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생각해 본 살림과 경제- 살림이 먼저인가? 경제가 먼저인가?

코로나 시대에 느끼는 살림과 경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며 살림과 경제는 같은 뜻이지만 소규모의 가계경제인 살림을 먼저 살려야 거시적인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살림하는 사람의 의견.

살림은 경제에 앞서는가? 경제가 살림에 앞서는가? 즉, 살림이 먼저인가? 경제가 먼저인가? 라는 주제를 받고 글을 써보려 하니 이 질문에 앞서서 경제란 무엇인가? 살림이란 무엇인가라는 것도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일 수 있는 질문에, 33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월급 받고 유리 지갑 털어 세금 내며 소위 경제활동의 주체로 살아왔으면서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생각. 아니, 그 질문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이제야 묻는다. 경제란 무엇인가? 살림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경제란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인 5인 기준의 ‘살림’을 운용하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는 이 가족의 삶을 살리는 것, 즉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돌봄 같은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나누어 함께 소비하는 활동이 살림이요, 경제다. 이 작은 5인 가정경제 단위가 모여 지역경제를 이루고, 국가 경제를 이룬다. 요즘은 1인 가구가 40% 이상이 된다고 하니 5인 가구는 이제 작은 가정경제 단위도 아니다. 협동조합을 구성할 수도 있는 크기이고, 지금 방역상황에서는 음식점도 함께 갈 수 없는 규모이다.

한편 경제를 영어로는 이코노미(Economy)라고 하는데 ‘집을 관리한다’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오이코스(oikos)는 집이고, 노미아(nomia)는 관리한다는 뜻이라 하니 어원으로 보면 ‘경제’는 집안 살림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영어로 보면 ‘살림살이’는 경제와 같은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한자로 풀이해보면 경제(經濟)의 경(經)은 직물을 짜는 날실을 의미하고 제(濟)의 가지런할 제(齊)는 벼나 보리의 이삭이 가지런한 모습을 본뜬 글자라고. ‘경제(經濟)’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인 걸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을 입히고 백성을 먹이는 것이 ‘경제’요, 이것은 가족을 입히고 먹이는 ‘살림’과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살림이란 말 그대로 나와 가족들의 노동력이나 에너지 재생산을 위해 삼시세끼 밥을 먹고/먹이고 옷을 세탁하고 집을 관리해서 ‘되살리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활동’이다. 경제학자 홍기빈은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남도 살리고 나도 산다는 뜻으로 ‘살림’과 ‘살이’를 구분하여 ‘살림/살이’라고 표현하는데 필자는 남도 살리는 동시에 나도 살린다는 의미에서 그냥 ‘살림’이라고 써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족들 밥을 준비하지만 내가 먹기 위해서도 음식을 준비한다. 혼자 먹기 위해서는 대충 먹게 되지만 한 명이라도 함께 밥 먹을 식구가 있다면 간단하게라도 준비해서 함께 좀 더 잘 먹게 된다. 남을 살리는 일이 나를 보살피는, 살리는 일이기도 하고 이는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

거대해 보이는 ‘경제’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저 가정경제만 책임지는 ‘살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살림’이 곧 ‘경제’다. 쓰다 보니 어떤 것이 앞서고, 먼저일 필요가 없는 같은 뜻이다. 즉, ‘경제’란 결국 먹고 사는 일로 순우리말인 ‘살림’의 한자 말이며, ‘살림’이란 먹고 사는 일이 전부라는 것.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퇴직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산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전부임을 절감한다. 그저 한 달 한 달 아이들 키우고, 회사 다니고 돈 벌어 오느라고, 먹고 사느라고 힘들다고 푸념해왔는데 글자 그대로 세끼 밥 먹고 집안 관리하는 것이 ‘살아온 것’의 전부였고 앞으로 ‘살아갈 것’의 전부라는 생각. 그사이 크고 작은 관계의 슬픔과 기쁨들이 에피소드처럼, 양념처럼 섞일 것이다.

그렇게 ‘살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살림 생협의 오랜 조합원으로 ‘살림’의 의미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진지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도, 허투루 보냈어도 아무리 간단하게 먹어도 하루 삼시세끼는 먹어야 했다.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못 챙긴 한 끼, 밖에서 대충 때운 끼니가 생각나고 이제 나를 돌볼 수 있게 되었는데, 가족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한 끼를 이제야 만들어 먹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대단치는 않아도 이전처럼 함부로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매끼 소중한 한 끼를 준비하게 되었다. 돈 벌어 오는 일을 하지 않아도, 가족을 돌보고 살림 활동을 한다. 살림을 하는 한, 살아있는 한 먹어야 한다. 또한 내가 몸으로 살아내는 하루였으므로 집도 관리해야 했다. 수십 년 ‘살림’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살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거대해 보이는 ‘경제’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저 가정경제만 책임지는 ‘살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살림’이 곧 ‘경제’다. by Cottonbro https://www.pexels.com/ko-kr/photo/4107107/
거대해 보이는 ‘경제’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저 가정경제만 책임지는 ‘살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살림’이 곧 ‘경제’다.
사진 출처 : Cottonbro

아침 9시까지 출근해 저녁 6~7시에 퇴근하며, 두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사느라 집을 관리해야 하는 의미도 이유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직장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돈으로만 해결하고 살았나 보다. 우리 가족이 사는 동안 함께 나이 먹은 아파트는 손볼 곳이 많았다. 아래층 욕실에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날 시작한 욕실 공사는 크고 작은 10여 회의 수리 끝에 2년에 걸쳐서야 끝났다. 그러자 위층에서 흘러내린 물이 우리 집 부엌에 똑똑 떨어졌다. 5명이 사용하는 욕실 세면대는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얼룩이 졌고, 오늘 닦아낸 냉장고에는 오늘의 먼지가 쌓였다. 바쁜 눈엔 보이지도 않던 얼룩이 매일 쌓였다.

