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철학의 시작] ① 1주기 추모(축)제 ‘지금, 여기, 가까이’를 준비하며

오는 2024년 6월 29일에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 “지금, 여기, 가까이”가 열립니다. 기다리고 모시면서 신 소장님의 말과 글,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을 매일 부칩니다.

[신승철학의 시작] 첫 번째 – 어쩌다 마주친 그대

2024.6.4.

​​언제였을까, 이 인연의 시작은. 모든 만남에는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미 떠나버린 사람과의 시작은 유독 그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신승철 선생님의 1주기를 기다리고 준비하며, 지금은 가물가물한 그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게 된다.

​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학교 가는 길은 영등포를 거쳐 가야 했다. 등하교길 가운데 문래동이, 철학공방 별난이,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이 거기 있었다. 어느 날엔가 그 별난 이름들이 마음에 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는 기후를 몰랐다. 생태도 몰랐고, 따라서 지혜도 없었다. 쳇바퀴 돌듯 자료를 읽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지만 적잖이 공허했다. 들려오는 기후위기 소식들을 하나둘 파보며 우울함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 신 샘을 만났다.

파블로 피카소, 1949, Dove of Peace

뭐지, 이 귀여운 아저씨는? 첫 인상이 그렇게 좋기가 쉽지 않다. 신 샘은 곰돌이 푸와 산적 임꺽정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신 샘의 사려 깊은 몸짓과 표정, 말들이 그 당시에는 낯설 정도였다. 적어도 그동안 알고지낸 대개의 철학자는 재미없고 고지식한 아저씨들이었기에, 사람 자체가 녹색 빛인 이 아저씨는 뭔가 각별하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같이 기후생태위기에 절절히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길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해맑은 미소가 선명하다.

​그렇게 처음 신 샘을 만난 날, 생태적지혜연구소 조합원 가입서에 이름을 적었다. 아, 사려 깊은 신 샘은 학생이 돈이 어디 있냐고, 조합비 10만 원은 나중에 원고를 몇 편 써서 퉁치라고 배려를 건네 주셨다. 그런 작은 배려를 받은 탓인지, 신 샘을 잊을 수가 없다.


​​[신승철학의 시작] 두 번째 – 지금, 여기, 가까이

2024. 6. 5

​오늘, 그러니까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 준비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소는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문래동을 떠나 온 신길동이 낯설지만 설렌다. 고양이들이 벌써 적응이 됐는지 이곳저곳 디비지며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래도 얼굴 본 지 몇 년이 넘어가니 오늘은 무릎에도 와주시고 갸르릉도 해주시고 아주 영광이다.

최근 이사한 신길동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 필자의 무릎 위로 올라온 고양이 또봄이. 사진제공 : 이윤경

신 샘의 장례식에 가던 길 추모제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새벽에 꺼냈던 말을 하나의 계기로 추모제를 만들어가고/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어디부터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하지만, 곳곳에서 나타난 얼굴과 건네준 손길이 있어 먹먹하지는 않다.

저번 회의에서 추모제 이름을 지었다. ‘떡갈나무 혁명’, ‘생태적 지혜’, ‘전환은 빠르게 삶은 느리게’ 등 여러 쟁쟁한 후보가 경합했지만, 모두 마땅치가 않았다. 고민하다가 ‘국지적 절대성’이라는 낯설고도 험난한 개념이 나왔다.

곱씹어도 도무지 모르겠을 이 말은 신 샘이 평소 애용하던 집순이 철학의 핫 키워드인데. 지혜가 먼 곳에 있지 않고 지역에, 동네에, 우리 곁에 “지금, 여기, 가까이” 있다는 뜻이란다. 이어지는 개념어로 ‘범위한정기술’도 있다. 무한한 확장이 아닌, 유한한 나의 반경과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지 싶다. 불교의 수처작주(隨處作主)처럼 진리를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지금 여기 옆에서 살피자는 뜻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름다운 뜻을 뒤로 하고 보면, 지금 여기 가까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길은 매번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 점에서 신 샘의 말은 조금 막막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추모(축)제를 준비하면서 이 말이 조금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 같다. 자리가 만들어져가는 준비 과정은 완벽하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지만, 흙을 주물러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천천히 흐물흐물 모양새를 잡아가고 있다. 신 샘과 연구소와 연결된 거진 서른 분의 정성과 기여로 천천히 익어간다. 그 감사함을 되새기며 내일 아침은 충만하게 일어나고 싶어졌다.

