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1페이지- 종이 한 장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Ecology seems earthy, pedestrian.
생태학은 세련되지 못하고 평범해 보인다.
“Introduction: Critical Thinking”, The Ecological Thought, p.1
「서문: 비판적 사고」, 『생태적 사유』, 1쪽
처음 읽은 날의 기록:
earthy: 저속한, 흙 같은, 흙내 나는, 세련되지 못한, 현실(실제)적인, pedestrian: 보행의, 도보의, 평범한

모두 흙, 땅과 관련된 단어인데 ‘평범한, 일상적인, 재미없는, 시시한’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땅을 밟는 일이 늘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의 일상은 비범하고 비일상적이고 재미있고 시시하지 않아졌을까? 형용사에 대한 생각은 주관적이다. 현재와 과거 중 어느 시점에서 볼지, 누가 볼지에 따라 달라진다. 시골에 살고 있는 나도 맨땅을 밟거나 (도로라도) 걸어 다니는 일은 잘 없다. 마당에서 몇 발짝 걷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흙냄새라면 공기 중에 섞인 농도가 도시보다 많을 것 같다.
다시 읽은 날의 기록:
늘 보는 것, 늘 하는 것, 늘 있는 것은 당연히 늘 있을까?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만 있다.
또다시 읽은 날의 기록:
‘생태학은 흙내가 풀풀 나는 길을 걸어 다닐 것 같다’라고 날 것의 느낌으로 해석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 평범하게 안 평범한 걸 생각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본다. 책이나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위인(위인전집, 대하 드라마), 역경을 극복한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 광적인 열정으로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 폭군으로 군림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통치자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나처럼 평범하게 살지 않을 것 같다.
교과서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일화―어찌나 꼿꼿한 성격이었던지 어릴 때 세수할 때조차 세숫대야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를 읽을 때, 내가 이랬으면 엄마가 당장 ‘“쑤그리라”하며 등짝을 한 대 쳤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단재 선생이 커서 무슨 위대한 일을 했다는 걸 선생님이 설명해 주었을 때도, ‘머리를 안 숙이고 세수하면 (그때가 겨울이었나보다) 소매를 걷어도 내복에 물이 다 묻을 텐데, 찝찝할 텐데? 내복 내릴 때 물기 때문에 잘 안 내려올 텐데 어떻게 했을까?’라고 평범한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평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 평범한 이야기
얼마 전 〈Train Dreams〉 Train Dreams: 2025년 미국 영화, 감독 클린트 벤틀리, 원작 데니스 존슨(2011) 이라는 영화를 보며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인생의 사랑과 행복과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고 느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소설이나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거의 없는데 뭔가 변했다. 어디에서 언제였을까? 2012년 울산 시내에서 울주군 두동면 비조마을로 귀촌해 마을 할머니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을 알아가며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조금씩 물들어갔다. 마을공동체 공모사업 활동을 열심히 하고 마을회관에서 집으로 걸어오던 어느 날, 어릴 때 저기 보이는 산으로 소를 몰고 풀 먹이러 갔다는 목사님 댁을 지나 아픈 몸을 돌보느라 동의보감까지 읽으며 약초로 엑기스를 만드는 부천댁을 지나, 우리집을 당신 아버지가 지었다고 알려준 본동댁을 지나오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진짜 삶의 고수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수록 평범하고도 안 평범하다. 의욕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하수가 아닐까. 바로 나처럼.
평범함의 연금술- 나쁜 일을 축복으로 바꾸는 스토아 철학
이웃의 찐 고수님들이 행동으로, 마음 씀씀이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천 년 전의 철학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책에서 과거의 선생님과 만나고 마을에서 현재의 선생님을 만나며 평범하게 산다.

루킬리우스여, 세계가 섭리로 운용된다고 할 때 선한 이들에게 어떻게 저토록 많은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당신은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섭리가 우주를 지배하고 신이 우리를 돌본다는 점을 증명하는 가운데 답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신들과, 가장 선한 사람들을 가장 선하게 대하는 신들과 화해시키고자 합니다. 자연도, 좋은 것들이 좋은 것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들과 신들 사이에는 덕에 기초한 우정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은 생길 수 없습니다. (중략) 인내함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때, 용기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강력한지가 드러납니다. 선한 사람은 이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으며,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회피해서는 안 되고, 운명을 불평해서도 안 되며, 일어나는 모든 일을 좋게 받아들이고, 이를 좋은 것으로 바꿔야 함을 아십시오. 중요한 것은 견디는 대상이 아니라, 견디는 방식입니다.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 ‘제1권 섭리에 관하여’에서 발췌
조약돌 셋
평범함이 반짝이는 조약돌로 다가왔다.
추신.
이렇게 끝나면 괴물은 어쩌냐고?
왜 이러실까? 방금 평범함으로 강력하게 무장했음!
엄청난 괴물~ 나와 봐.
나랑 평범하게 놀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