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불구로 만든 전문가의 시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읽고

현대 사회는 전문가의 시대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전문가가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권위에 있다. 저자는 전문가의 권위가 권위주의로 흐르지 않고 권위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권위가 권위주의로 흐를 때 사회의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반 일리치 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느린걸음, 2014)의 부제는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이다. 부제에서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일지는 대강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의 사상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 저(허택 역)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걸음, 2014)
이반 일리치 저(허택 역)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걸음, 2014)

이반 일리치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피신한 후, 화학, 신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지성인이자, 사제였다. 일리치는 지성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신 분으로, 빈민가의 보좌 신부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던 그가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리고, 이후 진보주의자로 가난과 교육에 열성을 보임으로서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성인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인류의 삶은 안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가난의 늪에 빠져버렸다. 왜일까?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풍요에 사람들이 중독되고 그것이 문화 속으로 한번 배어들면 ‘가난의 현대화’가 생겨난다”

저자는 이러한 현대화된 가난은 상품이 확산하면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부정 가치의 형태라고 보았으며, 이는 상품이 대량 생산되어 생겨난 사회적 비효율인데도 경제학자들은 주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처럼 저자는 현대를 전문가들의 시대라고 보며, 이들 전문가를 강하게 비판한다.

“교육자, 의사, 사회복지사 같은 오늘날의 전문가는 마치 사제나 변호사처럼 합법적으로 권력을 확보하여 자신들만이 필요를 만들고 제공하도록 법을 제정한다. 나는 이 20세기 중반을 ‘인간을 불구로 만든 전문가의 시대’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따라서 일리치는 이제는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결단과 정치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전문가가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권위에 있다. 저자는 전문가의 권위가 권위주의로 흐르지 않고 권위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권위가 권위주의로 흐를 때 사회의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전문가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을 고객으로 정의하는 권위이며, 그 고객에게 필요를 결정해주는 권위이고,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알려주는 처방을 하는 권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보호와 에너지에 대해서도 일리치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원자로가 위험하기 때문이고 기술 관료만 막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이 에너지 탐욕을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다. 에너지가 정량을 넘어 소비되면 사회를 파괴하고 힘으로 전환되어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는 주장은 아직도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노동은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상품화되면서 오히려 인간을 쓸모 있는가 없는가로 평가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의 위계질서 밖에서 전문가의 측정 기준을 벗어나 발생하는 인간의 행동과 노력, 성취와 기여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현재의 상품 의존 사회를 위협하고, 인간의 소외를 근절할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인류는 어떤 위치에 도달해 있을까? 기계의 노예로 전락해 있을까? 아니면 기계를 노예화시켜 노동을 시간을 대폭 줄어 여가를 즐기고 있을까? 우리가 지금 무엇을 추구하는 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며, 지금 우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의 생존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의 이 책을 읽으면서 밝은 미래보다는 암울한 미래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미래에 대한 우려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의 미래는 결국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이반 일리치는 가르쳐 주고 있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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