“아침이 늘 올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색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승철(2017),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중


[신승철학의 시작] 세 번째 – 장윤석 님 어떻게 지내세요?

2024.6.5

2023년 1월 1일 신승철 선생님과 나눈 새해 인사. 사진제공 : 장윤석

나름 MZ인지라 전화를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엄마와 자주 싸우는 소재 1위가 별 거 아닌 일에 전화 좀 하지 마 일 정도로. 그렇게 투쟁으로 얻어낸 조용한 전화기에 가장 자주 걸려오는 번호는 단연 신승철 선생님이었다. 멘트도 한결같이 “장윤석 님 어떻게 지내세요?” 아마 한 번의 예외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목소리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평범한 질문이지만 대답은 쉽지 않다. 매번 음 아 오 정도를 한 번 반복하고, 대개는 그럭저럭 지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아주 특별히 엌던 사건이 있거나, 어디 가있을 때 전화가 오면 미주알고주알 이렇고 저렇고 녹색 수다를 떨었다. 거진 삼사 년을 매달 한 번 이상은 그런 전화를 나눴던 것 같다. 알람을 꺼두어서 못 받을 때가 더 많았지만.

​전화의 말미에는 대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어김없이 한상 무언가를 해보라고 권하셨다. 그렇게 같이 쓴 책이 한 권이고, 깜냥이 안 되어 거절한 책이 두 권이고, 결국 넘기신 책이 곧 나오는 한 권이다. 맡기신 강의가 세 개인가 되고, 보내신 자리가 지리산정치학교를 포함해 두어 번 있다. 이것저것 쓴 글과 발제와 토론은 수두룩하다. 신 샘만의 묘한 훈련법이랄까, 칭찬에 얇은 귀가 팔랑거려 뭔가를 해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레벨 업이 되어있다. 물론 갈 길이 한참 남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새로 글을 쓰고 발제나 토론하는 것이 두렵거나 무겁지는 않다. 신 샘은 한 번도 “장윤석 님 너무 잘 하셨습니다” 하는 말을 빼먹은 적이 없다.

​전화 좀 잘 받을 걸, 지금 와서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 싶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누구든 전화 한 번, 문자 한 번을 전보다는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을까. 좀 더 나아가면, 이제는 누군가를 챙기는 나이가 되어가는 듯한데 나도 저렇게 깍듯이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신승철학의 시작] 네 번째 – 선을 지운다. 경계를 흐린다.

2024.6.6

전선을 긋는다. 가장 싫어하는 말을 꼽자면 이 문장이 들어가겠다. 운동을 하고자 하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들을 많이 다치게 하는 표현이다.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쓰는 전쟁 언어의 잔재이기도 하겠다. 이 표현에 어울리는 형용사는 ‘선명한’이겠고, 부사는 ‘분명히’겠다. 선명한 전선을 분명하게 긋는다. 나는 이 말과 불화한다.

‘사직동 그 가게’ 안으로 들어와 인형 위에 앉은 나비. 사진 제공 : 장윤석

이 말은 ‘이것’ 또는 ‘저것’의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와 너, 적과 동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도 자매 표현이다. 구분의 힘은 세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이고, ‘우리’의 ‘이것‘은 ’그들‘의 ’저것‘과는 상반되는 정의와 도덕을 담고 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그 강한 흑백논리의 연장선에서 이 말이 등장한다.

물론 세상에 악당은 정말 많다. 꼭 악당이 아니라도 전선을 그을 필요와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모두와 평화롭겠다는 발상은 위선이 되기 일쑤니까.

