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철학하기 – 티머시 모튼의 『생태적 삶』을 읽고

우연히 티머시 모튼의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생각하던 것이 조금은 뚜렷해짐을 느낀다. ‘우리는 생태적으로 살 필요가 없다. 이미 생태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생태적 삶』 p.269) 그러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살면 된다는 게 아니라 ‘생태적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로 이해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생태실천을 생태철학이라 잘 못 쓴 글은 이 책과 만날 인연을 예견한 듯. 그림 by 이진혁 작가
생태실천을 생태철학이라 잘 못 쓴 글은 이 책과 만날 인연을 예견한 듯. 그림 by 이진혁 작가

두동은 자연이 좋은데 난개발이 되지 않고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면 좋겠다. 앞으로는 자연에서 사람들이 쉬고 놀며 편안함을 얻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면 좋겠다. 그러려면 생태철학이나 생명평화같은 철학이 있어야할 텐데 두동에 맞는 건 뭔지 잘 모르다. 같이 공부하면서 찾아보자.

마을활동가, 시골공학자, 건축디자이너, 예술가 네 명이 모였다. 개인 주제를 정해 공부해가면서 1주일에 하나씩 사진과 짧은 소감을 공유하고 몇 달 뒤 우리의 방향성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프로젝트팀의 이름은 ‘재미있는 생태실천 파이팅!’의 앞글자를 따서 ‘재생화’이다.

나의 주제는 ‘시골에서 자연 즐기기’이다. 시골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매일 마을산책을 하고 시골풍경과 마을사람들을 만나며 시골사람처럼 살았는데 요즘은 주위를 둘러볼 새 없이 바쁜 도시인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 잃어가는 시골감성을 되살리고 싶어서 (시골에서) 자연 즐기기라고 주제를 정했다. 대외적으로는 시골에서에 ( )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 )가 있어서 시골이든 도심이든 어디에서나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바람이다.

생태적 삶

 열무씨 뿌리기 2023.6.5. 사진제공 : 김진희
열무씨 뿌리기 2023.6.5. 사진제공 : 김진희

(시골에서) 자연 즐기기 첫 번째 숙제로 뭘 하지? 할 건 많지만 딱 떠오르는 게 없어 고민하는데 현관 입구에 두었던 열무씨가 보인다. 열무비빔밥 해먹게 열무씨를 뿌려야지. 어디 뿌리지? 많이 뿌리지 말고 조금만 해야지. 땅부터 고르고, 호미랑 낫 챙기자. 흙 튀니까 앞치마도 입고, 물 줘야 되니 물통도 찾고 바빠진다.

호미로 땅을 파서 풀을 뽑는데 자그마한 돌이 꽤 많다. 공기놀이하기 좋은 돌이네. 흙 묻은 채로 해도 되지만 그래도 씻어둬야지. 하며 대충 씻는다. 세찬 물살에 ‘돌돌돌’ 돌이 굴러간다. ‘아! 그래서 돌!이구나’하며 혼자 웃고 수돗가 돌웅덩이 가장자리에 올려둔다. 어릴 때 자갈을 많이 주워 한 무더기 쌓아 놓고 ‘많은 공기’했던 생각이 나 잠시 그 시절 추억에 잠긴다.

열무씨 뿌렸고 힘들었지만 열무비빔밥 먹을 생각에 기대가 된다고 SNS에 사진과 소감을 공유했더니 댓글이 달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생태적 삶이라는 것이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행위는 아니겠지요? 문득 생태적 삶이라는 문구가 생각이 나서 투박하게 글을 적어 봅니다.

열무의 꿈이 지금 자라고 있겠네요.

7월 긴 장마가 온다는데 열무에게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열무 파이팅!

생태적 삶이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행위’일까? 농사는 신석기시대부터인데 원시시대에 들어가나? 수렵과 채집하던 때가 원시시대일까? 그럼 원시시대는 구석기 시대인가? 나는 호미를 썼으니 철기시대? 근데 ‘생태적 삶’이라는 말은 참 좋네. 검색해볼까? 하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본다. 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 앞표지에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핫한 철학자’, ‘티머시 모튼의 생태철학 특강’, 뒤표지에는 ‘폭로와 설교, 죄책감 없는 생태철학 입문’, ‘술술 읽히는 최고 난이도의 월드클래스 그루브’, ‘놀랍고 기이하다. 그리고 짧다. 그냥 읽으라. 녹는다.’라고 쓰여 있다. 목차를 훑어보니 술술 읽힐 것 같지는 않지만 관심이 간다.

