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제주] ⑦ 직진하는 ‘우회’도로, 사라지는 녹지공간 –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탄소배출과 인구과잉으로 기후재앙과 생물 대멸종이 다가온다. 도로와 주차장을 대폭 없애고 녹지를 회복하여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 토건 자본의 탐욕에 휘둘리지 말고, 출산 장려에 저항하며, 과잉 육식을 벗어남으로써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다. 인류가 생물다양성 회복을 꾀하는 생태 문명으로 전환해야 지구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다.

도로개설이나 확장을 생활 편익의 증대와 지역발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후보들은 도로와 주차장의 확충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서귀포 지역구에 출마해 3선 국회의원이 된 위성곤의 8개 지역 공약 중 6개 지역에 도로와 주차장 확충 약속이 포함됐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동홍-서홍 구간 조기 준공을 약속한 건 물론이다. 도로 관련 언급이 없는 나머지 2개 지역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 주차장, 체육센터, 복지회관, 유통센터 등 콘크리트 건물을 짓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었다. 공약이 실현되면 서귀포에 그만큼 녹지가 사라지고 땅이 숨 막히며 온열질환자가 늘어날 것이다.

지구는 물질적으로 닫힌계라서 인류가 끝없이 팽창하며 개발을 계속할 수는 없다. 1만 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이 시작되기 전 지구상 인구는 5천만이었다. 지금의 80억으로 늘어나기까지 자연을 착취해 온 결과가 기후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이다. 3년간의 팬데믹을 겪으며 플라스틱 사용량과 일회용품 쓰레기가 더욱 늘었다. 그만큼 탄소배출이 늘고 지구가 더워졌다. 2024년 2월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는 직전 1년간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2도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2030년 1.5도 이하 유지 목표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빙하가 녹고 벚꽃 개화가 빨라졌다. 이 추세면 21세기 안에 지구가 온열 지옥으로 변하고 생물 대멸종에 이를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한·중·일과 동남아는 여전히 석탄발전소를 지으며 온실가스 배출을 늘린다. 유럽연합 가입국들의 탄소 배출량이 1990년부터 2021년까지 30%가량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탄소배출이 줄어든 이유는 석탄 발전 감소, 재생에너지 사용 증가, 에너지 효율성 개선 덕분이라 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으로 기후재앙과 생물 대멸종을 막는 데 충분하지 않다. 인류의 삶이 지속되려면 녹지 보호와 숲의 복원이 필수다.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탄소를 포집·저장해 지구온난화를 막아주니 그렇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거둬내고 재자연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인류의 생존이 가능하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로 인한 자연의 복수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후위기 대응이나 생물다양성 보존이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아진 인류와 그 인류의 과잉 육식을 위한 가축 사육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지구온난화의 한 축을 이루는데도, 2024년 총선 공약에서 국힘당이나 민주당은 출산 장려 대책을 강조했다.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면 탄소 감축에 효과적이건만, 인구감소가 노동력 감소라서 자본의 성장이 위협받기에 자본가 정권은 저출생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를 가중할 도로와 비행장 건설을 밀어붙인다. 서귀포의 양당 국회의원 후보의 도로·공항·관광지 등 개발·건설 공약이 시민 편익을 위해서인 듯 포장돼도, 이는 토건 자본의 탐욕을 대변하는 것이다.

좌)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서홍동구간 2022년 8월 공사 모습. 사진제공 : 황용운 / 우)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서홍동구간 2024년 3월 공사 모습. 사진제공 : 서신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은 애초에 호근동 용당삼거리에서 토평동 삼성여고사거리까지 전체 4.2km, 35m 폭, 6차선을 예정했었다. 2023년에 3구간을 100m 늘려 4.3km가 되었다. 1965년에 처음 계획됐다고는 하나, 2012년까지도 착공계획이 없었던 것은 해당 도로가 필요 없어서였다. 우회도로와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중산간도로가 1992년도에 완공됐기 때문이다. 서귀포 신시가지의 제2시청사에서 동홍주공아파트, 서귀포오일시장으로 이어진 중산간동로가 현재 도시우회도로 기능을 이미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우회 차로가 필요 없다고 여겼기에, 도로예정지에 인접하여 교육시설들을 속속 세웠다. 1993년에 〈서귀포학생문화원〉을 제일 먼저 개관했다. 1995년에는 〈서귀포도서관〉을 문화원 바로 곁으로 확장이전했다. 2009년에는 〈외국문화학습관〉이 문화원 옆에 들어섰다. 2012년 〈제주유아교육진흥원〉을 도서관 옆에 지을 때까지도 도시우회도로 사업계획은 폐기가 유력했다. 설사 도로를 개설하더라도 학생문화원 일대 녹지 부분은 지하차도로 내면 된다고, 당시 서귀포 지역구 의원들과 당시 제주도 교육의원이던 이석문 전 교육감이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1

좌) 서귀포학생문화원 앞 잔디광장. 멀리 서귀포도서관 솔숲이 보인다. 사진제공 : 서신심 / 우)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에 위치한 나무 아래에서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 황용운

