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 가져야 할 우리 믿음의 모습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모든 물질적, 영적 자산이 동원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 영성, 특별히 구약성서가 보여주는 “종의 영성”과 신약성서 증언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영성”이 기후 위기 시대를 지나는 우리에게 좋은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종의 노래 1
나의 종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쇠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다.
-이사야 42장 1~4절

종의 노래 2
네가 내 종이 되어 이스라엘의 살아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가벼운 일이다. 땅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이사야 49장 6절

그리스도 찬가
여러분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는 하나님이셨으나, 자기를 비우고 낮추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시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 빌립보서 2장 5~9절

성경 이사야서는 3명 이상의 저자가 각각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을 기록한 문서다. 첫 번째 역사적 상황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의 바벨론 제국에 의한 멸망의 위기다. 두 번째 역사적 상황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 후 바벨론 제국에서 70년에 이르는 포로기를 보내던 시절이다. 세 번째 시기는 포로기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파괴되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던 때다.

예루살렘이 멸망의 위기에 놓였을 때 제1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범죄가 멸망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 위기는 정치적인 권모술수와 주변 강대국과의 합종연횡을 통해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철저히 위기를 통과하며 위기를 초래한 모든 종교, 정치, 사회적 불의를 청산해야만,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거듭날 때만 비로소 위기를 새로운 삶의 전기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바벨론 제국의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고 모든 왕족과 귀족과 인재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는 포로기를 보내게 되었을 때, 제2이사야는 실의와 절망에 빠진 그들을 위로했다. 이제야말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할 때이며 그와 더불어 세계사를 새롭게 하는 새로운 삶의 원리, 생명의 원리가 인류의 문명사에 시작되는 일에 이스라엘이 이바지할 때라고 선포했다.

“종의 노래”

겸손과 사랑의 십자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만났다. 사진 출처: geralt
겸손과 사랑의 십자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만났다.
사진 출처: geralt

성경 이사야서에는 “종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4개의 텍스트가 있다. 앞에서 소개한 첫 번째 구절은 그 중 첫 번째 “종의 노래”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종은 무너진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재건할 인물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사를, 역사 자체를 새롭게 할 인물을 가리킨다. 두 번째 “종의 노래”인 이사야서 49장 6절에서 그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기록된 “종의 노래”에 등장하는 종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더불어 세계사를 새롭게 재건할 이다. 그는 과연 어떤 품성을 가진 인물인가? 그리고 과연 어떤 품성의 인간이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에 적합한 인간인가? 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다.

“종의 품성”

이사야서가 말하는 종, 즉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세계사를 새롭게 재건할 종’의 품성은 첫째,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이는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현재의 상태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은 자기의 목소리를 높여 현재를 고수하는 대신 시대의 징조를 읽고 듣는 자이다.

둘째, 종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행한다. 즉 그는 약한 것에 대한 자비와 존중과 공감을 가진 존재다. 그리고 진리로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정의를 이루는 목표와 수단 모두의 정당성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목표의 정당성으로 수단의 부당성을 가리지 않는 존재를 뜻한다.

셋째, 종은 쇠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면서 정의를 이루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정의를 이루기 위한 종의 의지는 굳건하다. 그의 앞길이 언제나 평탄하지 않고 그의 길이 언제나 지지에 둘러싸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난관이 정의를 향한 종의 의지를 굴복시키지 못한다. 그는 눈앞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정의의 실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매우 긴 호흡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기원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자신으로 경험했다. 나사렛 예수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가져온, 인간과 역사의 구원을 이룬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예수는 압도적인 위력과 권능으로 인간을 지배하며 역사 속에 자기 뜻을 관철하는 존재가 아닌 오히려 인간을 섬기고 역사를 위해 헌신하는 종의 모습을 지닌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었다. 그리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종”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였다.

이러한 경험과 통찰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었다. 그들이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은 나사렛 예수에게서 경험한 하나님은 자기의 위력과 권능을 포기하더라도, 죽음의 십자가로 자신을 내몰게 되는 한이 있어도 인간을 향한 자신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인간을 향하여 오시고야 마는 하나님이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예수에게서 경험한 인간은 위력과 권능에 의존하지 않는, 겸손과 사랑으로 이뤄지는 구원을 추구하는 인간이었다. 그리하여 위력과 권능의 보좌가 아니라 겸손과 사랑의 십자가야말로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그리고 이러한 만남에서 인간과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깨닫게 된 내용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되던 날 예수의 빈 무덤이 발견된다. 그리고 곳곳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제자들의 증언이 뒤따른다. 물론 이 모든 증거와 증언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소문도 함께였다. 처음에는 예수의 제자들조차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셨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단지 예수 개인의 부활로 국한하지 않고 예수의 부활을 인간과 역사를 새롭게 재건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 관철된 증거로 받아들였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오늘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간다.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이 임박했다는 징조가 도처에서 목격된다. 그런데도 기후 위기는 없고 단지 기후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기후 변화는 자연적인 과정일 뿐, 인간의 개입으로 일어난 과정이 아니라고 말하며, 또는 현재의 삶을 이룬 놀라운 과학과 기술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현재의 삶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성서가 권고하는 종의 영성과 그리스도의 영성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인간의 죄로 인해 탄식하는 피조물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종의 영성이다.

성서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사진출처 : jclk8888
성서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사진출처 : jclk8888

오늘의 기후 위기는 기후 위기를 초래한 부유한 자들보다 기후 위기에 잘못이 없는 가난하고 약한 존재들을 먼저 삼켜버릴 것이다. 삶의 전환을 최대한 늦추며 지금의 삶의 구조 속에서 끝까지 이익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는 가난하고 약한 존재들을 희생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작은 자, 약한 자에 대한 공감도 존중도 없다. 그러나 성서가 증언하는 종의 영성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등불도 불어서 끄지 않는 자비로움이며 작고 약한 것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다.

기후 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으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최후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삶에서 벗어나는 일,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을 좌고우면 없이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눈앞의 성공과 실패에 좌우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삶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종이 영성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담론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부유한 삶, 편리한 삶을 스스로 버리고 가난한 삶, 불편한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할까? 이것은 끝없는 상승과 확장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 아닐까? 한없이 높이 오르고, 끝 간 데 없이 확장하려는 욕망을 포기하는 자기 비움과 자기 물림의 길이 참된 신의 길이었고 참된 인간의 길이라는 것, 바로 그 길에서만 인간은 신을, 신은 인간을 만나게 됨을 인식하는 것이 십자가 영성이다. 또한, 그 길이 결코 실패나 죽음으로 귀결되는 길이 아니며 오히려 참된 삶, 참된 생명, 새로운 역사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확신하는 것이 부활 영성이다.

기후 위기는 어느 한 부분의 개선으로 극복할 수 없다. 인류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유산과 능력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산인 성서 역시 온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 기후재앙의 극복을 위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사야서가 말하는 종의 영성과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영성을 현재 우리가 처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주목해야 하는 정신적 자산으로 소개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김희룡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성문밖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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