얼마 전 휴대용 가스렌지를 사용한 후 처음 가스렌지를 닦았다. 어쩐지 낯설었다. 사용 후 청소해 보관하는 건 그동안 내가 하던 방식이 아니었다. 언제나 시간이 너무 없었으므로 사용 후 넣어두고 나중에 사용할 때 청소 후 사용하는 것이 내가 휴대용 가스렌지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시간이 없는 사람이었다. 코로나와 퇴직으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도 시간을 들여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걸, 살림 시작한 지 수십 년이 지나 깨달았다. 멋진 데코레이션이나 인테리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청결과 정리 정돈 상태를 유지하는 일도 엄청난 에너지와 고유의 방식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내 직접 노동이 투여되지 않더라도 고쳐주는 사람을 부르고 일을 부탁하는 일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 또한 예민하고 까다로운 고도의 살림살이였다. 매 끼니 집밥을 만들어 먹고, 가족이, 내가 거처하는 공간을 돌보는 일은 실로 온 에너지를 투여해야만 하는 ‘살림’이라는 기예였고 삶의 기술이었다.

대부분 우리는, 최소한 필자는 경제는 뭔가 거시적이라고 생각하고 국가 경제, 지역경제, 국가 총생산(GDP)이 커지면 우리 살림도 나아진다고 생각해왔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잘하고 두각을 나타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맞다. 기분만 좋아질 뿐이다. 우리나라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잘하면 내 기분이 좋아져서 응원하는 것이었지 내 살림, 내 조건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라는 삼성전자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고 내가 삼성전자에 다니지 않는 이상 우리 집 살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기분도 좋아지지 않는다. 괜한 상대적 박탈감만 더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대한 착각 속에서 살아온 걸까. GDP가 뭐라고, 내 가사노동은 쳐주지도 않는 국가 총생산과 내 소득과는 상관없는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라는 환상 속에서.

회사 다닐 때도 계속 이상했다. 회사 매출은 해마다 성장세를 이어갔고, 회사의 다음 해 목표는 언제나 올해 대비 두 자리 숫자 이상 성장이었다. 어느 해의 목표는 ‘explosive growth’, 폭발적 성장이었다. 10% 성장이란 작년보다 110% 이상을 달성해야 성취할 수 있는 지점이다. 올해 한 것을 죽을힘을 다해 이루고 10% 를 더 해야 다다를 수 있는 목표였다. 10% 인력이 더해진다 해도 매해 자원의 에너지를 갈취해야 이룰 수 있는 숫자였다. 물론 10% 인력이 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로병사, 춘하추동, 사물이 흥하면 쇠한다는 자연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 안에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데 실제로 간헐적으로 매출이 떨어질 때가 있었어도, 큰 틀에서 매출은 계속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른 수건을 짜서였을까. 회사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한다고, 월급이 두 자리 숫자로 오르는 것도 물론 아니었다. 조금 있던 회사 주식도 집 살 때 처분해서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어서였을까? 아무리 회사가 성장을 거듭해도, 월급 한번 늦은 적 없는 안정적인 회사였어도 내겐 그저 괴물 같았다. 물론 그 안에서 돈을 벌어 한 달을 또 살아내야 했지만. 그 괴물을 굴리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지만.

2019년 말에 시작된 COVID-19가 2021년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고 있고, 이제는 2024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코로나로 멈췄던 물류와 기후 위기 여파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통계를 찾아보니 2021년 11월 물가상승률이 3.7%로 1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상승률이라고. 농, 축, 수산물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는데 체감하던 것을 숫자로 확인했다. 지난 주말에 눈이 많이 와서인지 밤새 사과 값이 많이 올랐다. 작황이 불안정하다는 토마토 가격은 여름 이래로 계속 오르더니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농산물 가격 인상은 식량 위기가 현실화하리라는 상상에 불을 붙인다. 코로나 재난 상황에, 기후 참사에 이은 식량 위기는 상상만으로 아찔하다. 국가 경제가 좋아져야, 기업이 잘 돼야 내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것은 이제 환상이라는 걸 모두 안다. 그래서 ‘경제’보다 내 ‘살림살이’가 걱정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전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1회 있었고, 전 국민의 88%에서 시작해 90% 선까지 지급된 재난지원금도 1회 있었다. 재난지원금을 더 많이, 전 국민에게 지원하자는 의견은 나라에 빚이 늘어난다든지, 국가재정의 건전성이 흔들린다는지, 선별 지원해야 한다든지 하는 고색창연한 우려 앞에 흔들린다. 저 사람들은 왜 나라 경제 걱정을 하는 걸까. 지금 흔들리는 살림살이, 가정경제를 구하지 않으면 지역경제이든, 나라 경제든 살아남을 수가 없는데. 돈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놓고 돈 벌 상황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재난 상황에 지원 여부를 따지는 것은 한가해 보인다. 재난 상황에서 국가 경제는 재정을 풀고 모든 힘을 동원해 구제해야 하는 것이 세상을 입히고 시민을 먹이는 ‘경제’의 참뜻 아닌가? 재난 상황이 2년이 되니까 이제 ‘노멀’한 상황이 된 걸까? 우선 전통적 의미에서의 ‘살림’을 살려야 하는 것 아닐까? 살림과 경제는 알고 보면 같은 뜻이지만, 살림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 살림이 먼저 있어야 경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강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서도 알싸한 향이 일품인 생강 같은 글을 쓰면 좋겠다. 지구에 쓰레기를 얼마나 덜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매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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