도로예정지 바로 곁에 유아교육진흥원까지 들어선 2012년 이후, 제주도 유입인구와 관광객, 렌터카가 늘어나던 상황에서 도로개설 요구가 고개를 들었다. 지역구 도의원이 앞장서 요구했다. 제주도는 2013년 기본계획에 이를 반영하고, 2014년에 도로예정지의 토지 보상에 들어갔다. 이후 학생문화원 일대 잔디광장과 소나무 숲을 뺀 90% 이상의 토지매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동홍동 학생문화원 일대 토지는 교육부 소유이다. 그 사용권을 위임받은 도교육청이 그 일대 녹지를 도로부지로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서홍동과 동홍동의 지역구 도의원들은 2012년부터 우회도로 개설과 학생문화원 이전 요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김광수 현 교육감이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도로개설과 문화원 이전을 공약하고 당선되었다. 2023년 교육청은 동홍동 서귀포학생문화원을 서홍동 삼매봉공원으로 이전하고 문화원 앞 녹지를 없애며 도로를 내는 데 제주도와 합의했다. 기관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도로개설의 문제점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회도로라 이름 하지만 실상은 원 도심지 한가운데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이다. 학생문화원 앞 녹지를 없애고 도로나 건물이 차지하는 불투수층이 늘어나면 집중호우 시 이중섭거리 아래 태평로가 침수될 위험이 생긴다. 교육문화벨트를 이룬 도심지 교육환경권이 침해되고 교통안전이 위협당한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예정지.
2020년 1월 21일 2차 시민토론회 때 김난영의 발제자료에서 옮겨옴.

녹지를 잠식한 자리에 도로나 건물이 들어서면 도시 열섬화가 일어난다. 시민들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날이 늘어난다. 이는 도시민의 거주환경 악화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냉방기 가동, 더 많은 전기에너지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더욱 부추긴다. 풍부한 녹지의 토양이 수분을 저장하고, 토양의 수분이 수증기로 증발하며 주변의 열을 흡수해야 여름철 열섬화를 막고 기후재앙을 예방할 텐데, 도로개설을 비롯한 도시개발은 이에 역행한다.

2019년 9월 5일 1차 시민토론회 때 김형훈의 발제자료에서 옮겨옴

더욱이, 우회도로가 지나가는 서홍천변 수풀은 맹꽁이의 서식처다. 맹꽁이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보호종 생물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흙과 수풀을 덮으면 맹꽁이가 서식처를 잃고 사라진다. 지구 생태계는 치밀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그물의 올이 빠지면 그물 전체의 올이 풀려버리듯, 어느 한 생물 종이 멸종하면 생태계의 복잡미묘한 먹이사슬이 끊겨 생물 종 전체의 멸종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지금 맹꽁이의 몰락을 방치하다가는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도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다. 인간이 계속 살기 위해서라도 멸종위기 생물을 필사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2022년 6월 25일 본헤르형남4차아파트 옆의 서홍천 물웅덩이에 떠있던 맹꽁이알들. 사진 제공 : 서신심

도로개설을 비롯하여 인간의 편의를 추구하는 모든 개발은 생물 대멸종으로 다가서는 길이다. 얼핏 쓸모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듯한 모기조차 카카오의 수분을 담당하는 종이 있다. 이들을 박멸하면 초콜릿을 먹지 못하게 된다. 벌이 사라지면 대부분의 농작물이 수분을 못해 인류의 식량을 생산할 수 없다. 바다의 고래를 잡아 괴롭히거나 죽이면 고래가 감당하는 막대한 탄소 저장과 식물성플랑크톤의 산소분출이 줄어 지구온난화로 연결된다. 인간 중심적 개발을 멈추고 비인간 존재들의 영역을 회복시켜, 생물다양성 보존에 총력을 기울여야 인류도 산다.

제주에선 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운송수단들이 차지한다. 2024년 현재 제주에 69만여 인구가 사는데, 등록 차량 대수는 70만 대가 넘는다. 가구당 자동차 보유율이 전국 1위이고 전국 평균의 2배이다. 차량이 이렇게 많아서는 아무리 도로를 개설하고 넓혀도 교차로에서의 정체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차량이 밀린다고 도로를 넓히거나 새로 뚫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도로를 개통하면 처음엔 교통흐름이 원활해지나 이내 차량이 몰리며 정체와 주차난을 다시 겪게 된다. 그러므로 유일한 대책은 차량수와 차로와 주차장 줄이기이다.

탄소배출을 가중하는 도로개설과 주차장 확충에 정부예산을 쓰는 건 인류 자멸의 길이다. 대중교통 이용으로 전환하는 데에 예산을 써야 마땅하다. 2022년에 독일은 월 9유로(약 1만2천원) 티켓을 시범실시한 데 이어 2023년엔 월 49유로(약 7만2천원) 티켓으로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했다. 독일을 본떠 서울은 기후동행카드(한달 6만5천원)를 기획했다. 2023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도심에서 1천 개의 주차장을 없앴다. 2024년 2월 프랑스 파리는 스포츠실용차(SUV)의 도심 주차 요금을 3배로 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개인 승용차 보유세를 대폭 올리고 유류비 지원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확보한 예산을 도로 다이어트와 녹지 늘리기에 써야 한다. 정치인은 토건 자본의 대변자 노릇을 그치고 지구 생태와 미래세대를 걱정해야 마땅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최대한 거둬내어 땅이 숨 쉬게 해야 한다. 땅 위에 비인간 동식물이 번성하게 놔두고 인간 동물이 조금 깃들어 사는 모습으로 가야 한다. 인류의 규모는 축소되어야 하고 과잉 육식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바로 생태 문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영영 없어질 것이다.


이 기고문은 〈프레시안〉과 〈제주투데이〉에도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서신심

2007년 서울에서 서귀포로 이주했다. 2009년부터 〈한살림제주〉에서 활동해 왔다. 2014년 녹색당에 가입할 때까지도 인간 중심적 사고에 갇혀있었다. 2015년 이후 비인간 동식물의 권리에 주목하고 각종 난개발 저지 활동에 참여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문제에는 2019년부터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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