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제주] ⑤ 개발사업에 짓밟히는 공유지- 제주의 초지와 공동목장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화산회토, 해양성 기후, 잦은 기후변동 같은 환경적 조건 속에서 농업과 목축을 연계해 목축계를 조직했으며, 이러한 마을공동목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관리 방식을 발전시켜 커먼즈(commons)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많은 마을공동목장이 대기업에게 팔려 골프장과 리조트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지역 공동체가 초지를 스스로 이용·관리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개발사업에 포획되는 실상을 짚어보고, 이 속에서 새로운 커먼즈 정치를 수립해나가는 과정을 정리했다.

제주도 초지와 공동목장의 생태적 가치

제주도 자연경관의 특징 중 하나는 독립 화산체인 오름과 곶자왈, 광활한 초지가 펼쳐진 중산간 지대이다. 제주도 중산간 지대는 해안 지대와 한라산 지대의 중간에 위치한 해발 200~600m 구간을 가리킨다. 중산간 지대에는 곶자왈이 많이 분포해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 해발 200m 이하 해안가 지대는 대부분의 인구가 거주하고 농경지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지만, 중산간 지대는 기온이 온화하고 강우량이 많아 목초가 자라는 데 적합해서 탐라목장(고려 원지배 시대), 국마장(조선시대), 마을공동목장(일제시대 이후) 형태로 수백 년간 방목장으로 활용되어 왔다.

마을공동목장은 이를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가 생계를 유지하고 관리 방식을 발전시킨 커먼즈(commons)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 마을 사람들은 화산회토, 해양성 기후, 잦은 기후변동 같은 환경적 조건 속에서 농업과 목축을 연계해 목축계를 조직했다. 순번을 정해 서로의 소를 함께 방목하고 돌보며 방목지를 통해 얻는 사료용 풀, 연료용 땔감을 호혜적으로 분배하는 규약도 만들었다. 이러한 목축계가 제주도 수눌음 문화의 원형을 이룬다.

제주도 공동목장에 관한 다양한 문헌은 “제주도는 남한 면적의 2%가 안 됨에도 불구하고 전국 48%에 달하는 초지 면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히 강조한다. 초지는 탄소 격리, 지하수 보존, 토양침식 방지 등의 생태적 기능을 갖고 있다. 공동목장으로 활용되는 제주도 초지대는 주로 뱅듸의 형태를 취한다. 뱅듸는 주변 지역에 비해 넓고 평평한 들판 또는 벌판을 일컫는 제주어이다. 이곳에 분포한 지질학적 구성 요소들 및 생물학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산간 뱅듸에는 용암동굴, 숨골, 습지 등이 분포하는데 용암동굴과 숨골은 지하수를 함양하며, 습지는 다양한 식물들의 서식처 역할을 한다. 뱅듸는 해안 지대와 산간 지대를 연결하는 생태축이자 완충지대로서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의 이동경로와 서식지가 되어 생태적 다양성을 보전해왔다. 따라서 공동목장 해체의 효과는 복합적이다. 목축을 통한 공동체 경제활동이 줄어들고, 협동의 원리에 기반한 커먼즈 관리 규칙들이 약화되고, 전통적 목축문화가 위축된다. 뿐만 아니라 공동목장 해체에 따른 뱅듸 파괴와 초지 상실은 지하수 오염과 생태적 다양성 축소를 유발하며 제주도 고유의 경관자원도 훼손된다.

그러나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61년 ‘지방자치에관한임시조치법’ 제정으로 공동목장 등 마을회 소유의 공유재산이 시·군 소유로 이전되었다. 아울러 공동목장의 무상사용이 불가능해졌고, 대규모 공동목장에 대한 임대능력이 부족한 마을주민들은 목장 사용에서 소외되고 임대능력이 큰 대자본가에게 목장 토지가 넘어갔다.

1988년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됨에 따라 ‘지방자치에관한임시조치법’이 폐지되었지만, 1990년대에 더 큰 변화가 생겨났다. 제주도 중산간 초지대가 1차 산업뿐 아니라 3차 산업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따라 3개 단지 20개 관광지구 계획이 수립되자 많은 마을공동목장이 대기업에게 팔려 골프장과 리조트로 바뀌었다. 제주도정은 지역특화산업으로서 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관광지 개발계획을 추진했는데, 그 골자는 자본 축적을 위해 국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골프장 개발사업 활성화였다. 이 과정에서 경관이 수려하고 초지 형성이 용이하며 토지 확보가 유리한 중산간 지대의 공동목장들이 다수 해체되었다. 그리하여 1940년대에 120곳을 상회했던 공동목장은 2020년 시점 51곳만이 남아 있다.

공동목장 보존과 활용을 위한 각급 기관의 방안들

그리하여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다양한 공적 지원의 방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 아이디어들을 담당 기관 내지 기구별로 망라하여 기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공적 지원 방안을 기능별로 다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위 내용을 보면 공적 지원의 방향은 초지 보호, 목축 활성화, 조합 경영 지원에 그치지 않고 목장활용 주체 육성도 아우르고 있다. 여기서 커먼즈론에 입각한다면 주민 자치와 관련하여 공동체와 자연 커먼즈 소유의 관계, 그리고 커먼즈 활용을 위한 공동체의 재구성이라는 첨예한 논제가 부상한다.

공동목장 용지가 해당 지역 공동체의 소유가 아닌 경우가 있다. 2020년 시점에 제주도 내 51개 마을공동목장 중 전부 혹은 일부가 국공유지 소유인 경우는 20개 정도로 마을공동목장조합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둘째, 지역 공동체가 소유한 공동목장이 방치되어 공적 매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공동목장 활용 수익에 비해 유지비가 커서 매각을 고려하는 공동목장조합이 많다. 이 경우 공적 자금을 통해 공동목장 용지를 매입하여 관리하거나 공적 지원을 통해 새로운 공동목장 활용 주체를 육성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경우든 지역 공동체가 해당 자연 커먼즈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스스로 이용·관리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게 된다.

첫째 경우와 관련해서는 국공유지 임차료 인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국공유지 임차료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설정되는데 제주도는 최근 공시지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어 목축 경영체의 임차료 부담이 매년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경우와 관련해서는 마을공동목장의 공적 매입을 위한 토지비축제도 활용 등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토지비축제도 내지 토지은행은 미래의 용도를 위해 미리 저렴한 가격으로 미개발 토지를 대량 매입하여 국공유지 형태로 비축해 토지 수요의 증가에 대응하고 비축된 토지를 수요자에게 팔거나 대여하는 방식이다. 혹은 마을회 혹은 마을공동목장조합 소유이지만 방치되고 있는 공동목장 용지에 대해서는 공동체자산신탁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이것은 부동산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소유주체와 운영주체를 분리해 공유지, 공유시설, 사유자산 등을 신탁공사에 신탁하면 신탁공사가 직접 관리·운영하거나 임대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부동산 소유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제주도의 공동목장은 이처럼 전통적 커먼즈 형태를 점차 벗어나 새로운 커먼즈 정치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공동목장 보존과 활용을 위한 공적 지원은 커머너(commoners)의 자기결정권과 상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제주도의 마을공동목장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쇠퇴하고 있는 지역 커먼즈를 위한 공적 지원에서 커머너가 주도권을 갖고 공공 부문은 보조 역할에 머무르는 보충성의 원칙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는 향후 한국 커먼즈론에서 실질적이고도 첨예한 논제가 될 것이다.

*이 기고문은 〈프레시안〉과 〈제주투데이〉에도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윤여일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전)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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