하지만 반대로 내 앞에 있는 너를 너무 쉽게 악당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모르는 너의 맥락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 않나. 그동안 맞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서 정말 맞았던 것이 얼마나 있었다고. 적어도 나는 우리가 전선을 긋겠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남발하고 있다고 느낀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쟁의 구도와 습관에 매여 내뱉는 전쟁의 언어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할 때면 신 샘이 보고 싶어진다. 참 황희 정승 같은 사람이었다. 당신 말이 맞소. 아, 당신 말도 맞소. 대강 맞다고 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정의가 ‘이것’ 또는 ‘저것’의 적대의 구도가 아니라 ‘이것’ 그리고 ’저것‘으로 조화의 구도를 이루도록 살뜰히 신경 쓰는 이였다. 구도가 둘의 관계를 넘어갈 때도 이것 또는 저것 그리고 그것 이렇게 합을 맞추는 이였으니 중재자와 피스빌더로서는 탁월했다고 하겠다. 선을 긋는 사람이 아닌, 선을 지우는 사람. 경계를 분명히 하기보다, 경계를 흐리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그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을 모 아니면 도로 생각하던 경향이 크던 내게, 갈등을 가능성으로 만드는 그 지혜로움은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선을 긋는 것의 중요함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긴 하지마는, 선을 쉽사리 긋기 전에 여러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리고 쉽사리 그어지는 선들 가까이로 가서 지우고 흐리는 역할과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운동의 다정함과 따뜻함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며.


[신승철학의 시작] 다섯 번째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함께하는 공동체

2024.6.9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별난 이들이 드글거려도 괜찮은 공동체가 아닐까. (말을 좀 막 해보자면) 좋은 놈만 있는 곳 말고, 나쁜 놈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핑계 되는 곳 말고, 이상한 놈들이 바글거려서 결국 누구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곳이 아닐까. 사진 제공 : 장윤석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대개 하나의 단일한 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공동체를 꿈꾸기 십상인 것 같다. 즉, (나에게) 좋은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이 제일 좋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꿈과 다르게 관계는 늘 변화하는 생물체와 같아서,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고 만다. 물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단일한 뜻을 바탕으로 건설하려고 애썼던 공동체의 최후는, 대개 배타적으로 변하거나 견고하게 간직한 그 뜻이 더할 나위 없이 낡아버리거나 그 안에서 새로이 등장한 다른 뜻을 공동체 안에서 조화시키지 못해 분열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별난 이들이 드글거려도 괜찮은 공동체가 아닐까. (말을 좀 막 해보자면) 좋은 놈만 있는 곳 말고, 나쁜 놈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핑계 되는 곳 말고, 이상한 놈들이 바글거려서 결국 누구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곳이 아닐까.

​즉, “우린 하나”라는 단일성의 논리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쟤도 걔도 참 다르기에 다양성의 논리가 자리 잡는 그런 공동체가 아닐까. 숱한 공동체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이 다양성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공간을 너무도 적단 생각을 했다.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와 너를 가르는 분법의 대기가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생태적지혜연구소를 보면서 참으로 별난 사람들이 모여 있단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그 별난 자태에 소중함을 느낀다.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교사, 협동조합 조직가, 수의사, 정치인까지 어디에서도 하나로 엮이기 쉽지 않은 참 독특하고도 별난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여 있음에, 그 사람들을 모아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떡갈나무 혁명은 이런 식으로 빚어지는 거겠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안팎을 넘나드는 별난 관계성좌들. 사진제공 :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는 오는 6월 29일(토) [행사] 故 신승철 소장 1주기 추모(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여 신청해주세요.

□ 일시: 2024년 6월 29일(토) 10:00~21:00
□ 장소: 영등포 산업선교회 3층
. . . . (2,9호선 당산역, 5호선 영등포시장역 도보 10분)
□ 주최: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 주관: 신승철추모(축)제 준비모임
□ 참가신청: 구글폼
💚 참가비: 최소금액 1만 원(채식 식사 제공) 입금계좌 : 1002-865-428300(이승준)

 프로그램
-1부 학술제(10:00~12:00) | “신승철학”
-2부 추모제(13:00~16:00) | “생태적 지혜의 시간”
-3부 축제(19:00~21:00) | “날마다 파티를”

* 프로그램별 세부 내용은 추후 공개 예정

🖥️ 행사는 오프라인이 중심이지만,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온라인(zoom)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관련 안내는 추후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 당부의 말씀
저희에게 기꺼이 행사 장소를 후원해주신 영등포 산업선교회에는 엘리베이터 이용이 어렵습니다. 부족함이 많지만, 주변에 많은 자문을 구해 접근성 지원이 필요하신 모든 분들께서도 참여하실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하겠습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혐오와 차별을 지양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약속!🤙

장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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