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훌쩍 넘겨버린 2월입니다. 하지만 지난 달 중순부터 지속된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와 새 달의 시작을 장식한 많은 눈 때문에 아직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느낌입니다. 2월은 다른 달에 비해 날 수도 짧고 긴 설 연휴도 있어 빨리 지나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남아 미적거리는 고통스러운 추위와 올 듯 오지 않는 봄이 야속해 더디 가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열두 달 중 왜 2월만이 삼일이나 짧은 28일일까요? 찾아보니 현재 달력의 뼈대가 되는 초기 로마달력에는 겨울을 제외한 열 달만이 있었는데 나중에 겨울의 시간에서 먼저 1월을 추가하고 나머지 날짜들을 2월에 담아 지금의 달력을 완성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반면, 함영숙 시인은 ‘2월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꼼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 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사래 떤다

그렇군요. 2월이 짧은 이유는 봄 사랑을 낳으려고 몸사래를 떨며 자기 꼬리의 날을 삼일이나 포기하고 우주에 던져버렸기 때문이군요. 덕분에 우리는 자지러진 고통의 늪을 삼일이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이군요. 이렇게 시는 우리 생각과 마음의 지평을 넓혀 줍니다. 그리고 시인에게 시의 씨앗을 심어 준 것은 바로 자연입니다.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몸사래를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 소리, 꿈틀 꼼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는 소리. 모두 지금 자연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입니다. 그리고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꼼지락 거리는 생명, 그 생명에게 입히려 준비하고 있는 노랑과 초록의 옷. 모두 지금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봄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아직 찬바람이 부담스러운 이 계절에 나무와 풀을 보러 간다고 하면 아직 잎도 꽃도 멀었는데 뭐 볼게 있냐고 물어오곤 합니다. 하지만 볼 거 없을 때에야 비로소 잘 보이는 것들이 있어 추위를 무릅쓰고 빈 동산을 거닐곤 합니다. 먼저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을 봅니다. 빈한한 계절, 아무 것도 없이 빈가지로 하늘과 땅 사이 가만히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 고고한 수도자 같기도 하고, 누군가 겨울하늘을 화선지 삼아 붓을 놀린 듯한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꽃도, 무성한 잎도, 아무 것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나무의 본래 모습을 보기 좋은 시간입니다.

땅 속에 묻혀 보이지는 않지만 뿌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나무가 첫뿌리를 내렸을 때 주변 모습은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며 땅가 밑둥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줄기가 자라난 과정을 마치 타임랩스 영상을 보듯 그려봅니다. 먼저 키가 자랐겠지요. 그리고 옆으로도 굵어졌겠지요. 위로 옆으로 자라는 동안 트고 갈라진 줄기의 껍질(수피, 樹皮)을 보며 나무의 이름도 생각해봅니다. 나무마다 다 다른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있기에 수피는 나무 이름을 찾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하얀색부터 짙은 검은색까지, 광택이 나는 수피, 매끈한 수피, 너덜너덜한 수피, 얼룩덜룩한 수피, 거북등 모양의 수피,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 수피, 비늘처럼 벗겨지는 수피, 가로로 숨구멍이 난 수피, 세로로 깊게 패인 수피, 그물모양으로 갈라지는 수피 등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수피들이 나무 수 만큼 있습니다. 혹시 수피의 모양이 기억나는 나무 하나가 있으실까요?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다시 줄기를 따라 위를 살피며 몇 번의 계절을 겪었을까, 위로 옆으로 성장하며 주변 환경과는 어떻게 지냈을까를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그 줄기에서 갈라져 나간 가지들을 보며 언제쯤 어떻게 갈라져 나갔을까, 저 구부러진 가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가지 끝에 다달아 ‘나무의 심장’ 겨울눈1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겨울눈은 나무의 지문이라고 할 정도로 나무이름 찾기의 결정적 단서가 됩니다. 달린 위치, 생긴 모양, 색깔, 크기, 눈껍질의 재질 등 나무에 따라 다 다른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눈들이 봄을 앞둔 겨울에서야 텅 빈 가지 끝에서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제 곧 봄이 오면 그 안에 고이 꼭꼭 담아 놓았던 잎들이, 꽃들이, 가지들이 가히 폭발하듯 펼쳐지며 겨울눈은 사라질 것입니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수형을 바라보고, 수피를 살펴보고, 겨울눈을 꼼꼼히 보다가 문득 이 나무의 잎은 어떻게 생겼는지, 꽃은 어떤 모양과 색과 향이었는지, 열매의 색과 맛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이 관찰의 목적은 나무의 이름을 찾는데 있지 않기에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조만간 봄이 오면, 새 잎이 나면, 그리고 꽃과 열매의 시간이 오면 다시 만나 보리라 약속을 합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시절을 따라 잎과 꽃과 열매를 맺기에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약속을 어기는 건 사람입니다. 꼭 다시 올게. 어디 가지 않을 나무에게 재차 약속을 합니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그리고 더 나중까지 순환하는 계절을 따라 살아왔고 살아갈 나무 앞에서 나의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며 마음을 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과 땅, 나무와 나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서로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기 좋은 시간입니다. 삼일이나 우주로 던져버린 2월 덕으로 곧 만날 봄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강세기, 「초록산책⑤ 어떤 봄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생태적지혜 매거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