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유토피아 안내서] ⑥ 기후위기, 왜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을까?

기후위기 극복은 개인실천만으로는 어렵고, 제도변화 등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제도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은 대체로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만, 태생적으로 ‘체계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어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치거나 심리적, 인지적 편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여러 층위의 다양한 행동이 필요하지만, 이런 편향 때문에 그 행동이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심리학,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기후위기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나 같은 개인이 뭘 한다고 바뀔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기후위기고 뭐고 고민할 여유가 없어.”

“기후변화가 솔직히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 난 소비도 많지 않고…”

“식습관 등 솔직히 오랫동안 해왔던 습관들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워.”

“나는 대체로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고, 환경단체에도 나름 후원하고 있어.”

“나도 나름 열심히 실천해 봤는데, 변하지 않더라. 정부나 기업도 그렇고.”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당장 큰 일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나만(우리나라만) 뭔가 안 하는 게 아니야. 다들 그렇게 하고 있잖아.”

“기술발전이 얼마나 빠른데. 새로운 기술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

“솔직히 너무 늦었어. 이미 티핑포인트를 넘었고 다시 회복되긴 어려워 보여.”

기후위기 하면 많이 나오는 반응들입니다. 여기에 왜 기후위기 극복이 어려운지, 기후행동을 이끌어 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대부분의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이 반응에 대해 제대로 답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을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개인 실천으로는 안 되고, 구조를 바꿔야 해.” 맞는 말입니다. 에너지 시스템, 도시 구조, 산업과 농업, 금융까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구조’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유지하고, 사람이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이성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계산이 우선이고, 습관과 편향에 휘둘리는 존재라면? 그 마음의 구조를 모른 채 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왜 사람들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지, 어떤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장벽들이 있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원리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후위기 극복에 이성 또는 감정, 무엇이 더 중요할까? (3가지 질문)

첫째, 사람들이 기후위기 앞에 행동하게 하려면 다음 중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① 기후위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보를 더 많이 전달해야 한다.

②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줘야 한다. 이대로면 인류는 멸망할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③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대중설득에 효과적이다.

④ 매스컴의 활용을 잘 해야 한다.

정답은? 안타깝게도 보기에는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수잔 모저와 리사 달링에 의하면,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이 위의 네 가지 잘못된 가설에 근거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대중’은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는 전제하에(정보 결핍형 접근법) 기후에 대한 지식을 많이 주면 오히려 마음의 거리를 두려는 사람이 늘어나고(①심리적 기후 역설), 위기 정보만 쏟아 부으면 사람들은 불안과 피로를 견디지 못해 머릿속 깊은 서랍에 그 정보를 밀어 넣습니다. 뇌가 균형을 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②동기화된 망각 혹은 의식 차단). 또한 기후위기를 과학으로 프레이밍 하면, 어렵고 전문가의 영역으로 느껴져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생각하게 되고, 기후위기의 사회적 측면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③과학 프레임). 지금의 언론환경은 각종 sns와 유튜브의 영향으로 동질그룹 내 갇혀있고(진영논리), 가짜뉴스가 진실로 둔갑하고 있습니다(④).

두 번째 질문입니다. 다음 중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① “지금 5만 원을 무조건 받기”② “50% 확률로 10만 원을 받거나, 하나도 못 받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②가 기대값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①을 선택했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물어본다면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① “지금 5만 원을 무조건 잃기”② “50% 확률로 10만 원을 잃거나, 하나도 안 잃기”

이번에는 ②를 고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이익 앞에서는 안전을 택하고, 손실 앞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전형적인 손실회피 편향이었습니다. 이는 대니얼 카너먼의 ‘전망이론’ 중 하나로 그는 심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로 노벨경제학상(2002)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두 가지 이미지인데요, 하나는 수십 년 동안 가파르게 치솟는 CO₂ 농도 그래프(킬링 커브)이고, 다른 하나는 놀이터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두 가지 중 사람들을 기후행동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요?

