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집짓기

산책을 하다 우연히 집짓는 거미를 만났어요. 아주 작은 거미가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보며 느끼는 감탄과 경이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책장 위에 홍시 열두 개를 쪼르르 두었어요. 저마다 익는 속도가 다르니 어느 것이 먼저 익을지 주시하면서, 떫은 맛 없어지고 말랑말랑 무르익어 겨우내 하나씩 하나씩 먹을 생각하니 보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제일 먼저 저의 입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 녀석은 최적의 순간을 놓칠세라 한 칸 위, 더 잘 보이는 곳에 두었어요. 먹는 것은 타이밍이니까요. 홍시를 기다린다는 것은 한 해를 마감하는 계절이 되었다는 것. 1년 동안 가꾼 이야기들 곶감 빼먹듯 돌아보기 좋은 겨울, 오늘의 글을 위해 지난 가을의 이야기를 가져와봅니다.

대체휴일을 선물처럼 받았던 지난 가을, 저녁 먹고 산책 삼아 선유도 공원에나 가볼까 하며 길을 나섰어요. 전날 비가 온 덕분에 상쾌한 바람이 살랑 부는 저녁, 양화대교엔 사람이 꽤 많았는데, 난간의 무늬를 따라 얼마나 다양한 거미줄이 있던지! 아래쪽에서 다리를 비추는 초록 불빛이 다리 난간 구석구석 삶을 꾸리고 있는 입주민들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어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각양각색 다양한 거미줄을 구경하는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지은 지 좀 오래되어 낡고 찢어진 거미줄, 옆으로 길게 늘어진 거미줄, 정사각형에 가깝게 집을 지은 거미…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난간의 리드미컬한 모양과 거미수만큼이나 다양한 각종 거미줄들이 꽤 근사했습니다. 게다가 오늘의 시간을 황홀하게 만드는 초록 조명까지, 환상적이었어요.

사람이고, 자동차고, 거미고 다들 분주히 무언가를 하며 이 밤을 불태우는데, 찢어진 거미줄 옆으로 성글게 이어진, 유난히 반짝이는 거미줄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 다른 거미줄하고 다른데? 이건 뭐지? 호기심에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세상에!!!! 거기에 작고 귀여운 거미가 바지런 바지런하게 여덟 개의 다리를 알차게 놀리고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 반짝이는 거미줄은 거미가 막 짓고 있는 집의 일부였던 거고, 거미는 자신의 집을 온 힘을 다해 짓고 있는 중이었어요. 사방 끝을 적당한 위치에 딱 붙여두고 방사형으로 거미줄을 친 다음, 풀어지지 않게 가운데 부분을 꼼꼼하게 잘 마감한 후, 다음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아이의 다음 작업은 방사형으로 뻗은 거미줄에 성글게 전체적으로 달팽이집을 짓는 거였어요. 나중에 보니 이게 바느질로 말하면 시침질이더라고요. 실을 풀어가며 다리 여덟 개를 야물딱지게 써서 점프해가며 똥꼬를 콕콕 찍어 실과 실이 만나는 곳을 잇습니다. 한쪽 다리는 동그라미 사이 간격을 조절하는 데 쓰고 다른 다리로는 움직이고, 또 똥꼬는 똥꼬대로 열일 중! 안쪽에서부터 시작해 바깥으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니 점프가 여의치 않자 거미는 실을 콕 찍고 ㄷ자 길을 거슬러 다음 칸으로 이동해 실을 잇습니다. 와!!!!!!! 이 과정이 어찌나 신기한지, 소리없이 꺅꺅거리며 박수를 쳤어요. 방사형의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리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성글게 시침질을 해 놓고, 거미는 바깥으로 이동합니다.

아오- 너무 궁금해요! 이 녀석은 왜 하던 일 안 하고 바깥으로 갈까? 거기에 어떤 깊은 뜻이 있을까? 두근두근 궁금해요. 가만 보니 이 녀석은 촘촘한 거미줄을 만들기 위해 일단 가운데 시침질을 해 놓고, 바깥쪽부터 채워나가려는 계획인 거 같았어요. 한 곳에 점을 콕 찍고 다시 ㄷ자 모양으로 길을 거슬러 다음 칸으로 이동, 또 실 뽑아 똥꼬로 콕 찍고, 반복- 반복- 반복…. 보는 사람도 힘든데, 이 녀석도 힘든지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며 그러나 묵묵하게 이 작업을 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경이롭고 장엄한 ‘거미의 집짓기’에 저는 푹 빠져버렸어요.

