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 전반적인 부를 형성했으나 한편으로는 자본의 탐욕적인 속성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여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경기 침제로 인한 불경기 속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의 폭은 더욱 벌어져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의 인권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자는『쌀 재난 국가』에서 세대 간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불평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문화적 차원에서 불평등이 구조화되는 과정을 ‘먹거리’에 근거하여 검토하였다. 즉 우리의 먹거리 주식인 ‘쌀’ 생산을 위해서는 반복되는 ‘재난’을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 주도로 극복해야만 하는 과정에 불평등 구조가 내재했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쌀 이론’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벼농사는 공동 노동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소출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소출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불평등에 민감한 사람들은 ‘상대적 불평등’에 분노하게 되는데 이는 동아시아인의 행복의 근원이 “타인과의 비교”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벼농사 문화에서는 공동 노동에 따른 공동체의 유대감과 함께 비교와 질시의 문화가 함께 싹트는 부조리가 발생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농촌 문화를 벗어나 산업 문화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에 깊게 각인되어 있어서 불평등에 민감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렇게 형성된 우리 사회의 비교와 질시의 문화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는 허용하나 국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에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심리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노동계 내에서는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 차별 현상이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평등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하는 심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가의 역할도 불평등을 조장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공동의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는 서구의 밀농사 문화권에서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재산권과 보호에 있었으나, 동아시아의 벼농사 문화권에서의 국가는 개인보다는 쌀 생산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재난 –가뭄이나 홍수-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했다. 바로 이 국가의 재난 극복 시스템이 동아시아의 불평등을 확대하는 구조를 제공했다. 예를 들면 지방 관아의 명령을 통해 특정 지역에 대규모 관개시설을 짓고 그 이용권을 상당 부분 획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는 당연히 지방 권력자의 가문 자손들이거나 그 관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서 국가 혜택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로 등용되는 것뿐이었다. 현재 우리의 자식 교육에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것 역시 이러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의 벼농사 문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공동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협업 체계는 이후 산업화의 길에서 생산과정에 효율적으로 작동한 덕분에 고도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벼농사 체제에서 유래한 사회적 조율은 서로에 대한 간섭과 규율을 강화시켜 코로나와 같은 재난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잘 대처하게 한 측면도 있다.
기후변화, 환경파괴, 경제적 불평등 등 희망적인 것보다는 절망적인 예측들이 우리의 미래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난제들에 적극성을 가지고 대면해야만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경제적 불평등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으로 향후 급격한 인구 감소와 함께 늘어만 가는 고령자를 부양해야 하는 사회적 위험에 처해있다. 지금까지 자력이 없는 가족을 가족 일부가 부양하는 사적 복지 체제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공적인 보편적 복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만 우리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