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비건] ③ 비건은 체취가 없다고?

채식하는 동안 벌어진 몸과 마음의 변화에 관하여.

초기 식단 – 오분도미, 오트밀, 두부, 재료를 뺀 김밥, 양파, 감자

채식 시작 후 몸의 변화가 바로 와 너무 신기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근력 운동 후에 오는 근육통의 양상이다. 같은 강도의 운동을 해도 육식 때는 근육통이 강하게 왔다가 서서히 가라앉는다면, 채식을 한 후론 근육통이 약한 강도로 균일하게 지속된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변을 보는 횟수가 기존 1회에서 2회로 늘어난 것이고 잔변감이나 잔뇨감이 없어졌다. 무기질 섭취가 늘어서 장 청소가 바로바로 되나 보다. 그리고 배부르게 마음껏 먹는데도 체중이 조금씩 꾸준히 빠졌다. 식단을 급격히 바꿔서 몸에 충격이 클 거라 예상했는데 기력이 조금 없는 것을 빼고는 괜찮았다. 동물 사체를 금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하여 지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생 대부분 시간을 육식했기 때문에 아직은 동물 사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고민된다)

중기에 추가된 음식 – 비건 간편식, 0도 현미, 우리 밀 소면, 케일, 사우어크라우트, 느타리버섯, 서리태

살이 계속 빠져서 몸무게가 기존 67kg에서 고등학생 때 몸무게인 59kg까지 떨어졌다. 매일 밤 소면을 삶아서 간장과 들기름에 비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기립성 빈혈이 심해졌고 기력이 없어졌다. 영양실조 증상과 비슷해서 왜 이렇게 됐나 알아보니 비건으로 식단을 바꾸면 기존에 먹던 양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몸을 속여서 더 먹게 하는 자극적인 맛을 끊고 딱딱한 0도 현미를 흡수하려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기 때문에 배가 일찍 불러서 서서히 먹는 양이 줄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후 음식 섭취량을 2배로 늘렸고 몸무게가 61kg까지 돌아왔으며 몸 상태도 좋아졌다.

채식 중기의 특징적인 변화는 단백질을 콩, 두유, 두부, 현미 등으로 섭취하다 보니 몸에서 나오는 모든 더러운 것들의 냄새가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친구와 반나절 동안 북한산을 등산한 뒤 집에 왔는데 발에서 냄새가 전혀 안 나 신기해서 “비건은 냄새 안 난다고~” 하며 친구에게 발을 휙휙 대고 장난쳤는데 친구는 불쾌하면서도 내심 궁금했는지 스윽 냄새를 맡아보더니 진짜 냄새가 안 난다며 신기해했다.

또 한 가지는 먹는 것에 대한 갈망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푸드 포르노의 정점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이 시대에 ‘맛있는 것’이라는 발명된 상징에 관한 과도한 갈망이 없어지니 물질에 대한 욕심도 같이 없어졌다. 일부 수도자들이 먹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생협에 납품하는 생산자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다는 게 뿌듯했고 먹어 본 느타리버섯 중 가장 맛있는 느타리버섯을 찾았다.

현재 추가된 음식 – 미역국, 고추장찌개, 된장물, 모둠튀김, 비타민C, 비타민B12, 시금치, 방풍나물, 청국장환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비타민B12 부족으로 인한 치매를 알게 된 뒤 무서워서 비타민B12 보충제와 비타민C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사진출처 : Polina Tankilevitch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비타민B12 부족으로 인한 치매를 알게 된 뒤 무서워서 비타민B12 보충제와 비타민C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사진출처 : Polina Tankilevitch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비타민B12 부족으로 인한 치매를 알게 된 뒤 무서워서 비타민B12 보충제와 비타민C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배터지게 먹고 주량 이상으로 취해도 몸무게는 61㎏으로 유지된다.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생겼고 요즘은 튀김 마스터가 되기 위해 수행 중이다. 오랫동안 있었던 아침 기상 두통이 사라졌다.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이 빠르게 반응한다. 짜게 먹으면 혈압이 오르는 게 바로 느껴진다. 체지방이 빠졌는지 근육의 선명도가 증가했고 성 기능이 강화됐다. 땀이 줄고 추위를 잘 타게 됐다. 얼마 전에는 늦게 자도 특정 시간에 계속 눈이 떠지는 경험을 했다. 늦잠을 퍼질러 자는 게 어려워졌으며 한 번 깨면 다시 자는 것이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식사를 만들어 먹기 때문에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과 힘을 쓴다. 5월 말이면 본격적으로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할 것 같은데 식사 챙기는 일에 많은 도전이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채식 생활에 만족한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다른 이들에게 권해 볼 수도 있겠다.

여담 – 실패했던 경우

  • 술을 좋아해서 채식 초기엔 젤라틴, 달걀흰자, 부레 풀 등을 사용한 맥주를 마셨다.
  • 팜유프리 감자칩에 사용된 기름이 갑자기 팜유로 바뀌었는데 모르고 한동안 먹었다.
  • 초기에 친구를 위로하려고 같이 치킨과 떡볶이를 먹은 적이 있다.
  • 캠핑 가서 전통주를 마셨는데 알고 보니 꿀이 들어 있었다.
  • 비타민D3(양털 추출물)가 뭔지 모르던 때 비타민D3가 들어간 시리얼을 먹었다.
  • 음식점에서 다시다, 새우젓, 액젓 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종업원께 물어 확인한 청국장을 시켜 먹었다. 뚝배기 바닥이 보이던 즈음 갑자기 종업원께서 오셔서 맛있는 거(다시다) 쬐끔 들어갔다고 귀엽게 말씀하셨다. 조금 화가 났다.
  • 탈모가 의심돼서 탈모약을 처방받아 샀는데 유당이 들어있었다. 그대로 환불하려니 무슨 정책 때문에 환불이 안 되고 되파는 것은 불법이라 고스란히 모셔두고 있다.

다음 글은 5월 혹은 6월에 있을 나의 전시를 소개하며 전시에 비거니즘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에 관한 글을 써 보겠다.

탈렌트

여러 해 동안 미술을 하다가 짧은 호흡으로 전시장을 전전하는 자신의 작업에 무력함을 느꼈다. 2020년부터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단위들을 미술화 하기 위해 어리석어 보이지만 배움이 있는 경험을 인위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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