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 읽고 덕질하는 건 처음
새해 첫날, 티모시 모튼의 연하장을 받았다. 첨단 기술을 사용해 따뜻하고 깊이 있는 가벼움을 지닌 선배 버전을 부탁했다. 덕질하는 아이돌에게 답장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Happy Hyper-New Year’라고 쓴 것은 이 원고를 쓰며 사진을 올리다 발견했다. 당연히 Happy Happy~ 일 줄 알았다. 오타인가 하고 보니 ‘Hyperobject’의 변주다)1

몇 년 전 『생태적 삶』(2023)을 읽고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모를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의 실체를 찾아보고 싶어 모튼의 책들을 읽었다. 한국어로 출판된 책은 거의 다 산 것 같다. (거의 다 읽었다고 쓰고 싶지만 사실이 아니므로 못 씀) 어렵고 어둡다가 명랑해졌다가 깊고 넓어졌다가 종잡을 수 없어 읽다만 책도 있지만 모튼과는 친해질 것 같다. 친해지고 싶다. 어쩌면 이미…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 하는(다른 출판사도 같이) 프로젝트에서 모튼 글에 대해 쓰고 싶다고 손은 번쩍 들어 놓고 손 놓고 있어서 새해를 맞아 더는 미룰 수 없다. 몇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12월이 가기 전에 대청소를 하며 본격 준비를 하고 모튼의 연하장으로 스스로에게 시작을 알렸다. 모튼의 책 가운데 「The Ecological Thought」를 읽어가는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 왜 한국어로 번역도 안 된 이 책을 골랐냐면 서문의 첫 문장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생태적 사유는 완전 쉽다?
“The ecological crisis we face is so obvious that it become easy-for some, strangely or frighteningly easy-to join the dots and see that everything is interconnected. This is the ecological thought.”2
우리가 직면한 생태 위기는 너무나 명백해서 – 기이하게도 혹은 무섭게도 쉽게 – 연관성을 쉽게 파악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생태적 사유이다.
티모시 모턴, 『The Ecological Thought』, 2010, p.1
처음 읽은 날의 기록:
서문의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고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어 읽게 되며 생각에 빠져든다. 말그대로 ‘생태적 사유’를 사유하며 자꾸만 질문이 생겼다. 그러다 문득 이런 과정 자체가 모튼이 말하는 ‘얽혀 있는 생태적 사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유는 나의 것이 아니다. 철학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니 모튼의 경험과 사유가 나의 경험과 사유와 만나 만들어낸 비인간 존재가 아닐까.
다시 읽은 날의 기록:
서문의 첫 문장만으로도 두근두근거린다. 모튼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전부가 아닐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글이 될 것 같다. 너무나 분명해서 낯설거나 무섭게 쉽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감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을 감각하는 생태적 사유를 배우고 싶다.
조약돌 하나
「생태적 사유」를 읽는 것은 길 없는 숲에 조약돌을 놓아 어두운 밤에 돌아올 길을 찾아오게 하는 것 같다. 숲에서 마주치게 될 미지의 존재와 즐겁게 만나길 기대하며 반짝이는 조약돌을 발견해보려 한다. 첫 번째 조약돌은 ‘생태적 사유’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이다.
* 모튼의 연하장에 낯선 개념들이 나오는 이유는 지난 해 마지막 날 스토아 철학책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대하여」를 읽으며 세네카 버전의 연하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철학과 현대의 철학이 어떻게 서로 만날지도 탐색해보고싶다.
Hyperobject(초객체): 초객체는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매우 거대한 사물이다. 우리는 한 번에 그것의 단편 하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초객체는 인간의 시간 위상과 같다가 다르다가 한다. 우리 자신도 초객체 안에 있으므로, 초객체는 결국 만물을 “물들이는” 것이다(나는 이 현상을 점착성이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모든 비닐봉지를 상상해 보자. 모든 비닐봉지. 그 비닐봉지 무더기는 초객체이다. 시간과 공간에 거대하게 분포된 개물(entity)이다. 그래서 한 번에 그것의 작은 단편에밖에 접근할 수 없다. 티모시 모튼, 『생태적 삶』, 김태한 역, 서울: 앨피, 2023, p. 157. ↩
Timothy Morton, The Ecological Though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0, p.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