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하는 것 같으나 연관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것들
사회학자 홍덕화는 「탈성장은 수출주의 너머에 있다」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탈성장이 체제전환을 모색한다면 수출주의와 연동된 생활보장체제는 우회할 수 없는 쟁점이다. …… 탈성장은 대안적인 생활보장체제를 구축하는 실천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때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1
이러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홍덕화는 “복지제도 안팎의 요소와 생태환경 조건, 관련 필수재를 제공하는 인프라를 한데 묶어 ‘생활보장체제’라 이름 붙여 보자2” 라고 하면서 ‘생활보장체제’라는 개념을 만들어 제시하였다. 이를 다음과 같이 분해해 볼 수 있다.
• 복지제도 안팎의 요소 → ① 복지제도
• 생태환경 조건 → ② 생태환경
• 관련 필수재를 제공하는 인프라 → ③ 인프라

분해 결과는 홍덕화가 생활보장체제라는 개념의 사용을 제안한 이유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10년 전 3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복지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과 생태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때로 충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일부는 복지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을버스라는 인프라가 갖추어짐으로 해서 노인들의 외출이 쉬워져서 삶이 질이 개선되는 경우가 이에 부합되는 예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도로조성과 같은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면 복지보다는 거기에 예산을 먼저 배정해야한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인다. 인프라를 갖추는 것과 생태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홍덕화가 ①·②·③을 그 안에 담아 생활보장체제라는 개념을 만든 이유는, ①·②·③이 인류의 지속에 모두 필요하면서도, ①·②·③ 사이의 충돌이 전혀 없는 상태는 기대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듯하다. 특히 홍덕화는, ①과 ③이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③이 반드시 ①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야함에도, 사람들로 해금 ①의 강조가 항상 ③을 적절히 만드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인식을 가지게끔 하는 의식화가 만연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또한 홍덕화는 “선별적 (저)복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오랫동안 가족과 개인은 분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사적 자산 축적 경쟁이 가열되었다3”고 하였다. 이 말은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보장하지 않아 개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각자도생에 골몰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다. 또한 홍덕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한국은 주요 자원을 수입에 의존했던 만큼, 천연자원을 저렴하게 수출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 수 없었다, 대신 정부는 에너지, 물, 운송 등 인프라 비용을 가능한 한 낮추는 방식으로 수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 공기업은 인프라를 신속하게 건설하고 가격 통제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복지 대체 수단의 시각에서 토건사업을 다시 보는 것도 유용하다.4”
이는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보장하지 않는 대신 인프라 확충을 통해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도록 의식화하는 이면에서 인프라 구축을 자본가들이 담당하도록 해 그들이 막대한 이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이러한 의식화가 한국인들로 해금 마치 ①과 ③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 양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홍덕화가 강조하고자 하였던 점 같다. 그러니 앞에서 생활보장체제를 굳이 ①·②·③으로 이른바 분해해 본 것 자체가 홍덕화의 생각을 무시하는 처사였다고 할 수 있다. 홍덕화는 ‘충돌하는 것 같으나 연관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것들’이 녹아 붙어있으면서 삶의 기본요건이 되어주는 것으로써 생활보장체제를 제시하려 한다.
장기간의 의식화가 만들어낸 고정관념
홍덕화는 탈성장을 지향한다. 그에게 “탈성장 사회는 단순히 적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이다.5” 다르게 소비해야 하는 이유는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추세를 막고 돌려세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1.5℃ 이내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선발 산업국가의 경제성장 자체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6 홍덕화는, 이런 상황 때문에 전 지구적인 체제전환(system change)7이 필요하다고 보면서, 한국의 경우에는 ‘성장주의’ 그리고 ‘수출주의’가 너무 강해 체제전환이 어렵다고 보았다. 성장주의와 수출주의 두 개념은 사회과학에서 사용해온 개념은 아닌 듯하고, 홍덕화가 성장과 수출을 중시하는 집단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말인 듯하다. 이러한 홍덕화의 주장들을 보다보면, 앞서 서술한 바 있는 의식화 즉 마치 ①과 ③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 양 생각하게 만든 것 또한 성장주의와 수출주의를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새겨 넣는 작용을 한 듯하다.
홍덕화는 「탈성장은 수출주의 너머에 있다」에서 탈성장의 전망이나 대안적인 생활보장체제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글은 탈성장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강력하게 일깨우는 한 요소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홍덕화는,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더, 이를테면 토건을 부의 원천으로 하는 세력에 의해, ①과 ③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강력하게 유포되고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홍덕화의 글 「탈성장은 수출주의 너머에 있다」를 읽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인류의 지속에 필요한 생활보장체제를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충돌과 모순은 많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일 듯하다. 이런 점들을 보다보면, 홍덕화가 생활보장체제라는 말을 만들어 제시한 이유가 장기간의 의식화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을 해체하거나 비켜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앞세우는 현실 수습론
홍덕화는, 탈동조화[Decoupling]에 기반하는 녹색자본주의[Green Capitalism]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명하면서, 유독 한국에서 강고하게 탈성장 지향을 가로막는 관념 혹은 의식이 있음을 시사하였다.

