이라는 식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내선 일체와 비슷한 강요와 같이 느껴진 것이다. 또한, 응원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이 오른손을 위로 치켜드는 자세가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나는 나치식 경례가 떠올랐다. 충성심과 신뢰, 믿음의 상징으로 손을 뻗어 오른손을 드는 것으로 그들은 전체주의적 뜻을 굳게 시켰다. 이처럼 학교에 대한 애교심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에 대한 충성심과 전체주의적인 감정이 깃들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응원문화에는 학생들의 실질적인 자율권이 보장되고 있을까?

학생회와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이 응원 연습을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응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따라오는 모든 부당한 처우와 인신공격, 협박 어린 말은 각자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도망친 학생을 반기는 것은 오로지 외면과, 열등하다는 꼬리표뿐이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응원에 미참여하는 학생들도 경기가 진행되는 경기장에 같이 가야하고 하교 시간이 되면 알아서 하교하라는 방침을 내세웠다. 또한 응원 미참여자들은 학교 정규시간에 포함되는 응원 연습 시간에 연습이 진행되는 체육관 바닥에 앉아 연습 과정을 적나라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과연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학생회는 학생들을 위한 기구이다. 내가 다녔던 학교 규정에는 ‘학생들의 자치활동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학생회를 조직․운영한다’라고 학생자치회의 활동이 규정되어 있다. 또 학생자치회의 장인 회장과 부회장은 직선제로 선출한다는 규정도 있다. 직선제로 운영하는 의미는 학생들의 민의를 대변하고, 학생들의 존중을 기반으로 학생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즉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생의 공직자를 뽑는 것이다. 하지만 백호기 응원 연습 과정에서 학생자치회는 그러하지 못했다. 학생자치회 구성원들은 체육관에서 “뒤돌아보지 마”, “목소리 크게 안 할래” 등 인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했다. 화장실을 갔다 오는 친구들을 향해서는 “신속하게 자리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했다. 존중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학생회라는 권력을 가졌다는 그들만의 기득권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2차 가해와 방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깨닫길

백호기 인권침해 관련 논란이 터지고 제보한 학생을 근거 없이 특정하고, 비난하고, 경험을 부정하는 학생회와 학교 학생들의 말들이 귀에 들렸다. “정신병자”,“사회 부적응자”는 양반이고, 공개적으로 욕을 쓰며 비난하고, 메시지로 개인적으로 ‘입 닫고 살아라’ 등과 같은 인권 감수성이 저조한 학생들의 말들이 있었다. 학내 여론을 주도하는 학생회 중심의 주류적 학생들의 집단적 마초성이 발현되는 지점이 기존 군대식 폐습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는 점은 지역, 학교 내부에서 마초적 문화와 유대가 이미 깊숙하게 어우러졌음을 나타낸다.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학생을 비난하면서까지 형성에 골몰하는 그 ‘끈끈한 애교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학교 안에서는 그 어떠한 선생님도 공개적으로 제지하거나 2차 가해라는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학교 학생이었던 나를 어떠한 선생님도 책임 있게 보호해주지 못했다. 아버지가 자퇴 원서를 쓰기 전 학교 교감 선생님이 자퇴를 말릴 때 이런 말을 했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를 보호해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믿고 계속 다닐 수 있나요?”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혐오하고, 폄훼하는 모습 등을 애교심으로 정당화시키는 사람, 2차 가해가 뻔히 일어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방관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폭력’을 저질렀음을 빠르게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란다.

학교를 거부한 또 하나의 이유살인 교육인 공교육을 거부하는 것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학교에 다니는 행복’이 사라졌다. 바로 경쟁교육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들을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나누어 평가하는 살벌한 전쟁터였다. 또한 주입식 공부법과,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행동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게 하는 공교육. 오직 시험으로 점수 매기는 것이 바람직한 공교육. 친구들이 상스럽고 패륜적인 말을 해도, 선생님의 이름을 막 부르며 성희롱을 해도 대학만 잘 보내면 된다고 침묵하는 학교. 사람이 되지도 않았지만 소위 SKY에 가면 뭐든지 다 되는 공교육이었다.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저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공동체인이 아닌 부품처럼 여기는 학교를 거부하는 자퇴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인생을 위한 공부가 아닌 시험과 대학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학생이 죽어 나가도, 고통받아도, 모두가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가 되어도 침묵을 강요하는 공교육을 거부하는 것.

침묵하지 않을 것을, 살아낼 것을, 도망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이 사회에서 말하는 안전한 길이 있다.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나오고, 직장에 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등 이 사회의 일반적이고도 안전한 길이 있다. 나는 그 일반적인 길을 거부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잘못된 행동 앞에 침묵하지 않으며,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폄훼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낼 것을 다짐한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칭찬하며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당당히 나아갈 것을 나는 다짐한다. 나는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계속해서 잘못된 학교와 공교육 그리고 이 사회에 균열을 낼 것이다. 진실이 승리하는 그 순간에 나는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나의 깃발을 꽂을 것이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낼 것이다.

당당하게 붙어라. 나는 언제든 상대할 준비가 되어있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낼 것이다. 사진제공 : 정근효

이 기고문은 〈프레시안〉과 〈제주투데이〉에도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정근효

정근효는 제주에 거주하며 중학교 때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제주청소년기후평화행동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후정의와 관련한 책들을 읽으며, 사회적 약자와 반인권적인 사회문제를 보는 데 눈을 넓혔고, 반인권적인 상황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거부하며 자퇴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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