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힘을 빌려 신이 된다는 것- 〈바람운과 고산국(서귀본향당본풀이)〉 독후기

신화가 오롯이 신들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신화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럼에도, 때로 사람들은 신화에 압도되고, 이에 따라 삶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 이성적·논리적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독단적 교리로 굳어져, 오히려 더 나은 공동체를 열어가는 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의 힘을 빌려 신이 되는 사연이 깃든 서귀 본향당 본풀이를 읽는 것은 이런 장애물 피하기 위한 훈련의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지방소멸은 없다(下)

인구감소에 대해 유난을 떠는 건 ‘경제성장’ 이외의 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단견에서 나온 호들갑일 뿐이다. 논거조차 부실한 지방소멸 지수 말고, 행복 지수, 소통 지수, 배려 지수, 평등 지수 등을 기준 삼아 생태 기본소득, 생태 공동체마을, 생태농장, 공유주택, 주민 협정제 등 지역 내 내발적 행복 요소를 발굴하고 꽃 피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과 소득 불균형 해소, 불로소득 상한제, 토지 공유화 등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되는 그날이 오기를 -『단속사회』를 읽고

저자가 말하는 ‘단속사회’란, 단속(斷續)과 또 다른 단속(團束)의 합성어를 의미한다. 즉, 현대인들이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이에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단속(斷續)과 자기를 단속(團束)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차 끊어져 버린 상태를 말한다.

[지금 여기 가까이] ㉑ 우리 사이의 배치가 강렬해질 때

주체성은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가진 우리 중 어느 누군가’이며, 우리 삶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적 '책임주체'가 아닌 이러한 '주체성'에 의해 이루어지곤 한다. 특히 공동체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1부터 3까지는 내가 한 일이고, 4부터 7까지는 네가 한 일이라고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일들이 대부분이다. 공동체의 배치와 관계망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발언과 행동의 에너지와 흐름이 어떤 특이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동체에서의 정동과 사랑, 돌봄의 따뜻함, 부드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 강렬한 대화 등이 '주체성 생산'을 해내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뉴스레터 100호 특집] 편집위pick #커먼즈

《생태적 지혜》에서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커먼즈 이다. 오늘날 커먼즈에 대한 논의는 공유에 대한 혁신적인 사유를 지향하는 모든 부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너와 나 사이에서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커먼즈가 생성되는 과정은 공동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개인은 멈추지 못한다 – 『리추얼의 종말』을 읽고

『리추얼의 종말』의 저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는 리추얼과 공동체가 소멸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진정성이라는 투명한 관계보다 반복의 의례, 즉 리추얼을 통해 삶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리추얼의 재발견을 제안한다. 이 글의 필자는 한병철과 달리 가족과 친구와 같은 주변의 인간관계를 통해 리추얼을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여전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 현재에 적합한 새로운 리추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모두가 억울하다 -이야기 ‘바리공주’를 읽으며 더 나은 공동체를 생각하기

평생을 완벽하게 행복만 누리면서 살아서 여한이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삶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여한은 그저 개인의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쌓이는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얽히고 쌓여가는 것이기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여한 없는 삶 아니 여한 없는 죽음에 근접한 더 나은 공동체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야기 ‘바리공주’를 읽으며 그 조건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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