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생협이 가야할 길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에 제동을 걸며 우리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 위기의 시대에 생협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모색하기보다 현재의 과제를 살펴보고 생협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아침마다 한살림생활협동조합(한살림) 매장 앞에는 문을 열기 전부터 긴 줄이 선다. 10시에 매장 문이 열려도 발열체크 후 5명씩만 입장 가능하다. 늘 부족한 채소는 야박할 정도로 구매 수량이 제한된다. 매일 매장에 나와야 한다는 조합원의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코로나19에 역대급 장마가 겹친 올여름 내가 근무하는 한살림의 매장 풍경이다.

몇 년간 이어지던 한살림의 매출 감소는 최근 회복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식이 감소한 까닭이다. 일시적인 회복세일 뿐 코로나19가 잦아들면 매출감소와 위축된 조합원 활동에 대한 고민은 다시 이어지리라.

농약의 남용과 먹을거리의 생산자 소비자의 단절에 대한 고민 끝에 생산지에서 출발한 한살림을 생협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생협 일반에 대한 식견도 부족하고 구체적인 자료도 없는 탓에 내가 알고 있는 한살림과 나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 널리 헤아려주기 바란다.

한살림은 안전한 먹을거리 가게인가?

1986년 출발한 한살림은 매년 15% 이상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다가 2014년 하반기 이후 성장을 멈추고 답보와 감소세로 접어들었다(아마 다른 생협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합원 활동 또한 점차 위축되어갔다. 한살림의 이런 상황은 친환경 먹을거리 시장에서 ‘안전한 먹을거리’의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한살림은 5월 기준 전년대비 23% 성장했지만 여전히 프레임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살림 홈페이지(www.hansalim.or.kr) 갈무리. 처음 한살림이 이루고자 했던 관계의 회복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우주만물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살림 홈페이지 갈무리. 처음 한살림이 이루고자 했던 관계의 회복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우주만물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한살림은 무엇을 위해 시작했을까?

한살림이 출발하기 전 한국 사회는 농업경제 구조에서 수출 위주의 중화학공업 구조로 재편되었고, 이를 떠받치는 저임금과 낮은 쌀값정책이 있었다. 낮은 쌀값을 위해 농약이 남용되고 환경은 오염됐다. 농촌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는 단절되었다. 군사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이 거세게 일어나고 사회개혁으로서 환경운동이 요구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또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한살림이 출발했다. 바로 관계의 회복으로 서로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사회적 부속품이 아닌 관계의 그물망 속에 살아있는 ‘주체’들이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처음 한살림이 이루고자 했던 관계의 회복은 사람과 사람만의 관계를 넘어선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우주만물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살림에서는 우주 만물이 들어있는 밥 한 그릇 그림을 종종 볼 수 있다. ‘밥 한 그릇을 알면 삼라만상을 아는 것’이라는 뜻이고 진정한 유기농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세상 모든 만물의 관계를 회복하고 생명을 살리는 가치지향은 한살림이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품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가치를 담아 생산하고 공급한다. 매장은 물품을 판매(販賣)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물품을 통하여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개(媒介)하는 곳이다. 협동조합원 운영원칙에 따라 조합원의 참여로 운영되며 소통창구는 열려있다. 결정이 느리더라도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한다. 환경문제, 식생활, 돌봄 등 한살림의 지향을 담아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의제활동도 조합원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친다.

그러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조합원에게 이러한 과정이 잘 공유되고 있는지는 살펴볼 일이다. 70만이 넘은 조합원 규모는 이미 공룡의 몸집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조합원에게 한살림은 단지 ‘안전한 먹을거리’ 판매처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생협은 관계 : 더 소통하고 더 많은 참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지금 한살림서울은 ‘가까운 한살림 내가 만드는 한살림’을 향하여 규모를 나누는 분화 과정에 있다. 좀 더 가깝게 지역에서 조합원과 소통하고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물론 규모를 줄인다고 조합원 참여 활성화를 바로 기대할 수는 없다. 소통창구를 통하여 꾸준히 한살림의 지향에 동의를 구하고 조합원의 필요와 욕구를 담아내는 다양한 활동으로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멈출 수는 없다. 생협은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19는 자본주의가 불러온 지구촌의 세계화에 제동을 걸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자본주의가 지속되어서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한다.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은 환경파괴, 경제적 불평등, 노동의 소외, 관계의 단절 등 많은 문제를 발생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협의 어려움은 자본주의적 사고와 부딪침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방식의 주식회사와는 운영체계가 다르다. 특히 조합원의 필요와 욕구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닌 생협은 위기의 시대에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기에 생협이 대다수 조합원에게 ‘안전한 먹을거리’ 판매처로만 인식돼서는 안 된다.

인류가 맞이한 위기 속에서 모두가 지속가능함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은 원래 하던 것을 더 열심히 하면 된다. 사회적 의제활동은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조합원으로 구성되고 운영되지만 이러한 사회적 책임은 생협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생협도 예외 없이 저성장 기조에 따른 운영의 어려움을 겪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사업적 성과에 연연하여 균형감이 흔들렸다면 이제 다시 바로 서야 할 때다. 어쩌면 코로나19와 기후위기에 처한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사업과 활동을 잘 맞물려 펼친다면 생협은 충분히 이 위기의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다.

생협의 의제활동 다섯 가지

생협이 펼쳐야 할 의제활동을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활실천운동의 확대와 사회적 공론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할 만큼 기후위기는 심각하고 다급한 문제다. 자원순환운동과 같은 생활실천운동을 일상화하는 한편 국가시스템을 정비하거나 기업정책규제 등이 법제화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둘째, 반GMO운동을 꾸준히 펼친다,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GMO작물 재배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안전성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단일작물재배로 생물다양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땅을 황폐화한다. 또 공장식 축산과 맞물려 사료의 대부분을 제공한다. 싼값에 넘쳐나는 먹을거리의 이면에는 기업의 돈벌이와 환경파괴의 문제가 가려 있다. 토박이씨앗의 보존과 다품종 소량생산,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이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셋째, 탈핵운동이다. 미국, 중국 등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탈원전정책이 세계적인 추세이나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원자력 발전량이 자랑 아닌 자랑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 탈핵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대안에너지 정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넷째, 돌봄 정책의 확산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가족 간 돌봄의 영역이 사회적 책임으로 대두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돌봄 정책은 충분하지 않다. 사회가 미처 수용하지 못하는 돌봄의 영역을 조합원들의 힘으로 가능하도록 끊임없는 논의와 실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 소통이다. 생협의 모든 의제활동은 지역사회를 향해야 한다.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연대할 때 활동은 확산되고 비로소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밖에도 생협에서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중요한 건 조합원 리더의 발굴과 함께 깨어있는 조합원을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 비대면상황이 계속된다면 그에 맞는 온라인 활동의 체계도 자리 잡아 나가야 한다. 생협에서 물품을 매개로 조합원이 만나서 세상을 연결하면 변화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 즐거울 것이다.

꼼지

학교 다닐 때 꼼지락거린다고 붙은 별명인데 남편이 30년째 부르는 애칭이 되었음. 지금도 여전히 꼼지락거리며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