좌)킬링커브 사진출처 : Oeneis, wikipedia, 우)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 : 김영준

이 질문에는 많은 분들이 “그래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그래프가 더 설득력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연구에서는 “아이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프보다 훨씬 강한 행동 동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실험)들은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계산기처럼 움직이는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감정, 습관, 인지 편향에 크게 기대어 행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깨알 사람들의 연결. 사진출처 : GDJ

그렇다면, 이런 인간이 만든 구조·제도를 바꾸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우리 뇌가 실제로 어떻게 기후변화 메시지에 반응하고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Climate Change Communication; CCC), 즉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CCC의 본질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즉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있습니다.핵심은 내(우리)가 아닌 상대(시민/대중/청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왜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을까? (5가지 심리적 장벽)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볼 때, 우리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다섯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진화를 거치며 만들어진 인간의 체계적인 오류(PAIN)

우리 조상들의 뇌는 “눈앞의, 빠른, 누가 봐도 나쁜, 지금 벌어지는 위협”에 잘 반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는, “오랜 시간 인간의 심리가 진화하는 동안 우리는 주요한 네 가지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 네 가지 자극을 ‘PAIN’이라는 네 글자로 정리했습니다.

  • 인격적 자극 P(Personal): 인간 행위에 대한 위협
  • 감작스런 자극 A(Abrupt):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위협
  • 비도덕적 자극 I(Immoral): 분노를 일으키는 비도덕적 가해자
  • 현재 자극 N(Now): 지금 곧 일어날 일

그런데 기후위기는 이 중 어떤 자극도 유발하지 않습니다. 비인격적이고(Impersonal), 어떤 국가에 따라서는 서서히 진행되고(Slow)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가해자가 너무 분산되어 있고(모두가 조금씩 가해자인 구조),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집니다(Future). 우리 뇌의 “위험 레이더”는 이런 유형의 위협에 경보를 세게 울리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니얼 카너먼의 ‘전망 이론’도 이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는 “사람들은 1) 이익이 없을 가능성보다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더 싫어하고, 2) 장기비용보다 단기비용에 훨씬 민감하며, 3) 불확실성보다 확실성을 선호하는데, 기후변화는 이 같은 세 가지 인지편향을 보여주는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즉 경제적이고 과학적으로 판단한다면, 둘 중 하나에 더 가중치를 둘 이유가 없음에도 인간은 편향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편향을 인간의 ‘체계적, 규칙적 오류’로 봅니다.

(2) 사회적 관행의 힘

자동차 출근, 배달 음식, 해외여행, 고기 위주의 회식, 에어컨 온도, 주말 쇼핑까지 우리의 일상은 이미 탄소 집약적 습관으로 촘촘히 짜여 있습니다. 이 습관들이 모여 사회적 규범이 되었습니다.

  • “회식에서 고기를 안 먹으니 눈치가 보여요.”
  • “회사 동료들은 다 차 끌고 다니는데, 나만 대중교통으로 오니 좀 애매해요.”
  • “아이들 방학에는 남들처럼 해외여행 한 번 갔다 와야 하는데…”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행동했습니다. 게다가 기후위기 앞에서도 “다른 사람들도 별로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서로를 묶어 두었습니다. 조지 마셜은 이것을 ‘사회적으로 구성된 침묵’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들 속으로는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별 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침묵을 보며 “그래도 당장 큰일은 아닌가 보다” 하고 안심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서술적 규범(대부분이 실제로 하는 행동)과 명령적 규범(대부분이 옳다고 여기는 행동)이 기후파괴적인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을 때,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방관자 효과’와 ‘다원적 무지’가 합쳐진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누구도 나서서 “이거 정말 큰일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자, 우리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무지에 빠져버렸습니다.

(3) 인지 편향과 복잡한 현실 앞에서의 대충 이해

기후위기는 느리고, 복잡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뇌는 이런 대상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뇌는 이를 회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지름길’을 택합니다.

