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향유는 길고, 사적 소유는 짧다? – 마르셀 모스 『증여론』 독후기

이 글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대한 독후기이다. 이 책에서 모스는, 인류는 오랫동안 공적 향유를 중심으로 사회를 유지하여왔고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사회가 재편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예로부터 인류는 대체로 행복을 중시하여왔고, 행복해지기 위하여 아낌없이 베푸는 문화 즉 증여의 경제 또한 오래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증여’라는 행위의 기원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언(緖言)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는 1925년에 『증여론[Essai sur le don]』(2011, 한길사)을 출간하였다.

마르셀 모스 저, 『증여론[Essai sur le don]』(2011, 한길사)
마르셀 모스 저, 『증여론[Essai sur le don]』(2011, 한길사)

모스는 『증여론』에서, 인류는 대체로 행복을 중시하여왔고, 행복해지기 위하여 아낌없이 베푸는 문화 즉 증여의 경제 또한 오래 지속되어왔다고 주장했다. 인류는 오랫동안 공적 향유(享有)를 중심으로 사회를 유지하여왔고, 사적 소유(所有)를 중심으로 사회가 재편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 모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익을 중시한 것은 최근 특정 지역에서 나타난 현상이고, 그것을 밑받침하는 개인주의와 계약에 의하여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자본제 역시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 또한 모스가 이 책에서 주장한 것이다. 모스는 자본제가 유일한 경제체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있다.

  • 서문-증여, 특히 선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에 관해서
  • 제1장 교환된 증여와 답례의 의무(폴리네시아)
  • 제2장 증여 체계의 발전-후한 인심, 명예, 돈
  • 제3장 고대의 법과 경제에서 증여 원칙들의 잔재
  • 제4장 결론

연구 소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북서부 아메리카, 벵골 만의 안다만 제도 등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행하였던 민족지적 조사 연구의 결과들. (2) 아주 오래 전의 로마법, 고전 힌두법, 게르만법. 이러한 소재들을 섬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소재들 속에서 공통되게 증여가 보인다는 것이 모스의 논증이다. 이러한 논증을 통하여 모스는 인류가 어느 곳에서나 아주 오래전부터 증여를 하여왔으며, 증여라는 관계방식이 느슨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모스는 자신의 주장을, 〈서문〉에서는 상징적으로 시사하고, 〈제4장〉에서는 상세하게 논술했다. 그러므로 시간이 없는 독자는 〈서문〉의 상징성에 짧게 몰입한 후 건너뛰어, 건너뛴 부분에 대하여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제4장〉을 읽어나가도 될 듯하다. 민족지적 연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제1장〉과 〈제2장〉을 별도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아도 될 것이다.

이 독후기는 【서언(緖言)】, 【발췌(拔萃) 설명】, 【비평】, 【발제(發題)】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발췌(拔萃) 설명

서문증여, 특히 선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에 관해서

이 책의 〈서문〉의 소제목은 “증여, 특히 선물에 답례해야하는 의무에 관해서”이다. 〈서문〉은 ‘제사(題詞)’ [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련되는 노래.시 따위로 적은 글], ‘연구 계획’, ‘적용된 방법’, ‘급부: 증여와 포틀래치’ 등 4개의 소단원들로 구성되어있다.

모스는 ‘제사’에 북유럽의 고대시 에다(Edda) 가운데 하나인 하바말(Havamál)로부터 8개의 절을 인용하여 놓았다. 그 절들 가운데 두 절은 다음과 같다.

“41
무기와 옷을 주면
친구들은 서로 즐거워할 것임에 틀림없다.
누구나 그것을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서로 선물에 답례하는 자들은
만일 그 물건들이 잘 쓰인다면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가 된다.

42
누구나 친구에 대해서는
친구로 있지 않으면 안 되며,
또 선물에 대해서는
선물로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웃음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답하고,
거짓말에 대해서는
속임수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45쪽]

책 제목 속의 단어 ‘동[don]’이 곧 책의 주제를 보여준 것이라고 보자. 그 불어 단어의 뜻은 사전적으로 증여, 선물, 타고난 재능 등이다. 그러니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이 책의 주제는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제사 속 시의 두 절은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온갖 것을 꼼꼼하게 계산하면서도 그 계산을 숨기고 주고받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인용을 보면 증여라는 말과는 부합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는 시를 인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모스는 시의 41절, 42절, 44절, 45절, 46절, 48절을 인용한 후, 마지막으로 145절을 인용하였다.

