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은 때로 잔혹함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최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기사들은 당사자를 압박하고 상처를 준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도구가 된다. 사회언어학자이자 『미끄러지는 말들』의 저자인 백승주는 한국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말의 진실한 모습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교육받을 때 강요받는 표준어는 언어의 폭력이자 체제의 폭력이며, 국가의 폭력이다. 또한 ‘국어’라는 단일 언어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언어·영토·민족이 한 몸처럼 이어진다는 강력한 환상을 만들어냈고,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 중요한 장치로 작동했다. 이 환상이 낳은 제도가 바로 표준어 제정이다.
표준어 제정 과정에는 우생학과 위생학의 관점이 개입했다. 우생학적 시각은 서울말을 ‘우등한 언어’로, 지역어를 ‘열등한 언어’로 규정하여 배제했고, 위생학적 시각은 토착어가 아닌 외래어를 ‘오염된 말’로 간주해 밀어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 자체가 말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지적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흔히 제기되는 신조어와 순수 언어에 대한 오해도 짚는다.
우리는 언어로 사회를 구성한다. 사회는 시대에 따라 변하며, 구성원들은 새로운 관계와 환경 속에서 소통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이 욕망의 결과가 바로 신조어다. 사람들의 관계가 유동적인 만큼 언어 또한 언제나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변화하는 형태로 태어난다. 따라서 신조어로 인해 순수 언어가 오염된다는 우려는 타당하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역 방언 사용자를 타자화할뿐 아니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까지도 타자화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노동자, 다문화 가족 등을 포함해 약 265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각 지역 거주자들에게 안전 문자를 한국어로 발송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문자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들이 지진에 대처하지 못해 큰 피해를 본 사건 이후, ‘쉬운 일본어’ 보급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일본 사회가 일본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비존재’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를 하라”는 말이 흔하다. 저자는 이러한 말이 의도와 무관하게 거대한 폭력이 되어 그들의 안전과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 중의 하나는 각종 소셜 매체를 통해 사회적 분노를 조장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분노는 극장의 감정이기에 동조해 줄 관객이나 동료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착안하여 인터넷 ‘주목 경제’가 분노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삼아 가짜 뉴스를 유통시킨다. 이런 가짜 뉴스를 통해 분노하는 사람은 이 감정을 통해 자신이 이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는 효능감을 느끼는 동시에 분노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실의 편에 서 있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소통을 위한 언어들이 우리들의 모든 감정이나 의사 전달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기에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음을, 언어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말은 언제나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말하는 대상에 닿으려 할수록 말은 그 대상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말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와 이어지게 하는 힘이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까지도 타자화하지 않는 언어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아울러 우리 삶을 구성하는 공동체는 아름답고 따뜻한 언어가 사회 공간에 부유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