  • 인지부조화 : 평소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접하거나, 하게 될 때의 불편함. 그래서 행동을 바꾸기보다 생각을 바꿔버리는 합리화를 해버림.
  • 확증 편향 : 원래 믿던 정치·이념에 맞는 정보만 찾아보고, 다르거나 불편한 정보는 애써 무시함.
  • 가용성 편향 : “올해는 별로 안 더웠는데?”처럼, 최근 경험한 날씨에 기대어 전체 기후를 판단함.
  • 김리적 거리두기 : 기후위기를 다른 나라, 다른 세대,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느낌.
  • 현상유지 편향·매몰비용 오류 : 이미 지어 놓은 공항, 도로, 발전소 때문에 “지금 와서 방향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고 느낌.
  • 시점 할인과 현재 편향: “지금 고생은 싫고, 미래의 위험은 아직 멀었다”고 느낌.

(4) 감정의 방어기제: 죄책감, 무력감, 그리고 ‘유한한 걱정의 웅덩이’

“이대로 가면 인류 문명은 붕괴한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이미 지나고 있다.”같은 종말형(doom) 메시지를 계속 들으면, 우리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작동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계속 들으면 “이미 늦었다”는 체념을 낳게 됩니다.

  • 동기화된 망각 : 보면 괴롭고 무력해지는 정보는 아예 보고 싶지 않고, 금방 잊어버리는 것.
  • 학습된 무력감 : “어차피 대기업과 정부가 안 움직이면 소용없다”는 생각이 쌓이면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조차 “해 봐야 소용없다”고 느낌.
  • 유한한 걱정의 웅덩이 : 인간이 한 번에 진지하게 걱정할 수 있는 문제의 양은 제한되어 있어서, 당장의 생계·주거·돌봄 걱정이 커지면 기후위기는 자연스럽게 그 웅덩이 밖으로 밀려나 버림.

게다가 기후위기는 우리를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로 만들었습니다.내가 타는 차, 내가 타는 비행기, 내가 켜는 전기가 온실가스를 만든다는 사실은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도덕적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 “나는 분리수거도 열심히 하고 텀블러도 쓰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도덕적 면허)
  • “기술이 곧 해결해 줄 거야.”
  • “중국·미국도 안 줄이는데, 우리가 줄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식의 자기 정당화는 일시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겠지만, 결국 행동을 미루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5) 정체성과 문화전쟁: ‘우리 편 vs 저쪽 편싸움

기후위기가 어느 순간부터 정치·문화 진영 싸움의 깃발이 되어 버린 것도 큰 장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따지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 편이 하는 말일까, 저쪽 편이 하는 말일까?”

어떤 사회에서는 “기후를 걱정한다.”는 말이 한 정치 진영의 상징이 되고, 기후정책에 반대한다.”는 말이 다른 진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때 기후과학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편”과 “저쪽 편”을 구분하는 표지가 됩니다. 여기에 앞서 말한 정체성 방어가 겹칩니다.

“돈 냈으니 괜찮다”는 면죄부 심리는 탄소 배출권에도 비슷하게 작동할 위험이 있다. 사진 출처 : Clker-Free-Vector-Images

자동차, 고기, 해외여행, 넓은 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노력했고, 가족에게 얼마나 잘하려 하는지”와 연결됩니다. 그런 삶을 비난하는 메시지는 곧바로 “나와 우리 삶 전체를 부정하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후 메시지를 듣는 순간 과학 내용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 태세로 들어가게 됩니다.

위 5가지 심리적 장벽 외에도 “시장논리와 면죄부프레임”도 기후행동을 방해합니다.

‘탄소세·배출권 거래제’ 같은 가격 신호는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역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유치원 하원시간에 늦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더니, 죄책감이 사라져 오히려 더 늦게 왔다는 실험이 유명합니다. “돈 냈으니 괜찮다”는 심리가 작동한 것입니다. 탄소 배출권도 비슷한 면죄부로 작동할 위험이 있습니다.

3. 감정뇌와 이성뇌, 무엇을 움직여야 할까?

이제 해결책, 즉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체계를 두 가지 시스템으로 설명합니다.

