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토종씨앗의 역습』의 저자 김석기 선생이 주관하는 책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김석기 선생은 미국 모 대학의 농사에 관한 대학교재 하나를 발견했는데 내용이 좋아 바로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책으로 발간하기보다는 일단은 공부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대안적인 농사를 고민하는 단체나 지인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렸던 모양입니다. 제 지인도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고 저에게 소개를 한 것이었습니다. 지인에게 어떤 내용으로 공부를 하느냐 물으니 “농생태학”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때 김석기 선생이 번역한 책은 스테판 글리즈만이 쓴 『농생태학(Agroecology: The Ecology of Sustainable Food System)』 제3판 (2015)이었습니다.

‘농생태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떠오른 감정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농사에 대해 공부를 한다고 자부하면서 살았는데 농생태학이란 건 처음 듣는 데다 어떤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새삼스레 뭘 또 새로운 걸 하려고 하는가 싶은 피로감이었습니다. 근대 산업농에 대한 대안으로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덧붙여 회자되는 농법이 당시에도 지금도 많습니다. 유기농, 자연농, 자연농업, 자연농법, 예술자연농, 보존농업, 재생농업, 퍼머컬처…… 세밀히 파고 들어가면 차이가 보이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저 같은 농부입장에서는 내용이 대동소이한 측면이 있어 당시의 저로서는 피로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인의 초대를 받고 들었던 생각은 ‘있는 거나 잘 하지’라는 조금은 삐딱한 시선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삐딱한 마음은 알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고 모임 전에 읽어오라는 글을 전해 받고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농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았던 것, 알고 싶었던 것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간 이곳저곳에 파편적으로 기록했던 내용들을 하나의 틀로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피상적인 인상이었을 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알아봐야겠다 싶어 지인과 함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는 분부터 농(업)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대안적인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 농촌진흥청 소속의 농학 전공자인 공무원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참여해 모임은 제법 활기를 띠었습니다. 내용이 낯설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해서 이런저런 생산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모임 참여는 한 번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후 몇 달은 농번기가 겹쳐 참석이 어려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임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농생태학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란 게 있긴 있나 봅니다. 다시 못 볼 것만 같았던 농생태학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그 자취를 만나게 됩니다. 기후변화 대응 관련한 모임에서 읽었던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전 세계 소농 2백만 명의 연합체 라 비아 캄페시나는 농생태학이야말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다. 소농이 지구의 온도를 낮춘다” (p.200)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이런 구절들이 속속 눈에 띄면서 ‘더 이상 피할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석기 선생의 번역본을 토대로 지역에서 관심있는 지인들과 공부모임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이건 왜 느닷없이 나오는 거지?’라는 생각이 맴돌아 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농생태학은 말 그대로 농사와 생태학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니 농사와 생태학을 알아야 합니다. 농사는 그나마 알겠는데 생태학은 생소해 낯설기만 했습니다. 더욱이 농생태학은 농장 내의 지속가능한 농사방법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농사와 연계된 먹을거리 체계 곧 정치, 경제까지 범위를 확장합니다. 요컨대 농생태학은 농사를 기반으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통합학문이어서 숙지하고 알아야 할 내용이 많고 복잡했던 겁니다. 그러니 번역된 농생태학 교재만 읽어서는 농생태학이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생태학을 알아야 했습니다. 서점과 온라인상의 자료를 찾아보던 차에 몇몇 생태학 관련 서적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강호정 선생의 『다양성을 엮다』, 차윤정·전승훈 선생의 『숲생태학 강의』, 도널드 워스터의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였습니다. 이 책들을 통해 생태학의 기본개념과 역사, 생태학이 품는 질문들을 알게 되었고 반복해서 읽으니 조금씩 개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생태학 개념을 익히니 글리즈만의 책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기고할 글들은 그렇게 다르게 보이게 된 것들을 제가 경험한 것들과 병행해 농부의 언어로 풀어갈 예정입니다. 어떤 식으로 내용을 정리할까 고민스러웠는데, 일단 농생태학에서 주로 언급되는 개념을 중심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농생태학은 여전히 저에겐 괄호입니다. 채워야 할 것, 공부해야할 것 투성입니다. 부족한 대로 아쉬운 대로 괄호를 여러분과 함께 채워가면 좋겠습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자, 그럼 다음 글부터 본격적으로 농생태학의 세계로 떠나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