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④ 옛날 이름, 옛날 이야기

비조마을 지명과 마을어른께 들은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이곳저곳을 부르는 이름

비조마을 지명은 신라시대 박제상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왜국에 간 남편 박제상을 기다리던 부인이 치술령 꼭대기에서 망부석이 되어, 몸은 죽고 혼은 새가 되어 산 아래 마을에 있는 바위 위에 날아와 앉았다 해서 생긴 이름입니다. 그래서 마을 표지석에는 ‘전설이 있는 따뜻한 비조마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비조마을 안에도 이곳저곳을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아이와 마을을 산책하며 만나는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하나씩 알게 되었어요. ‘모시들’에는 논둑에 모시나무가 많았고, ‘한드미’에는 옛날 옛적 신라시대에 한덤사라는 절이 있었고, ‘이내골’에는 논이 있어 쌀이 많이 났고, ‘목너메샘’에는 낮은 동산 너머에 샘이 있었고, ‘분무골’에는 풀무질하던 대장간이 있었다고도 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살던 곳이라고도 하지요. 지금은 모시나무도 없고 절도 없고 샘도 없고 대장간도 없답니다. 대신 논을 메워 집을 지었고, 마을 지하수를 설치했고, 와불(臥佛)이 있는 새 절이 생겼답니다.

내가 도깨비에 홀려서 죽을 뻔한 적이 있거든

비조마을 분무골 풍경 
그림 by 박재완 화가
비조마을 분무골 풍경
그림 by 박재완 화가

지난 가을에는 분무골로 산책 갔다가 마을어른이 예전에 도깨비에 홀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분무골은 비조마을 회관 건너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날은 마을어른(대추할아버지), 어린이(지우), 스케치하러 오신 박재완 화가님과 넷이서 걷고 있었어요. 대추할아버지가,

“여기는 무서운 데야. 좀 으스스하지 않나?”

하고 물으셨어요.

“네? 논이 저 멀리까지 보이고 먼 산도 보여서 좋은데요.”

“내가 여기서 도깨비에 홀려서 죽을 뻔한 적이 있거든. 그래서 난 여기 오면 무섭더라.”

“네? 도깨비요? 언제 적 이야기예요?”

도깨비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지요. 무섭고도 재미있는 도깨비 이야기잖아요.

1969년 1~2월쯤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고 합니다. 대추할아버지가 대입 본고사를 치르고 얼마 뒤였는데, 그날은 울산시내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대요. 은편에서 버스를 내려 장성마을과 이전마을을 지나 분무골로 들어와 좀더 가면 집이에요. 눈길에 발은 푹푹 빠지고 밤바람은 차가웠고 술기운은 얼큰해 서둘러 가셨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야 지난밤 도깨비에 홀린 걸 이장님이 집에 데려다 줬다고 아셨대요.

대추할아버지의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분무골 웅덩이가 있던 자리.
대추할아버지 박치수님과
박재완 화가(2020.9.16.)
분무골 웅덩이가 있던 자리.
대추할아버지 박치수님과
박재완 화가(2020.9.16.)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이장님이셨던 이ㅇㅇ어른 때문에 살았지. 그 분이 밤에 분무골을 지나가는데 여기 웅덩이 쪽에서 사람 소리가 나더래. ‘이상하다. 틀림없이 누가 꼬였구나’ 생각했대. 무서우니까 볏짚에 불을 붙여 오니, 내가 그 추운 겨울에 웃통을 거의 다 벗고 있더래.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더래. 그래서 횃불을 휙휙 돌리니 얼굴이 따라오더래. 그 횃불을 들고 집까지 데려다준 거야. 걸어오면서 내가 자꾸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더래. ‘목욕을 할라면 같이 하지 왜 니 혼자 하냐’고. 그 웅덩이에서 목욕하려고 옷을 벗고 있는데 이장님을 만난 거지. 안 그랬으면 거기서 얼어 죽었지. 눈은 그만큼 많이 왔지…

여기는 언덕이 높아 자전거 타고 못 올라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낮아졌지. 넘어서면 바람도 세고 도깨비가 다니는 길목이었잖아. 떠도는 이야기로는 늘 세 사람이 바람같이 지나가는데, 지나가고 보면 그 사람들 다리가 없더래. 다리 없는 도깨비가 다닌다고 했지.

초등학교 운동회 마치고 대밀에서 걸어오는데 어른들은 뒤에서 천천히 오고 꼬맹이들은 어울려서 막 뛰어오지. 오면서 보니 여우가 지나가더라니까. 도깨비가 여우로 둔갑해서 다니는 거라고 어른들이 얘기했지.

산에는 담비도 있었는데 담비가 호랑이 잡아먹는다잖아. 호랑이 목에 올라타서 목을 파먹는데 그러다보면 호랑이가 쓰러지는 거지. 내가 중학교 때 우리집 짓던 정대목이라고 장성마을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공사하고 집에 가는 길에 이내골 입구 지나가면 산에서 담비가 흙을 뿌린다네. 정대목은 늘 있는 일이니까 무서워하지도 않고 지나가는데, 원래는 담비가 흙 뿌리고 돌멩이도 던지다가 사람이 쓰러지면 덤비지. 이제는 사람이 많이 사니까 담비는 없지.

도깨비랑 담비는 있을까?

대추할아버지가 해주시는 도깨비와 담비 이야기를 들으며 몇 년 전일까 헤아려보니 50년, 60년 전입니다. 뿔난 도깨비는 동화책에서 봤지만 다리 없는 도깨비는 몰랐고 담비는 처음 들어본 지우에게 산에 가면 뭐 있냐고 물어봅니다.

“나무랑 새랑… 풀 있어. 다람쥐도 2번 봤어”

“도깨비랑 담비는 있을까?”

“없지. 엄마는 도깨비 믿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도깨비도 담비도 모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신.
우리집 지킴이 고양이 다크와 오레오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답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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