  • 시스템1 : 빠르고 자동적인 직관, 감정의 뇌
  • 시스템2 : 느리고 노력 필요한 이성적 사고, 이성의 뇌

기후과학의 그래프, 시나리오, 확률 모델은 거의 모두 이성뇌에 호소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이해하지만, 당장 행동하겠다는 에너지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감정뇌는 강렬한 이미지·이야기·경험에 반응하지만, ‘2100년까지 평균 기온 3도 상승’처럼 느리고 추상적인 위협에는 잘 반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해 행동을 촉구하려면 두 뇌를 동시에 겨냥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 믿을 만한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로 이성뇌를 설득하되, 그 데이터를 개인의 삶, 지역, 관계, 정체성과 연결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로 감정뇌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의 뇌를 어떤 가치와 이야기로 움직여야 할까요?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조지 마셜은 그 해답을 ‘타협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에서 찾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기후변화의 심리학』 후반부에서 책 전체를 요약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내립니다.

“이기심을 부추기는 인지 편향을 극복하고 감정적 뇌를 활성화하기 위해, 우리는 타협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에 호소함으로써 사람들이 장기적인 공동선을 위해 단기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귀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거나 약자 또는 무고한 자에게 해를 입히거나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을 훼손하거나 부모 또는 자식에게 모질게 대하거나 하는 일 등을 금하는 가치들이 이에 속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사진출처 : David_SMC

이렇게 보면, 기후위기는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실이 우리의 감정과 가치, 정체성, 일상 언어와 어떻게 연결(또는 단절)되어 있는지, 그 연결을 어떻게 다시 엮어낼 것인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말하는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과학 설명”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삶과 관계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실제 행동과 구조 변화로 묶어내는 작업입니다.

조지 마셜도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이미 인간에게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들(정체성, 소속감, 이야기, 가치)을 활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4.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5가지 커뮤니케이션 원리)

앞서 제기된 여러 장벽들을 극복하기 위한 5가지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어려운 과학의 언어에서, 일상의 언어로

먼저, 과학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 “지구 평균기온 2℃ 상승”보다는 “우리 도시의 폭염일 수가 두 배로 늘어, 노인과 아이들이 더 많이 쓰러집니다.”
  • “CO₂ 450ppm”보다는 “지금처럼 계속 가면, 우리 아이가 40대가 될 때 여름에 밖에 나가기 어려운 날이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이처럼 추상적인 숫자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예시, 건강과 안전, 일상의 풍경으로 번역할 때 사람들의 감정 뇌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조지 마셜은 특히 과학자들이 ‘90%의 가능성’ 같은 “불확실성(uncertainty)”의 표현이 대중에게는 “덜 심각하다”는 뜻으로 오해되는 점을 지적하며, 언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와 같은 일반적인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지요.

(2)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로

기후위기를 “머나먼 지구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연결된 문제”로 말해야 합니다. ‘지구’가 아니라 ‘우리’, ‘30년 후’가 아니라 ‘지금’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 폭염, 홍수, 가뭄, 미세먼지는 당장 우리 동네의 건강과 안전 문제입니다.
  • 전기요금, 식품 가격, 에너지 비용은 우리의 가계와 생계 문제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 같은 먼 목표만 이야기할 때보다, 앞으로 5~10년 안에 이 동네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훨씬 더 귀 기울였습니다.

손실회피 편향을 고려한다면, “무언가를 더 희생해야 한다.”는 메시지보다, “지금 안 바꾸면 우리가 아끼는 것을 잃게 됩니다. 지금 바꾸면 오히려 삶이 더 안전해집니다.”와 같이, 보호와 회복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메시지만큼 메신저신경 쓰기

다양한 연구결과는, 사람들이 “내용” 못지않게 “메신저”를 본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농민은 농민의 말을, 노동자는 동료 노동자의 말을, 신앙 공동체는 내부 구성원의 말을, 청소년은 친구와 교사의 말을 더 진지하게 듣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지면 메시지는 쉽게 튕겨 나갔습니다.