“145
(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제물로 바치기보다는
기도를(요구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주어진 선물은 항상 답례의 선물을 기대한다.
제물에 너무 많은 돈을 쓰기보다는
제물을 바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46쪽]

이 145절의 내용을 보면, 모스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이미 신성보다는 세속의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치열한 타산(打算)을 바탕으로 하는 주고받기를 실천하려 하였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책을 읽어나갈 것을 독자에게 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 계획’에서 모스는 주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스칸디나비아 문명과 그밖의 많은 문명에서는 교환과 계약이 선물형태로 행해지는데, 이 선물은 이론상으로는 자발적이지만 실제로는 의무적으로 주어지거나 답례받는다.” [47쪽]

스칸디나비아 문명을 예로 들며 선물형태 즉 증여는 특정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행하여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르셀 모스(1872년~1950년)
미르셀 모스(1872년~1950년)

“말하자면 겉으로는 자유롭고 무상(無償)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옮긴이) 강제적이며 타산적(打算的)인 이 급부의 자발적인 성격만을 고찰하고자 한다.” [47~48쪽]

급부[prestation]. 사전적으로는 ‘줌’ 혹은 ‘주는 행위’이지만 위 인용문을 보면 이 단어는 이 책에서 ‘주고받음’ 혹은 ‘나눔’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미개(未開) 혹은 태고 유형의 사회에서 선물을 받았을 경우, 의무적으로 답례를 하게 하는 법이나 이해관계의 규칙은 무엇인가? 받은 물건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수증자(受贈者)는 답례를 하는 것인가?” [48쪽]

“나는 이 도덕과 경제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또 말하자면 암암리에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에, 또한 나는 우리 사회가 세워져 있는 인간반석(人間盤石)의 하나 [저자가 생각하는 도덕적 경제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성을 말하는 듯]의 하나를 여기에서 발견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현대의 법과 경제의 위기가 제기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약간의 도덕적인 결론을 그것을 통해 추론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것으로 그칠 것이다.” [49쪽]

모스는 “우리 사회” 즉 당대 프랑스 혹은 모스가 의식하고 있는 세계 전체에 도덕이 결여되어 있는데, 자신의 연구를 통하여, 고대세계의 인간에게 있었고 당대의 인간에게도 있는, 도덕적 경제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본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적용된 방법’에서 모스는 한정되고 선택된 지역과 주요한 법전에 한정된, 그러면서도 그것 각각의 일부분을 자신의 의도를 기준으로 편집하지 않고 각각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비교가 자신의 연구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급부 : 증여와 포틀래치’에서 먼저 모스는 원시, 저급(低級), 자연 경제, 자연상태 등의 개념을 사용하지 말 것을 독자에게 권한다. 유사 이래 모든 경제체는 각기 정교한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권한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살펴 본 경제체들에서 이를 전체적인 급부체계(système de prestation totale) [53쪽]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이때 사례가 된 경제체는 포족(胞族 pratrie)의 동맹이었다. 그는 또한 북서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전체적인 급부체계를 특정지어 포틀래치(potlach)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음을 밝힌다. 북미에서 사용되었던 치누크어의 어휘인 ‘포틀래치’는 ‘식사를 제공하다’(nourrir) 또는 ‘소비하다(consommer)’를 뜻한다. [54쪽 참조] 모스는 이 전체적인 급부체계가 끊임없는 축제를 중심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모스는 이 경제체에서 경쟁과 적대의 원리가 모든 관행을 지배하며, 경쟁 상대를 압도하기 위하여 축적한 부를 아낌없이 낭비함으로써 위세를 과시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를 특정하여 투기형(鬪技形)의 전체적인 급부(prestation totale de type agonistique)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55~56쪽 참조] 모스는 “북서부 아메리카와 멜라네시아의 그것과 같이 극심한 경쟁 및 부의 파괴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교환”[57쪽]과 “계약 당사자들이 서로 선물을 가지고 겨루는 더 온건한 경쟁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밖의 교환” [57쪽] 사이에 무척이나 많은 중간형태가 있다고 하면서, “분명히 받은 선물에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커니즘”[58쪽] 달리 말하면 “이 강제의 도덕적・종교적인 이유”[58쪽]가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폴리네시아를 자세히 연구한다면 “어떤 힘이 받는 것에 답례하게 하고 또 일반적으로 실제적인 계약을 이행하게 하는 것인가를 뚜렷이 보게 될 것”[58쪽]이라고 주장하였다.