옆에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시끄러운데, 거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저는 조용히 아이를 지켜봅니다. 콕 찍고 ㄷ자 길을 돌아 다음 칸 콕 찍고, 또 ㄷ자 길을 돌아 콕 찍고……. 간격이 넓은 바깥 부분을 정말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채운 후, 점점 안쪽 부분까지 야물딱지게 채워갑니다. 이 녀석의 너무나 우아하고 세련되고 능숙한 바느질 솜씨가 너무너무 감격스러워 꼼짝없이 이십여 분을 서 있었어요.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다 몇 번이나 멈춰 숨고르기를 하는 이 거미를 응원하면서요.

이제 작업은 후반부로 들어섰어요. 방사형 뼈대를 만들고, 가운데를 쫌쫌따리 야물딱지게 엮고, 시침질을 한 후, 바깥 부분부터 채워간 거미의 집은 가운데 부분만을 남겨두었어요. 넓은 구간은 ㄷ자로 움직이며 지난한 과정을 멋지게 소화하더니, 시침질한 쪽으로 들어서자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이미 경이로움 그 자체였는데, 바깥에서부터 간격에 맞게 채워가다 처음에 시침질(?) 해 놓은 부분이 간격에 맞지 않으니 두 개씩 끊어가며 새 줄을 치는 것 아니겠어요? 더 놀라운 것은 간격 안 맞는 줄을 한 번에 다 끊어버리는 게 아니라 한 바퀴 돌때마다 미리 이어놓은 줄을 두개씩 잘라가며 채워가더라고요. 이 대목에 이르자 저는 그만 이 거미에게 항복하고 말았어요.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뭉클함으로 바뀌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어요. 더더 이 친구를 응원하게 되었고요.

거미의 집은 이제 완성태를 갖추었습니다. 이제 마감하는구나! 가운데 엮어놓은 부분까지 촘촘하게 하겠지 싶었는데, 풍류를 아는 이 녀석은 여백의 미(?)를 살리며 안쪽 몆 줄 건너뛰고 집짓기를 마감합니다. 집짓기라는 큰일을 다 마친 아이는 맨 안쪽 촘촘히 바느질해 놓은 부분에 가서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요.

2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에너지를 다 해 지은 거미줄-거미집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 큰일을 해내고, 쉬고 있는 이 아이의 경이로운 모습에 한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꼬박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토록 큰 집을 공들여 만들어내는 과정이 녹록지 않아 보이는데, 이 거미는 평생 몇 번의 집을 지을까요? 세상의 많은 거미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집을 지으며 자신의 생을 꾸려나가고 있겠지요. 어디 거미뿐이겠어요. 세상의 수많은 생명들도 주어진 자신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겠고요. 나는 지금 어떤 집을 지으며, 어떤 일을 공들여 하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주어진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묵묵히 자기 길 가는 거미가, 그래! 우리 찬찬히, 함께 잘 살아보자 응원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에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20여분을 지켜보며 응원도 하고 감동도 받은 후, 다시 길을 걷는데!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양화대교 난간의 수많은 입주민들이 그 밤, 너무나도 분주하게 자신의 생을 살아나가고 있지 않겠어요. 집을 완성해가는 아이, 집을 짓고 기다리는 아이, 큰 집을 시작해 아직 작업이 많이 남은 아이, 각자의 속도에 맞게,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었어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쁨과 말할 수 없는 감동, 잘 챙겨 쭉 잘 살아내야지, 괜히 다짐도 하며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두근두근 벅찬 마음으로 친구에게 영상을 보냈더니 이건 거의 다큐라며, 이렇게 삶에 진지한 거미를 보니 뭉클하고, 그걸 진지하게 지켜보는 마음도 감동이라는 답장이 왔어요. 학생 한 명은 레전드 영상이라고 하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어요. 그러자니 이거 혼자 보기 아깝다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네, 그래요. 혼자 보기 아까운 이 영상을 생태적 지혜 연구소의 가족들과 함께 나눕니다. 시작과 마무리를 끊어가며 찍었지만, 거미의 시간, 거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보면 좋을 거 같아요. 보시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나누고도 싶고요.

요즘도 가끔 산책하며 양화대교를 지납니다. 날이 많이 추워져 거미도, 거미집도 거의 보이지 않아요. 이제 녀석들은 겨울잠을 자러 들어갔을까요? 추운 겨울을 나는 지혜도 이미 가지고 있겠지요? 묵묵히, 자신의 집과 삶을 가꾸는 거미처럼 일상을 반짝이는 발견과 기쁨으로 잘 채워야지 생각해봅니다. 작고 사소한 것 속에 담긴 우주를 발견하고 함께 나누면서요.

에리카

대안학교 교사입니다. 즐겁고 재미난 일 궁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작당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은 어른들과 해야 할 일이 많아, 마인드 컨트롤 중입니다(대외비).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 속에 숨어있는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잘 발견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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