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비를 책임 있게 하려고, 모든 소비에 11가지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작업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매달 목표 점수를 설정하고, 월말 결산 시 총점이 목표에 미달하면 -1점당 한 시간의 봉사형벌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봉사형벌이 페널티의 성격을 잃어버렸다. 삶은 다시 편한 소비 방식으로 기울었고, 무분별한 소비가 반복되면서 매달 목표 점수에 미달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쌓인 봉사형벌은 무려 8,472점, 즉 8,472시간이다. 이제는 이 시간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기 위해, 봉사형벌의 과정을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먼저 ‘봉사형벌’의 성격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봉사 뒤에 형벌이 붙을 수 있을까? 초기에는 ‘내 이익 없이 타인을 이롭게 하는 활동’인 봉사와, ‘강제적으로 타에 본보기가 되는 행위’인 형벌을 결합하면 흥미로운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이름을 만들었다. 이후 봉사자 카드를 발급받아 공식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고, 무작정 형광 조끼를 입고 산에 올라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칭찬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벌을 받는 사람이 칭찬받는다는 것은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 찝찝함 때문에, 혹은 귀찮음 때문에 2022년 8월 이후로 봉사형벌을 중단했다. 이제는 이 개념을 다시 정리해, 지속 가능한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
한동안 ‘나의 이익을 어떻게 배제해야 하는가’를 기준으로 봉사형벌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것은 핵심이 아니었다. 봉사활동 역시 완전히 무이익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봉사자는 그 행위를 통해 만족을 얻고 사회에 도움이 된다. 또한 죄수가 죄에 따른 벌을 받는 것 역시 타에 본보기가 되며 사회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봉사가 아니다. 자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봉사형벌이 성립하려면 다음 조건이 필요하다. 나의 피해가 타에 본보기가 되며 나아가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행위.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용과 피해의 구분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이 어떤 목적을 위해 감수하는 시간과 노력이라면, 피해는 외부요인 때문에 강제적 손해를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몇 십 가지 피해상황을 정하고 무작위적으로 나에게 부여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타자를 이롭게 한다면 봉사형벌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기획으로 ai님께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여쭤보았다.
침묵의 필기사 (소통의 제약)
• 피해: 하루 동안 일절 말을 하지 않는 ‘묵언’ 상태를 유지합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소통 능력을 일시적으로 박탈당하는 형벌입니다.
• 봉사: 모든 의사소통을 필담으로 진행하며, 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소 전하지 못한 응원이나 세밀한 관찰이 담긴 짧은 글귀를 적어 전달합니다.
낮은 곳의 청소부 (신체적 제약)
• 피해: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는 등 신체적으로 낮고 불편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특정 구역(예: 보도블록 틈새, 하수구 근처)을 정합니다.
• 봉사: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가장 지저분하고 외진 공공의 사각지대를 정밀하게 청소하고 닦아내어, 타인에게 정결한 공간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온도의 희생 (안락의 제약)
• 피해: 계절에 상관없이 가장 쾌적한 온도(냉난방)를 포기합니다. 신체적 안락함을 박탈당하는 형벌입니다.
• 봉사: 절약된 에너지 비용을 환경 단체에 기부하거나, 그 불편한 온도를 견디며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시원한 물이나 따뜻한 음료를 준비해 나눕니다.

이런 활동 수십 가지를 ai님께서 뚝딱 만들어 주셨다. 꽤 그럴싸해서 ‘제약과 봉사’ 100가지를 만들어서 매일 아침 추첨을 통해 나에게 무작위성을 부여한다면 봉사형벌이 가능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도 인위적이면서 인공지능적인 느낌이 들어 약간 역겨울 정도였다. 그래서 일단 집 뒤편 산에 올라가 쓰레기를 줍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4월 27일, 점심을 먹고 집 뒤편 산에 올라가 쓰레기를 주웠다. 산책로에는 특히 담배꽁초와 유리조각이 많았다. 담배꽁초를 주우며 내가 혐오하는, 아무 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의 뒤처리를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형벌’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이 벌인 일을 대가 없이 바로잡으며 심적인 피해를 받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타에 본보기가 되는 일. 이것이 봉사와 형벌이 결합한 형태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에 맞는 활동 몇 가지를 정해서 매일 해야만 하는 강제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 담배꽁초 및 쓰레기 줍기
– 길바닥 가래침 물 뿌리고 청소하기
– 눌어붙은 껌 제거하기
– 통행을 방해하는 방치된 킥보드·자전거 정리하기
– 강아지 배설물 처리하기
– 토사물 치우기
이런 활동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매일 동네를 돌며 확인하고 담배꽁초 몇 개, 배설물 몇 건 등의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 또한 중요하다. 주말 저녁의 술집 거리나 강남의 클럽 거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환경에 일부러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 8,472시간은 353일이다. 앞으로의 1년이 어떤 모습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