■ 제1장 교환된 증여와 답례의 의무(폴리네시아)

제1장에서 모스는 사모아섬 사람들, 마오리족, 시베리아 동북부 사람들, 서부 알래스카와 베링해협 아시아 연안의 에스키모인 등의 경제체들에 대한 조사 보고들로부터 전체적 급부체계, 투기형의 전체적 급부체계, 포틀래치에 준하는 현상들을 재구성해내어 보여주었다. 마오리 섬 사람들의 경제체를 재구성하면서 모스는 그들에게는 급부[증여/선물]에 해당하는 타옹가(taonga)가 사람・씨족・토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의 ‘마나’, 즉 주술적이고 종교적이며 영적인 힘의 매개물”이라고 적었다.[65쪽] 이러한 관념은 이후 책 내용 전개에서 다양한 경제체들이 보여주는 급부체계의 설명의 문화적 배경 이해의 주요 조건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는 것 같다. 물(物)을 영(靈)의 매개물이라고 본다면, 물건 속에 영혼이 함께 하는 것이고 계약과 교환의 과정과 결과에도 영은 함께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지금 여기의 계약과 교환에 마오리족의 계약과 교환과 많은 유사점이 있으면서도 유독 물을 영의 매개물로 보는 관점 만 거기에서 빠져있다면, 어떤 사람은 두 계약과 교환의 본질이 유사하다는 점에 더 주목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물을 영의 매개물이라고 보는 관점의 유무에 더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바와 유사한 갈등 양상이 지금도 여러 비교 연구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모스는 두 계약과 교환의 본질이 유사하다는 데 주목하면서도 분석대상이 되고 있는 사례들을 보다 섬세하게 다루기 위하여 ‘마나’[영]을 언급한 것 같다.

■ 제2장 증여 체계의 발전 – 후한 인심, 명예, 돈

제2장에서 모스는 안다만 제도, 누벨 칼레도니아, 트로브리안드 등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관찰 보고들로부터 환대와 교환이라고 집약할 수 있는 정치경제현상을 재구성해낸다. 모스는 일종의 화폐인 바이구아를 소개한다. 그는 바이구아가 원형[쿨라]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하였다. 팔찌인 음왈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일정하게 전해지며, 목걸이인 술라바는 언제나 동쪽에서 서족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넘겨주어야만 하는 의무가 그 경제체들에 있었다고 모스는 설명한다. 그 의무로 인하여 사람들은 접촉 교류하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면 접촉 교류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주문을 외울 때 필요한 매개물로써 바이구아가 역할을 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것이 가치 있거나 아름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모스는 설명하는 것 같다. 결국 바이구아는 지금 여기의 돈과 다를 바 없으면서, 인간들이 서로 환대하게끔 만드는 기능을 더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기능이 앞서 살펴본 ‘마나’에 의하여 밑받침되는 듯 보여서, 충분히 세속화된 독자들에게 모스의 설명이 가지는 설득력이 감소되는 듯하다. 이러한 일련의 설명의 연장선상에서, 모스는 아메리카 원주민 경제체를 예로 들어, 포틀래치가 현상적으로는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주거나 답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답례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단순히 물건을 파괴하는 일일 있다. 생선기름이나 고래기름 등을 완전히 태워버리기도 하고 집과 수천 장의 담요를 태워버리기도 한다. 또 상대방을 압도하여 ‘끽소리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장 비싼 동판을 파괴하기도 하고 물속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뿐 아니라 자기 가족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진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법과 경제 체계에서는 막대한 부가 끊임없이 소비되고 이전된다. 이러한 이전을 – 원한다면 – 교환.교역 또는 판매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교역은 예의와 후함으로 가득 차 있는 귀족적인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이 다른 정신으로, 즉 직접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 행해진다면 그것은 매우 뚜렷한 경멸의 대상이 된다.”[141~144쪽] 만약 이 인용절 특히 마지막 문장이 지나간 시대 특정 지역에서 성행하였고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경제체에 대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설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1925년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작동되고 있는 자본주의를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텍스트 전체의 내용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체제에 관한 암시들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제3장 고대의 법과 증여 원칙들의 잔재