반대로,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언어와 경험으로 기후를 이야기할 때, 기후위기는 “밖에서 날아온 요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나온 고민”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우리가 가서 설득하겠다.”에서 “각 공동체 안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겠다.”로 중심을 옮기는 것입니다.

단어가 프레임이고, 이야기가 매체라면,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은 과학적 정보와 개인적 신념을 잇는 사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약한 고리가 됩니다. 이런 신뢰감 역시 강력한 편향이며, 전적으로 감정적 뇌, 그리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직관적인 능력에 따라 좌우됩니다.

(4) ‘우리 편의 언어로 말하기 (정체성과 가치를 고려한 프레이밍)

세 번째 원리와 연관된 내용으로, 똑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에 맞게 다르게 말해야 합니다.

  • 보수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국토와 농촌을 지키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며,후손에게 부끄럽지 않게 책임을 다하는 일”로 기후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종교인에게는 “피조 세계를 돌보라는 소명, 이웃 사랑의 연장선에 있는 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노동자와 청년에게는 “기후위기가 불평등과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정의로운 전환’이 왜 중요한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5) 침묵을 깨고, 일상에서 이야기하기

다섯 번째 원리는 단순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후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기과학자이자 커뮤니케이터인 캐서린 헤이호의 “Bond(관계)-Connect(공감)-Inspire(초대)”라는 3단계 대화모델이 아주 유용합니다.

기후 대화를 할 때

1) Bond(관계 맺기) – 인간적인 연결부터 만들고,

2) Connect(공감·가치 연결) – 서로 공유하는 가치·경험과 기후를 이어 붙이고,

3) Inspire(영감·행동 초대) – 그 가치에 맞는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초대하는 것입니다.

기후 대화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곧장 설득·논쟁 모드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계·공감 없이 시작하면 상대는 “공격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방어적으로 반응합니다.

반대로, 이미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족, 신앙, 안전, 공정함 등) 위에서 “우리가 이 가치를 지키려면 기후 문제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하면, 상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기후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정치 얘기, 환경 얘기는 피하자”고 할 때, 아래 방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애들 학교에서 폭염 때문에 야외수업 줄였대. 우리 애도 너무 더워하더라.”(관계),

“우리가 늘 ‘아이들 건강·미래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잖아. 기후가 망가지면 그게 제일 먼저 흔들리는 것 같더라.”(공감)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학교·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들 같이 찾아보지 않을래? 부모들 목소리가 모이면 바뀌는 게 생각보다 많더라.”(초대)

5. 새로운 접근법(신경과학적 원리): “행동이 믿음을 이끈다(Actions Drive Beliefs)”

2024년 10월 신경과학자 크리스 드 마이어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아래처럼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 행동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먼저 행동할 수 있을 때, 그 행동이 믿음과 인식을 바꾼다.”

인식이 바뀌면 그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는 통상적인 생각과 달리, 사람은 먼저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한 뒤에, 뇌가 그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신념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을 더 알리면 행동한다.”는 기존 접근보다, “일단 해볼 수 있는 행동부터 설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설득보다 행동 기회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드 마이어가 제안하는 세 가지 실천 방향은 간단합니다.

1) 판단을 내려놓기: “저 사람은 무지하다/악의적이다”라는 자동 판단을 잠시 멈추고, 상대도 나름의 경험과 정보 속에서 자기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2) 말이 엇갈리는 지점 확인하기(진저 더 독 효과): 같은 단어(예: ‘기후위험’, ‘기후행동’)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듣는다는 걸 인정하고, “당신이 말하는 X는 어떤 뜻인가요?”라고 물어 개념 차이를 줄이는 것입니다.

3) 사실 설득보다, 실질적인 행동 기회를 설계하기: “기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사람들이 작더라도 직접 행동에 참여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는 제안입니다. 또한 한 번 참여한 행동은 이후에 “나는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과 믿음으로 되돌아와 다음 행동을 더 쉽게 만든다고 합니다.

6. 기후위기, 인권의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

앞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조금 다른 차원의 접근이지만, 기후위기를 인권의 문제로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말해지던 이야기의 뿌리를 바꾸는 일입니다.