살다살다 철학자에 입덕할 줄은

요즘은 유튜브 세상이니 또 검색해본다. 강의 영상이 꽤 많다. 짧은 영상을 클릭한다. 아저씨 철학자의 영어 강의이다. 다른 영상도 클릭한다. 간간이 단어만 알아듣고 전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지만 파키스탄 사람들과 줌으로 강의와 질의 응답한 영상을 보니 흔히 생각하는 철학자와 모습이 다르다. 말을 할 때 표정과 손짓이 많고 무늬가 있는(나염옷 즐기시는 듯) 화려한 옷(내 기준)을 입고 있다. 철학자라고 하면 딱딱한 표정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서점에 책이 있을까 검색해본다. 울산에 1권 있다. 생태적 삶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나 궁금해서 다음날 서점으로 달려갔다.

생태에 마음 쓰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마음 쓰일 수 있다. 생태 관련 책은 안 읽는다고? 그렇다면 이 책이야말로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

이해할 만하다. 생태 책은 그 자체로 혼란스러운 마구잡이 정보투기인 데다, 그조차도 우리가 막상 접할 때쯤이면 이미 낡아 버린 것이 된다. 생태 책의 정보들은 우리의 정수리를 때려서 기분 나쁘게 한다. 충격적 사실을 외치면서 우리 멱살을 틀어잡고 흔든다. 『생태적 삶』 p.11

서문의 시작 부분이 마음에 든다. 마을에서 기후위기 공부하는 동아리를 시작했던 이유가 기후위기관련 정보는 많고 위기감은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와닿지는 않고 미래를 생각하면 막연히 불안하고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보여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유사사실(factoid)이 없다. 유사사실은 우리가 그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사실fact이다. 즉 우리는 그 사실이 특정 방식으로 채색되거나 양념이 첨가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이 사실인 체하고 허풍을 떤다는 것을 알고 있다. (p.17)

이 부분부터 어려워져서 서문이 몇 페이지까지인지 확인한다. p.11~51. 서문 왜 이렇게 길지?하고 생각하며 계속 읽는데 다음 구절을 만났다.

이 책 『생태적 삶』은 생태 지식을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그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내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저 아는 것”은 사실 그저 아는 것이 아닌 듯하다. (p.21)

여기서부터 책에 빠져들어 간다. 왜 빠져들었는지 아느냐면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상 깊은 구절마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한번 더 읽어야지. 다시 읽을 때도 그 구절이 좋으면 필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아는 것≠ 그저 아는 것 = 모르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문장을 읽으면 ‘그저 아는 것’도 사물을 체험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 아는 것 아니면 모르는 것이라고 어설프게 아는 척한 생각이 와장창 박살났다.

마을에서 철학하기

서문만 읽어야지 했는데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100페이지 훨씬 넘게 읽으며 포스트잇을 마구 붙이고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건 입덕의 예감이다. 마지막 장 ‘결론 아닌 결론’의 내용이 궁금해 미리 읽어본다.

우리는 이미 다른 공생적 존재들과 얽혀 있는 공생적 존재이다. 생태적 의식과 행동의 문제점은 그것이 지독히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기를 마시고 있고, 세균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미생물체는 웅웅거리고 있으며, 진화는 배경에서 조용히 전개되고 있다.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고, 구름이 머리 위로 흘러간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라.

우리는 생태적으로 살 필요가 없다. 이미 생태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p.269)

티머시 모튼 저 『생태적 삶』(앨피 2023년)
티머시 모튼 저 『생태적 삶』(앨피 2023년)

와우! 이건 내가 하고 있는 거잖아. 새가 지저귀고 구름이 머리 위로 흘러가는 걸 보고 있는 것. (시골에서) 자연 즐기기. 왜 마음속으로 ( )를 치고 싶었는지 알았다. 모튼 선생님이 우리는 이미 생태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다시 앞으로 가서 읽던 데부터 읽는다.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이 있으니 조금만 읽어야지.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마을에서 살며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을 말로 표현해준 철학자를 그것도 동시대 철학자를 만나다니 두근두근 한다. 이런 때는 독후감이 아니라 책을 다 못 읽더라도 독중감을 써야 한다. 다음에는 열무비빔밥을 먹으며 ‘티머시 모튼의 책을 읽고 나서’라는 독후감을 쓸 것 같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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