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은 수출주의 너머에 있다

최근 탈성장에 관한 논의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마주한 중요한 문제로 기후위기를 꼽지만, 당장 풀어야 할 문제로 넘어오면 경제성장을 가장 우선시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실업, 고용 안정, 소득 등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러한 상황에 탈성장은 어떻게 답해야 할까? 탈성장이 담론 비판, 전환 실험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장주의의 궤적, 제도적 조건을 더 깊이 탐색할 필요가 있다.

탈성장을 이야기하지 않고 체제전환(system change)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기후정의에 입각하여 1.5℃ 이내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선발 산업국가의 경제성장 자체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흘려듣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근 탈성장에 관한 논의가 늘면서 탈성장에 대한 오해도 상당 부분 풀리는 듯하다. 탈성장은 단순히 소비주의에 대한 문화적 비판이 아니며 생산이나 물질 흐름의 일률적인 축소를 뜻하지 않는다. 즉 탈성장사회는 단순히 적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다. 소득과 자산의 공정한 분배, 공적 영역의 확대, 불필요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등 탈성장을 상상하는 길은 열려있다.

그러나 탈성장의 상상력이 현실을 만나면 많은 이들이 멈칫하게 된다. 탈성장 없는 전환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눈 앞의 현실은 탈성장을 어떻게 풀어갈지 막막하게 만든다. 단적인 예로,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마주한 중요한 문제로 기후위기를 꼽지만 당장 풀어야 할 문제로 넘어오면 경제성장을 가장 우선시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실업, 고용 안정, 소득 등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 탈성장은 어떻게 답해야 할까? 적게 소유해도 풍요로운, 성장없는 번영은 강렬한 지지만큼 몽상으로 치부되는 일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녹색성장의 유혹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산업을 육성하여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만큼 달콤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기술 혁신과 시장에 대한 낙관주의에 기초한 녹색 자본주의는 탈동조화(decoupling)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부분적이라는 반론에 맞서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내세운다.

여기서 한 가지 따져볼 문제는 녹색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추상적인 성장주의 비판으로 곧바로 도약하는 것은 아닌지이다. 사실 성장주의 비판이 겨냥하는 곳은 다소 모호하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자본 축적, 확대 재생산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장 지향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곳을 출발점으로 하면 성장주의 비판은 자본주의 비판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성장을 GDP와 같은 경제 지표로 가시화하고 이를 핵심적인 정책 목표로 삼은 것은 20세기 들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 주목하면, 성장주의 비판을 자본주의의 특정 국면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면, 한국의 성장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역사적, 제도적 매개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에서 성장에 대한 열망이 유난히 공고하게 유지되는 이유를 해명할 길이 다소 묘연해진다. 더불어 사회운동으로서 탈성장이 다른 사회운동과 마주치며 전환 정치를 펼쳐가는 조건과 공간을 탐색하는 문제가 남는다. 탈성장이 담론 비판, 전환 실험을 넘어서기 위해 성장주의의 궤적, 제도적 조건을 더 깊이 탐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성장이 체제전환을 모색한다면 수출주의와 연동된 생활보장체제는 우회할 수 없는 쟁점이다. 
사진출처 : Sascha Hormel
탈성장이 체제전환을 모색한다면 수출주의와 연동된 생활보장체제는 우회할 수 없는 쟁점이다.
사진출처 : Sascha Hormel

그렇다면 출발점은 어디일까? 생태주의적 비판은 생산과 함께 생산조건, 재생산의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를 위해 복지제도 안팎의 요소들과 더불어 생태환경적 조건, 관련 필수재를 제공하는 인프라를 한데 묶어 생활보장체제라 이름 붙여보자. 성장주의 비판이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라면, 생활보장체제는 탈성장이 발디딜 곳을 찾을 때 우회할 수 없는 쟁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성장주의가 공고화된 배경을 추적하는 것 또한 여기서 출발한다.

수출 주도 성장과 재생산의 저렴화

수출주의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국내 소비보다 수출에 의존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해외 수요가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만큼 수출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기술경쟁력이 낮은 상황에서 출구는 생산과 재생산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한국의 수출 주도 성장모델이 재생산의 저렴화 압력을 강하게 받는 이유다.

재생산의 저렴화는 노동, 돌봄, 복지, 인프라 등 다방면에서 추진되었다. 익숙한 이야기부터 하면, 저렴한 노동(장시간 저임금 노동)은 한국의 수출을 떠받쳐왔다. 임금상승은 수출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낮추는 것으로 간주되어 지속적으로 억제되었다. 서구와 달리 임금상승을 통한 내수 확대는 선택지에서 배제되었다. 대신 수출을 통해 고성장을 유지하고 고용기회를 늘리는 방식으로 임금상승 억제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뜨렸다.

또한 정부는 돌봄, 복지 제공을 가족과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 비용 지출을 줄이고 수출을 위한 생산적 투자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공적 복지 지출을 억제하는 대신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험을 선별적으로 도입,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길을 걸었다. 선별적 (저)복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가족과 개인은 분투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사적 자산 축적 경쟁이 가열되었다.