“기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사람들이 작더라도 직접 행동에 참여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진출처 : TyliJura

지금까지의 서사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온이 몇 도 오른다.”였습니다. 하지만 인권의 서사로 표현하면, “기후위기는 생명권·건강권·생계권을 침해하는 불의이며, 책임 있는 당사자는 피해자들에게 응답해야 한다.”로 바뀝니다.

세계적인 인권학자이자 『탄소사회의 종말』의 저자 조효제 교수는 이렇게 관점을 옮겨오면 몇 가지 중요한 함의가 생기는데, 이제 기후정책이 경제성 논리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기본권의 문제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즉 인권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기본 가치이기에 다른 모든 것보다 최우선으로 다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축’과 ‘적응’뿐 아니라, 이미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정의’의 문제가 함께 논의되어야 하고, 새로운 기후정책을 추진할 때도, 또 다른 인권침해(에너지 전환 과정의 노동권, 지역 불평등 등)를 낳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7. 신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후위기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으로 조효제 교수가 강조한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기후변화의 인간화’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를 지배해 온 ‘기후 레짐(climate regime)’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기후변화의 인간화란, 기온·수치·시나리오보다 먼저 구체적인 사람들, 관계, 얼굴과 이름을 불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감정과 도덕 감각, 상상력이 다시 깨어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직면해야 했습니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성장 체제, 끝없는 개발을 정상으로 만들어 온 정책과 금융, 미디어와 정치, 국가 간 불평등을 포함한 거대한 권력 구조가 하나의 기후 레짐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 레짐은 “탄소를 조금 줄이는 기술”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누가 결정을 내리고, 누가 이익을 가져가고, 누가 비용을 떠안는지에 대한 질문과 재분배, 새로운 규범과 제도 설계가 함께 따라가야 합니다. 또한 그들만의 장에서 기후위기는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되면서 지금처럼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의 인간화와 기후 레짐을 넘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를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말하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와 제도를 바꾸는 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개인의 착한 소비”를 넘어서, 우리의 심리와 뇌, 관계와 제도까지 함께 바꾸어 가는 진짜 전환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말과 실천이 새로운 기후 레짐을 여는 씨앗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기까지 긴 글, 특히 유난히 긴 이번 글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이 글을 끝으로 신유토피아로 가는 긴 여정을 일단락합니다. 이번 여섯 번째 여행은 조금 거칠고 친절하지 못했는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정밀하고 친절한 지도를 준비해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프롤로그를 포함 총 7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고자료

[1] 에스펜 G. 스톡네스, What We Think About When We Try Not to Think About Global Warming (국문 번역본 및 관련 글에서 인용). “기후행동을 방해하는 5가지 내적 방어기제” 관련 글과 강연. 2018.

[2] 조지 마셜, Don’t Even Think About It: Why Our Brains Are Wired to Ignore Climate Change (국문 『기후변화의 심리학』). 2018.

[3] 마샬 셰퍼드, 기후 커뮤니케이션 관련 칼럼 및 강연(확증편향·더닝–크루거·인지부조화에 대한 정리). 2019.

[4] 조효제, 『탄소사회의 종말』, 창비, 연도. 2020.

[5] 리베카 헌틀리,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2022.

[6] 토마스 브루더만, 『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2024.

[7] 앤 크리스틴 듀하임, 『지구를 구하는 뇌과학』, 2024.

[8] 크리스 드 마이어, “Why We Need a New Approach to Climate Communication”, 2024. (greenium 기사 / 관련 강연 정리 글 등)

[9] 캐서린 헤이호, 『세이빙 어스』, 말하는 나무, 2025.

김영준

기후위기를 극복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예술의 힘을 믿으며 '월간 기후송'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싱어송라이터. 교육의 중요성을 고민하는 기후환경강사이면서, 종교(신앙)의 힘을 아직 믿는 기후위기기독인연대 활동가, 그리고 정치에 희망을 버리지 않은 녹색당 당원. 생태전환Lab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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