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발랄한 표정을 위하여 _ 『감정노동』을 읽고

한 때 개인의 사적행위로 인식되던 감정은 오늘날 사람을 대하는 직종에서 노동으로 판매된다. 한때 사적으로 협상하던 감정법칙이나 표현법칙은 오늘날 회사의 서비스 표준화부서가 정한다. 사적인 감정 체계는 상업적 논리에 종속되었고, 그 논리에 따라 변화했다.

언젠가 혼자 방안에서 지난 앨범들을 들추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중학생 이후로 내 표정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해서 놀랐다.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웃는 표정.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이 많은 사진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표정으로 담겨있는지. 적어도 중학교 입학 전의 사진에서는 생기발랄하고, 터질 듯이 활짝 웃거나 시무룩하거나 장난기 가득하고 때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포만감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데… 몹시 식상하고 서글프기도 해서 그 이후로 한동안 사진 찍을 때 절대 안 웃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 굳어갔을까. 풍성했던 나의 표정들은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동안 왜 그렇게 사라져갔을까. 물론, 나만 그런 거야 아니겠지.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그리고 표정을 지킬 수 있을까? 나의 표정과 목소리를 찾아가고, 나의 스타일을 찾으면서도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도를 해나가야 할까? by Jessica Wilson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nx3N6enkY_k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그리고 표정을 지킬 수 있을까? 나의 표정과 목소리를 찾아가고, 나의 스타일을 찾으면서도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도를 해나가야 할까?
사진 출처 : Jessica Wilson

앨리 러셀 혹실드 교수의 『감정노동』(2009, 이매진)을 읽었다.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교환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변형되는지, 그래서 그 감정은 어떻게 외부로 표현되며 한편으로 나의 감정과 표현이 내 것이 아닌 걸로 변형되어 나 자신조차 그것에서 멀어지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준다. 저자가 학자여서 그런지 문장은 어렵고 개념이 쉽게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또한 학자라서 철저한 배경지식과 근거를 보여주며 신뢰와 풍성함을 제공한다. 우리의 단조로운 표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감정노동 1부- 개인적인 삶

감정법칙에 따르면, 결혼식날은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신부가 우울하다면 그 신부는 감정노동으로 즐거운 감정을 이끌어내어 결국 감정법칙에 맞출 수 있다. 이것은 신부가 스스로 만든 개인적인 감정법칙이지만, 한편으로는 결혼문화라는 공공의 관념이기도 하다.

감정노동과 감정법칙, 개인 사이의 교환이 함께 일어날 때 개인의 감정 체계가 형성된다.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교환은 보통 비슷비슷하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상대방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양쪽 모두 받아들인다. 사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감정적 보상을 포함해서, 보상에 관한 발언권이 더 세다는 것을 뜻한다.

개인적인 삶에서 우리는 교환의 비율에 관해 자유롭게 의문을 품을 수 있고, 새로운 교환을 시도하는 것도 자유다. 우리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떠날 수도 있다. 많은 우정과 결혼이 불평등 때문에 끝이 났다. 그렇지만 노동이라는 공적 세계에서는,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분노는 공상 속에 가두어 놓은 채 불평등한 교환을 받아들이고, 무시하고 화내는 고객을 감내하는 것이 개인의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왕인 곳에서 불평등한 교환은 정상적인 일이며, 고객은 처음부터 감정과 표현에 관한 다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노동 2부- 공적 삶의 영역

회사라는 환경에서 하는 표면행위나 내면 행위는 개인의 표정과 감정이 자원의 속성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 자원은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자원은 시장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용되며,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서 사용된다. – 감정관리의 주체가 개인으로부터 회사 또는 시장으로 바뀐다.

책에서는 미 최대의 항공사 델타항공을 예로 들고 있다. 델타 항공의 목표는 이익을 내는 것이다. 항공시장에서는 서비스가 주력 경쟁분야가 됐다. 승객은 항공서비스를 떠올릴 때, 대부분 가장 먼저 승무원을 떠올린다. 미소와 친절을 장착하고 무슨 요구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승무원들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거나 또는 더 심한 경우 승객과 맞부딪히게 되면, 여성 승무원들은 놀랄 만큼의 분노를 되돌려 받게 된다.

승객은 항공서비스를 떠올릴 때, 대부분 가장 먼저 승무원을 떠올린다. 미소와 친절을 장착하고 무슨 요구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by Kelly Lacy  출처 : www.pexels.com/ko-kr/photo/3119978/
승객은 항공서비스를 떠올릴 때, 대부분 가장 먼저 승무원을 떠올린다. 미소와 친절을 장착하고 무슨 요구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 출처 : Kelly Lacy

남성이 종사하는 직업 중 감정노동을 포함하는 직업은 4분의 1정도일 뿐이고,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에서는 그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여성은 남성보다 무례하고 퉁명스러운 언사나 서비스, 항공사나 항공업계 전반에 걸친 장광설에 더 많이 노출되는 편이다.

한때 감정을 관리하기 위한 사적 행위이던 것은 오늘날 사람을 대하는 직종에서 노동으로 판매된다. 한 때 사적으로 협상하던 감정법칙이나 표현법칙은 오늘날 회사의 서비스 표준화부서가 정한다. 사적인 감정 체계는 상업적 논리에 종속되었고, 그 논리에 따라 변화했다.

왜 우리는 꾸밈없고, 관리되지 않은 감정에 더 많은 가치를 둘까? 가망이 없으면서도 왜 우리는 감정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존하는 것을, ‘영원히 야생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몽상하듯 상상하는 걸까? …… 관리되지 않는 감정이 점차 희소해지기 때문이라는 게 답일 것이다.

지금의 감정이 솔직한 내 감정일까, 진심일까 하고 의심할 때가 가끔 있다. 한 대 얻어맞으면 당연히 화가 날 법한데 오히려 화내는 내가 경박한 거 아닐까 뭔가 몰라서 그런 거 아닐까 의심하고, 이러다 보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지나가버린다. 그런 뒤에는 한없는 자책과 분노가 반복되고 결국 혼란에 빠져 버린다. 더 이상 내 감정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내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다는 얘기는 어쩌면 감정노동이 힘든 것일 수 있고, 이것은 자기 스타일과 세상 속에서 버텨내는 방식이 쉽게 조화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그리고 표정을 지킬 수 있을까. 나의 표정과 목소리를 찾아가고, 나의 스타일을 찾으면서도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도를 해나가야 할까.

관계와 시장 속에 묻혀 지워지고 있는 나를 찾아내고 일으켜, 적절한 분리를 통해 스스로를 잘 다독이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연대를 통해 개인의 감정을 억압하는 조직구조와 시장에 맞서 사람 중심의 문화를 지켜내는 것이 또한 중요하겠다. 그리하여 주눅 들어 있던 우리의 감정이 기지개를 켜고 다시 마음껏 펼쳐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속에서 다채롭게 피어날 우리의 표정을 위해.

진형탁

자유의지에 기반한 민주적인 생활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래서 협동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협동운동에 관여했지만 한 번도 잘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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