탈동조화는, 에너지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전환, 탄소 배출권 거래제 등을 도구로, 경제 성장과 환경오염/자원 소비 사이의 동조화[Coupling]를 끊는 지향성을 말한다. 이러한 지향성은 녹색 성장이라는 말에 의해 대변되는 녹색 자본주의에 동원되기도 한다. 녹색 자본주의는 생태위기를 기술 발전으로 우회할 수 있다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체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탈동조화가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으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기술 발전에 따른 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 감당할 수 없는 소비 증가를 유발하며, 생산과 소비가 수반하는 쓰레기 혹은 찌꺼기를 인류가 감당할 수 없게 되리라는 예측과도 연관되어 나온다. 탈성장(Degrowth) 운동이 이러한 예측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홍덕화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적게 소유해도 풍요로운, 성장 없는 번영을 모색하는 탈성장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탈성장을 몽상으로 치부하는 목소리는 더 크다. 그렇다 보니, ‘녹색성장’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산업을 육성해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만큼 달콤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녹색 자본주의에 기대하는 이들은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앞세워 탈동조화[decupling]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부분적이라는 반론에 맞선다. 그리고 기술 혁신과 시장에 대한 낙관주의에서 길을 찾는다.”9
이 말 속에서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라는 말이 눈에 뜨인다. 여기에 주목하면서 홍덕화의 글을 다시 읽으면,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탈성장을 몽상으로 규정짓는 근거가 되고, 부작용이 충분히 검토된 바 없는 기술 혁신과 시장에 대한 낙관주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주장을 담은 글로 보일 수 있다.
본말(本末)·효(孝)·시무(時務)와 성장 열망
또한 홍덕화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발 더 나아가면, 한국의 성장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역사적, 제도적 매개를 고려하지 않으면,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에서 성장에 대한 열망이 유난히 고고하게 유지되는 이유를 해명할 길이 다소 묘연해진다.”10
이 글에서 홍덕화는 역사적 제도적 매개를 고려해야 한국에서 성장에 대한 열망이 유난히 고고하게 유지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홍덕화가 말한 역사적 제도적 매개의 한 예로 한국의 전통적 유교 문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유교 문화와 연결할 때, 앞서 제시한 홍덕화의 문장들 속에 담긴 문제의식들을 좀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성장과 탈성장을 둘러싼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복지제도·생태환경·인프라 3자 사이가, 연관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보다는 3자 사이의 충돌을 먼저 상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듯하다. 이는 유교의 본말론(本末論)과 관련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유교 경전 『대학』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至善)에 그침에 있다. 그칠 데를 안 뒤에 정(定)함이 있으니, 정(定)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사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물건에는 본(本)과 말(末)이 있고, 일에는 종(終)과 시(始)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11
보다시피 이 글에는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라는 부분이 있다. 원래 유교에서는 본과 말이 따로 떨어져있는 것일 수 없었다. 유교인들은 본과 말을 식물의 뿌리와 잎에 비유하고 하였다. 양자는 상호의존적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본말이 비유로써 여러 상황에 적용되었고, 그 결과 후대의 유교 문화 속에서는, 연관되어있으면서도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 2항(項)의 가치를 양극적으로 자리매김하는 틀로, 본말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유교 본말론에서 양자 사이의 연관보다는 양자의 양극성과 차별성이 강조되게 되었다. 어떤 연관된 원자들을 볼 때 연관성보다는 원자들의 독립성과 차별성에 더 주목하는 사고관습의 형성 과정은 문화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의 경우는, 유교 본말론이 양자 사이의 연관보다는 양자의 양극성과 차별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성격이 변화하면서, 그것이 일상생활에서의 사고관습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홍덕화는 장기간의 의식화 과정을 통해 성장과 수출을 중시하는 집단적 정서가 고정관념이 된 듯하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유교의 효(孝)를 가지고 설명해볼 수 있다. 유교의 13경 가운데 하나로 존중되는 『효경』에서 공자는 제자인 증자에게 덕의 근본인 ‘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체(身體) 발부(髮膚)는 부모(父母)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毁傷)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처음[시(始시)]이고, 입신(立身)해 도(道)를 행해서 후세(後世)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孝)의 끝[종(終)]이다. 효(孝)는 어버이를 섬김이 시작[시(始)]이고, 임금을 섬김이 중간[중(中)]이고, 입신(立身)[해서 도(道)를 행하는 것]이 끝[종(終)]이다.”12
