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법, 패터슨 씨처럼.

코로나 이후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일상을 리듬감 있게 변주하며 살아가는 영화 속 인물, 패터슨씨를 통해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적인 감각을 배워 볼 수 있지 않을까?

비행기 소리가 잘 들리는 동네에 살고 있어 여행 성수기가 언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코로나 이후로는 비행기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최근에 눈에 띄게 그 수가 늘었다. 예전과 달리 이제 비행기 소리를 들으면 “아, 나도 비행기 타고 여행가고 싶다” 하기보다는, 비행기 탄소배출량이 증가되면 어쩌지 라는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동시에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 갔던 신선한 감각들이 되살아나며 은근슬쩍 검색창을 열어 먼 이국땅의 항공비를 검색해본다. 대부분의 소비와 체험이 탄소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애꿎은 비행기만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비행기야말로 욕망의 꽃이 아닐까 싶다. 가장 쉽고, 빠르고, 화끈하게 모든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 감각이 주는 쾌감이 얼마나 크기에 『기후변화의 심리학』 책을 쓴 환경운동가인 조지 마셜도, 다른 것은 참아도 ‘비행 탐닉’만큼은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했을까.

비행기야말로 가장 쉽고, 빠르고, 화끈하게 모든 소비와 체험의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통로가 아닐까 싶다. 
사진출처 : Vitor Almeida
비행기야말로 가장 쉽고, 빠르고, 화끈하게 모든 소비와 체험의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통로가 아닐까 싶다.
사진출처 : Vitor Almeida

뉴스에서도 보복 소비, 보복 여행이란 단어가 쉽게 눈에 띈다. 소비와 여행을 보복적으로 한다는 의미로 조합한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가까운 나라가 아닌 거리가 더 먼 유럽이나 미주 여행상품이 나오자마자 완판되었다고도 한다. 코로나 시기에 답답하게 보냈을 마음을 생각하면 낯선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다시 한번 목도했다. 탄소배출량이 줄어드는 유일한 시기는 오일 피크, 금융위기 시기처럼 경제성장이 멈춘 기간이란 걸 말이다. 탄소를 기반으로 소비하고 체험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전환시키지 않고 푸른 지구별에서 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대한 착각이다.

탄소에 기반을 두어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은 어디에서부터 꿈틀대는 것일까? 요즘 장기하의 신규앨범 중 〈부럽지가 않어〉와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를 듣고 있다. 묘한 리듬을 타면서 힙한 랩인 듯, 구수한 창인 듯 읊어지는 그의 노래는 여러 면에서 놀랍기만 하다. 특히 가사 중에 ‘부러워하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하고’ 란 부분이 인상적이다. SNS가 삶의 일부가 되면서 저마다 일상의 소소한 먹는 것, 노는 것, 읽고 보는 것의 최상의 순간만을 포착하여 전시한다. SNS의 공간이 그런 순간을 전시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뇌는 이미지에 쉽게 반응한다. 곧장 부러워진다. 세상 부러울 거 없이 보이는 장기하 역시 타인을 부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쓴 노랫말이라고 한다.

미디어 광고, SNS에 자주 노출될수록 자본주의적 욕망을 피하기 쉽지 않다. 없었던 욕망이 샘솟는다. 가만있지 않고, 뭔가 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 든다. 반면에 자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자본주의적 욕망의 크기는 작아지는 것 같다. 물론 각종 일회용 쓰레기를 남기며 자연에서 캠핑을 하는 것, 온몸에 선크림을 바르고 산호초를 보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는 행위는 자연을 존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닐 테다.

영화 《패터슨》 스틸컷, 감독: 짐 자무쉬, 국내 개봉: 2017 .12.21
영화 《패터슨》 스틸컷, 감독: 짐 자무쉬, 국내 개봉: 2017 .12.21

부추겨진 욕망으로 소비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무료하고 권태로워서 하는 소비도 있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인 이 욕망을 탄소기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전환시킬 다양한 창의적인 방법은 없을까?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인물은 영화 《패터슨》의 ‘패터슨 씨’이다. 그는 미국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이다. 하루에 8시간 운전을 하는 노동을 하고,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매 순간 시를 길어낸다. 버스에서 손님들의 대화를 들으며, 매일 다른 날씨를 감상하며, 반복되는 산책길에서 마주하는 오래된 건물들과 골목들을 관찰하며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긴다. 남들이 보기엔 무료한 일상이지만, 그에게는 매순간이 창작의 영감이 되는 원천이다. 새로운 것을 소비하거나 전시하지 않아도 그의 삶은 시적인 리듬감을 따라 산다.

패터슨 씨처럼 내가 사는 곳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평범한 삶을 조금씩 변주하며 사는 삶이 어쩌면 도시에서 가장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도시전환의 예로, 파리의 15분 도시를 예를 들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한 참여자가 말했다. “서울을 비롯해 한국의 대도시는 이미 15분 거리가 되어 있지 않나요? 아니, 10분 거리인 것 같네요” 주위를 둘러보니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몰려 살고 있는 한국의 도시 생활권으로 국한시키자면,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이미 병원, 학교, 도서관, 마트, 체육관, 공원이 있다. 새로운 것, 더 최상의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더라도 탄소중립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변주하는 감각을 조금씩 기르는 중이다. 매일 걸어 다니는 산책로이지만 눈을 크게 뜨고 동네 고양이들을 찾는다. 요 녀석 오늘은 여기서 놀고 있구나. 도시에서 공존하며 사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웃음 짓게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움직이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명상도 일종의 여행이다. 베란다 텃밭에 심어 놓은 바질, 딜, 민트, 제라늄 등 허브들이 새싹을 내민다. 요 허브들로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 볼까? 나의 하루는 어제의 하루와 다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다.

벌똥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며 살고 싶지 않아 5평짜리 생태인문 서점 에코슬로우를 열었다. 책방에서 따뜻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낙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산책하고,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읽고 쓰는 삶을 계속하고 싶다. 최근에 불교를 만나고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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