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바쁜 가짜 노동의 세상 – 『가짜 노동』 을 읽고

『가짜 노동』을 쓴 저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노동에 따른 생산성의 증가는 1990년대를 정점으로 막을 내리고 그 이후로는 현대인들은 바쁜 일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산성은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모순된 결과의 원인으로 저자는 ‘가짜 노동’을 언급한다. 가짜 노동이란 그냥 텅 빈 노동이 아니며, ‘바쁜척하는 헛짓거리 노동’, ‘노동과 유사한 활동’, ‘무의미한 업무를 포함하는 쓸모없는 노동’ 등이라 설명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며 모두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회사에서는 회의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국내 및 해외 출장 등으로 직장인들은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이처럼 모두가 바쁘게 살아온 만큼,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졌는가?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르네스 포그 옌센 저, 『가짜 노동』 (자음과모음, 2022)

덴마크의 인류학자 및 철학자인 저자는 오랜 기간 노동, 정치 등 사회 문제에 관한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조사에 의하면 노동에 따른 생산성의 증가는 1990년대를 정점으로 막을 내리고 그 이후로는 현대인들은 바쁜 일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산성은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모순된 결과의 원인으로 저자는 ‘가짜 노동’을 언급한다. 가짜 노동이란 그냥 텅 빈 노동이 아니며, 바쁜 척 하는 헛짓거리 노동, 노동과 유사한 활동, 무의미한 업무를 포함하는 쓸모없는 노동 등을 말한다.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인 케인즈,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사업가인 헨리 포드 모두 미래에는 훨씬 적게 일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석기시대부터 인류는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서 고된 노동을 했다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며, 이와는 달리 석기시대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충분했다고 인류학자인 마셜 살린스는 말했다. 그렇다면 노동에 대한 신화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16세기부터 유럽에서 일어난 칼뱅주의, 퀘이커파 등 독실한 개신교 분파주의자들이 대거 공장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이들이 노동 조직화를 주도하면서 게으름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면서 노동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노동에 대한 인식의 역사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 발달의 혜택에 힘입어 과거보다도 노동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퇴근 후에 여가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직장인의 존재감 유지에 있다고 말한다. 즉 현대 사회는 여가 시간이 충분하면 무능한 자라고 낙인찍기 때문에 직장에서 바쁜 척을 해야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노동 시간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눈에 보이는 노동인 생산직은 생산 기술의 발달로 점점 줄어드는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리직에서는 자신들의 존재감 부각을 위하여 생산성과는 무관한 과잉 노동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짜 노동이 발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가짜 노동이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화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가짜 노동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많은 관리자와 관료제를 없애는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조직을 복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책임 회피를 위하여 각종 ‘규정’을 만들기 위한 회의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 회피용으로 만드는 규정, 그러한 규정을 만들기 위한 회의 등은 모두가 가짜 노동에 해당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얀토끼는 “늦었어! 늦었어!”를 연발하며 늘 바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 출처 : John Tenniel

이제는 과거처럼 노동하지 않아도 기술 발달의 혜택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저자는 이제부터라도 노동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짜 노동에서 진짜 노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가사 노동, 노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등이야말로 진짜 노동이며, 사무실에 자행되고 있는 가짜 노동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본다. 이처럼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진짜 노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저자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편적 기본 소득’의 도입을 제안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의 상황도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근면하게 노동하는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이제는 남은 삶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지점에 우리는 도달해 있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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