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詩] 엄마의 비밀통장

짐작은 했지만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어머니의 비밀 통장을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발견하고, 수십 년 동안 눈물 훔쳐가며 모아왔을 그 의미와 무게를 생각한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더니

갑자기 내 귀에 속삭였지

“싱크대 위에 통장 있어”

짐작만 할 뿐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수십 년 동안 눈물 훔쳐가며 아껴 모은

엄마의 비밀통장 등장이요

몇 달 후 엄마 떠난 뒤

우리는 그 통장에서

병원비 이천만원 내고

장례비 이천만원 내고

집유지비·제사비용 아껴뒀지

그치만 다 쓰고 떠나면 좋았을 걸

조금쯤 흥청망청해도 괜찮았을 걸

평생 용돈 조르던 아빠도 모르게

꽁꽁 꼬불쳐놓은 소중한 1억 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왜 이렇게 서러움이 사무치는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울 엄마아빠 영혼을 갈아 넣은

손때 묻은 비밀통장

먼지처럼 사라지고

자식들 가슴에 백배로 적립

김현미

노동이 존중되고 해방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오랜 시간 동안 바람 속에 노동현장을 헤매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오지 않았고, 정작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자본과 국가가 아닌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며 우리라는 현실에 절망했지만 책을 많이 읽고 사람을 조금 만나면서 아주 약간의 희망만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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