환경운동이 오랜 시간 씨름해온 개발사업 역시 저렴한 인프라의 시각에서 재조명할 수 있다. 주요 자원을 수입에 의존했던 만큼 한국은 천연자원을 저렴하게 추출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 수 없었다. 대신 한국 정부는 에너지, 물, 운송 등 인프라 비용을 가능한 낮추는 방식으로 수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 개발공기업만큼 신속하게 인프라를 구축하고 가격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유용한 수단도 없었다. 복지대체수단의 시각에서 토건사업을 다시 보는 것도 유용하다. 토건사업은 단순히 지역정치의 동원 수단이 아니라 인프라 투자를 통해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나아가 저렴한 인프라는 인프라 이용 접근성을 높이고 비용 부담을 줄여 그 자체로 복지대체의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낮은 세금과 재정 지출 제한은 지속적으로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사회복지정책보다 일회적 지출의 성격이 큰 토건사업에 대한 선호를 높였다. 사적 자산 축적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토건사업이 부동산 개발이익을 늘리는 계기였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탈성장 = 생활보장체제의 재구축?

탈성장은 대안적인 생활보장체제를 구축하는 실천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때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사진출처 : Max Böhme
탈성장은 대안적인 생활보장체제를 구축하는 실천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때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사진출처 : Max Böhme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저렴한 노동, 선별적 (저)복지, 저렴한 인프라는 일상생활을 지탱해주는 생활보장체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생활보장체제의 근간은 흔들리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불안정 고용이 늘고 생활보장의 안정성이 흔들렸지만 대안적 복지체제로의 이행은 일어나지는 않았다. 2000년대 이후 몇몇 산업의 수출 대기업은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쇠락해갔다. 고수출-고성장-고투자-고용창출의 순환 고리는 깨졌고, 산업 및 기업 간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었다. 고용-임금의 양극화가 심화되었음은 물론이다. 경제위기가 심화한 만큼 복지정책이 확대되었지만 역진적 선별성은 해소되지 않았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는 고용이 안정적이고 급여 수준이 높은 정규직 임금노동자에게 유리했고,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성장주의의 신화가 깨지지 않는 단서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데올로기로서 한국의 성장주의는 총량적인 성장 지표와 성장 기반으로서 수출을 매우 중시한다. 수출 주도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 실적과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증가는 상징 정치의 수단으로 폭넓게 활용되었다. 1990년 후반부터 신자유주의화가 본격화하면서 성장주의가 약속한 미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출이 늘고 경제성장이 지속되었지만 고성장-저복지 교환을 통해 사회재생산을 유지하는 것은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대안적인 생활보장체제는 싹을 틔우지 못했다.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았고 사적 자산 축적과 가족주의에 기반해 생활보장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층의 범위는 제한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댈 곳은 익숙한 길인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이었다. 그렇게 2000년대 이후에도 경제성장률, 국민소득은 단골 선거공약으로 등장했고, 수출경쟁력 강화, (새로운) 수출 산업육성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집착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토건사업을 통한 건설경기 활성화와 고용창출에 대한 기대, 그리고 대규모 국책 사업 추진 역시 반복되었다. 토건사업을 통한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 효과는 단기적이었지만, 사회서비스 확대와 달리 정부 재정의 지속적인 확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저렴한 인프라의 문제를 풀기 위한 가격 현실화가 마주한 벽도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저렴한 인프라에 대한 수출 기업의 요구가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렴한 인프라가 갖는 복지대체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탈성장이 체제전환을 모색한다면 수출주의와 연동된 생활보장체제는 우회할 수 없는 쟁점이다. 녹색 일자리 창출을 표방하지만 탄소중립・녹색성장의 실상은 수출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수출 산업, 수출 대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에 가깝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정의로운 전환과 일자리 보장이 수사로 남고 석탄화력발전 퇴출이 유예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사회적 반발을 이유로 저렴한 인프라의 문제를 우회하고 경기 활성화와 지역 불균등발전 해소를 내건 대규모 토건사업이 반복되는 것 또한 연관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수출주의에서 벗어난 생활보장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는 한 전환 정책이 선별적인 녹색성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달리 말하면, 탈성장은 대안적인 생활보장체제를 구축하는 실천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때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탈성장은 발 딛고 서있는 조건을 면밀하게 파헤치면서 새로운 길을 내려는 움직임들과 더 넓게 어우러질 때, 예시적 실천을 넘어 체제전환으로 가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김도균. 2019. 「발전국가와 복지대체수단의 발달: 한국과 일본 비교 연구」 『경제와사회』 124: 357-383.
  • 박찬종. 2021. 「포스트 세계화 시대 한국의 수출주의 성장체제: 복지체제에의 함의」 『사회와이론』 39: 265-324.
  • 지주형. 2021. 「한국의 성장주의: 기원, 궤적, 구조」 『인문논총』 56: 193-229.

필자가 포럼 〈생명자유공동체〉에서 발표한 「수출주의 성장체제와 선별적 녹색성장의 공고화」에 담긴 단상의 일부가 이 글에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성장주의, 수출주의, 복지체제에 관한 조금 더 자세한 논의는 아래의 글을 우선 참고하길 바란다.

홍덕화

사회생태적 위기의 배경을 추적하며, 어딘가 있을 전환의 길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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