여기에서, 몸을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말은 유명하기도 하고 쉽게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立身行道 揚名於後世(입신행도 양명어후세)”라는 말 즉 ‘입신양명’은 ‘사회적으로 출세해 이름을 세상에 널리 떨침’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대표적 방법은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합격자와 그의 부모의 이름과 그가 속한 가문이 공문서에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졌다.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의 이름이 공적으로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짐으로써 이름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되고, 이는 ‘불멸’을 의미하였다. 출세는 부모를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최고의 효였다. 이에 따라 과거시험 합격이 중요해졌고 학력이라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는 지금 여기에서도 중시되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한국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시험 결과에 의해 표상되므로 결과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효 문화는 여러 긍정적 유산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가족 이기주의와 함께 결과주의는 효 문화가 남긴 부정적 유산으로 꼽힐 수 있을 듯하다. 바로 이 결과주의가 성장과 수출을 중시하는 집단적 정서의 강화를 부추겼다는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홍덕화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탈성장을 몽상으로 규정짓는 근거가 되고 부작용이 충분히 검토된 바 없는 기술 혁신과 시장에 대한 낙관주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뜻으로 읽히는 글을 써두었는데, 여기에 보이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내세우는 관습은 시무론(時務論)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시무론은 시의(時宜)의 급무(急務)에 먼저 힘쓰기를 권하는 논리라 할 수 있다. 이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행동방침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유교에서 시무론은 15~16세기의 이기론(理氣論)을 기원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이기론을 주리파(主理派) 주기파(主氣派) 두 진영으로 크게 나누기도 하였다. 이 구분에 보이는 주기파의 수양론의 주요 구성 단계 가운데 하나가 교기질(矯氣質) 즉 탁하게 타고난 기질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합리적인 수양론을 구성할 때 필요한 한 단계로 보여서, 한국 유학의 독자성을 이야기할 때에도 중요하게 거론되는 행동방침이었다. 그런데 비평가들 가운데 일부가 이를 원칙을 소홀히 하는 현실수습론(現實收拾論)이라 명명하며 평가절하 하였다. 이러한 평가절하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19세기 조선에서 국가체제의 변화[변법(變法)] 까지 상상력을 넓히지 못하고 조선의 도의문화[동도(東道)]는 고수한 채 서구문물[서기(西器)]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급무(急務)’를 해결함이 상책인 듯 행동하였던 당대의 권력을 향한 비판이었다. 교기질을 창안한 15~16세기의 이론가들과 변법보다는 시무를 상책으로 보았던 19세기의 권력이 21세기에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내세우는 관습을 전면에 내세우는 세력 사이에 정치적 사상적 계승이 이루어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15~19세기의 한국 문화와 정치 속에서 나름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사고관습이 지금 여기의 한국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추론은 가능하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홍덕화가 수출주의와 성장주의를 논한 글의 미덕으로는, 그것들에 대한 대안으로써 탈성장을 부각시킨 것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논의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논리나 고정관념에 대한 생각을 시사한다는 점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그런 논리나 고정관념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흐름들이 뒤섞이며 형성된 전통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수출주의와 성장주의를 한국 유교와 연관시켜 살펴보는 논의는, 한국에서 이른바 수출주의로부터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단계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다.
홍덕화, 「탈성장은 수출주의 너머에 있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기획), 『탈성장을 상상하라: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서울: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23-06-05, 30쪽. 같은 글 「탈성장은 수출주의 너머에 있다 」는 웹진 《생태적지혜》 (2022-11-18 발행)에도 실림. ↩
같은 책, 24~25쪽. ↩
같은 책, 26쪽. ↩
같은 책, 26~27쪽. ↩
같은 책, 23쪽. ↩
같은 책, 23쪽. ↩
같은 책, 22쪽. ↩
같은 책, 21~30쪽. ↩
같은 책, 23쪽. ↩
같은 책, 24쪽. ↩
朱熹[撰], 成百曉[譯註], 『懸吐完譯 大學·中庸集註』, 東洋古典國譯叢書 3, 서울: 傳統文化硏究會, 1991, 23~24쪽, 『大學』 經1章: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知止而后에 有定하니, 定而后能靜하며, 靜而后能安하며, 安而后能慮하며, 慮而后能得이니라.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 ↩
『懸吐完譯 孝經大義』 28쪽, “身體髮膚는 受之父母하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요 立身行道해 揚名於後世해 以顯父母가 孝之終也니라 夫孝는 始於事親이요 中於事君이요 終於立身이니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