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강세기
한 심리학과 교수가 수업시간에 물이 반만 담긴 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답니다. 학생들은 이제 저 교수가 컵에 물이 반밖에 안 찼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반이나 찼다고 생각하는지 물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 물컵이 무겁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물컵쯤이야 누구나 쉽게 들 수 있으니 학생들은 무겁지 않다고 답을 했지요. 그러자 교수가 웃으며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요. 물컵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을 때는 거의 무게를 못 느끼죠. 하지만 한 시간 동안 손에 들고 있으면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할 거예요. 하루 종일 들고 있으면 손에 쥐가 날 거고요. 그러니 무게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일수록 늘어납니다.”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교수는 말을 이어갑니다. “근심도 똑같아요. 잠깐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하루 종일 끌고 다니면 몇 배로 불어나서 점점 더 무거워질 거고 견디기 힘든 짐이 될 거에요. 그러니 잊지 마세요. 물컵을 집어 들었을 때는 얼른 다시 내려놓아야 해요.” 네덜란드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노인 심리학자인 휘프 바위선이 30년 간 치매 환자와 가족을 만나며 축적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 『치매의 모든 것』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올해의 반이나 지났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보다도 혹시 지난 반년 동안 짊어지고 끌고 다닌 근심과 걱정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물컵을 내려놓듯 마음에 담아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7월을 시작하셨기 바랍니다. 아직 내려놓지 못한 근심으로 마음이 무겁다면 숲을 거닐며 식물들을 잠시 살펴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숲 속의 식물은 동물과 달리 한번 자리를 잡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태어난 곳이 사는 곳이고 살아가는 자리가 곧 죽을 자리인 것이지요. 동물은 좀 더 나은 자리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물과 먹이를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천적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곳, 새끼를 키우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합니다. 오삼이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졌던 관리번호 KM-53 반달가슴곰은 최초 방사된 지리산에서 직선거리로 80km가 넘는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이동하면서 ‘한반도 방랑 곰’으로 유명했었습니다. 봄이 되면 우리 곁을 반갑게 찾아와 여름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제비는 무려 9,000km 이상을 날아 한국과 월동지인 필리핀, 베트남 등을 오갑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좀더 나은 삶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헤매고 수고하지요. 더 좋은 주거 환경, 교육 여건, 근로 조건을 찾아 멀리 유학이나 이민을 가기도 하고 비싼 비용을 들여 이리저리 이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만족과 평안을 누리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며 내일을 위해 더 가져야 한다는 욕심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나마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이를 끊임없이 바장이기에 근심을 내려놓을 겨를이 없습니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동물과 달리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삶의 시작과 마감을 하는 식물은 돌아다니지만 않을 뿐 사는 동안 끊임없는 수고와 노력을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햇빛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잎과 가지를 키우고 물을 찾아 단단한 흙 속으로 뿌리를 뻗습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기에 그 수고와 노력은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필 태어난 곳이 척박한 땅이거나 비옥할지라도 이미 큰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라면 더하겠지요. 태어난 곳에서 말없이 제 삶을 스스로 살아내는 녹색생명들. 풀들이 얼었던 땅을 뚫고 힘겹게 여린 새싹을 낼 때, 나무들이 마른 가지에서 어렵게 작은 잎을 낼 때, 그리고 요즘처럼 최선을 다해 무성히 키워낼 때 불과 몇 달 후면 이 잎들을 다 떨궈야 하는 것을 걱정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겨우내 바짝 말라있던 나무가 온 몸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색과 향을 입혀 봄꽃을 피워 낼 때 모든 꽃이 다 열매 맺어야 한다고 욕심 부린다는 말도, 열매 맺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지금처럼 비에도 지지 않고 무더위 속에서 꽃 진 자리에 열매와 씨앗을 키워나갈 때 이들이 땅에 떨어져 모두 싹트기를 욕심낸다는 말도, 싹트지 않으면 어쩔까 근심한다는 말도 못 들어 봤습니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한다는 말도, 밤나무가 단풍나무를 얕잡아 본다는 얘기도 못 들어 봤습니다. 그들은 그저 제 모습대로 때를 따라 서로 어우러져 지금 여기에 충실할 뿐이지요. 이들은 태어난 자리에서 봄이면 자기의 싹을 내고 자기만의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열매를 맺고 잎을 키우며, 가을이면 잎과 열매를 떨구고, 겨울이면 빈 몸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견뎌낼 것입니다. 욕심도 두려움도 없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말입니다. 숲은 이런 식물들의 생명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맞이한 7월입니다. 모진 겨울, 새해를 기대하며 단단하게 다졌던 각오들은 어느새 흐릿해졌습니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지난 반년 간 짊어지고 온 욕심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남은 반년을 위한 새로운 각오를 느슨하게 세울 기회가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날이 덥고 습할지라도 모쪼록 시간을 내어 숲 속을 걷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제 모습대로, 스스로, 함께 어우러져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다음은 절로 이어지고 맺어질 거라는 자연스러움으로 가득한 생명의 숲 속을 말입니다.
10번째 초록산책 축하드립니다. 초록산책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숭고함을,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나를, 주변을, 삶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7월에서 앞으로도 자연과 함께 청정한 사유 지속되시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방하착!
내려놓아야지요.
잔잔히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맑고 고운 글을 읽으며 미소를 띄워봅니다. 물이 든 컵을 들고 있는 것처럼 쓸데 없는 근심, 욕심을 부여 잡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 봅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