모스는 고대의 법들에서 증여의 잔재들을 찾아 보여주려 하였다. 이러한 작업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1 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
아주 오래 전의 로마법
주해(註解)
그밖의 인도유럽어족의 법
2 고전 힌두법
증여의 이론
3 게르만법; 담보와 증여
켈트법

본격적인 서술에 앞서, 모스는 셈족・그리스민족・로마민족의 역사에서 ‘냉정하고 타산적인 사고방식을 갖지 않는 전단계’가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경제생활의 역사는 아주 짧으며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같다.

“…… 또한 셈족・그리스민족・로마민족의 문명 이래로 우리의 문명은 한편으로는 채무 및 유상급부(有償給付)와 또 한편으로는 증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별은 주요한 문명들의 법에서는 아주 최근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이들 문명은 그처럼 냉정하고 타산적인 사고방식을 갖지 않은 전단계(全段階)를 거친 것이 아닌가? 그들 자신도 사람과 물건이 혼합되는 증여 교환의 이 관습을 행한 적은 없는가?” [196쪽]

“1 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에서 모스는 주로 유럽 학자들의 선행연구들을 인용하면서 ‘아주 오래 전의 로마법’을 논한다. 그는 파밀리아와 페쿠니아를 구분하는데, 파밀리아는 물건 가운데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귀속된 것, 페쿠니아는 상대적으로 파밀리아보다 가족에게 귀속된 정도가 약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집에서 떨어져있는 방목장에 있는 가축은 페쿠니아의 예가 된다.

“파밀리아와 페쿠니아의 구분이 수중에 있는 물건과 수중에 있지 않은 물건의 구분과 일치하는가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다.” [204쪽]

“로마의 원로법학자들은 우리가 침시아족과 콰키우틀족에서 확인한 것과 똑같은 구분을 ‘가족’의 영속적이며 기본적인 재산(아직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말해지고 있는 바와 같은)과 넘겨주는 물건, 즉 음식물, 멀리 떨어져 있는 초원의 가축, 금속류(金屬類), 돈-요컨대 이것들은 친권(親權)이 해체되지 않은 아들들에 의해서도 거래될 수 있었다-사이에 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4쪽]

“더욱이 레스가 원래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불과한 무기물, 즉 오늘날과 같이 된 거래의 단순한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204쪽]

선물은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뿐 아니라 자기 가족의 사회적 지위도 높여준다. by Elaine Casap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qgHGDbbSNm8
선물은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뿐 아니라 자기 가족의 사회적 지위도 높여준다.
사진 출처 : Elaine Casap

모스는 사람과의 거리에 따른 이러한 물건의 구분이 선명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구분 보다는 물건이 단순한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렇다고 물건에 영이 깃들어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적잖이 경계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레스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204~205쪽]

한 명의 특정한 ‘소유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한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겠는가? 일단 어떤 물건을 만든 사람 혹은 점유하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바로’ 물건을 건네받은 사람일 것이다. 모스는 그 물건이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져도 물건은 그것을 건네받은 사람을 어느 정도는 즐겁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듯하다.

“또 한편으로, 물건에는 언제나 가족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는 인장(印章)이나 표시가 있었다.” [205쪽] “고대 이탈리아어에서는 주어서 기쁘게 하는 물건(res)과 부족해서 기대하는 물건(egmo)을 의미하는 두 개의 대응하는 대어(對語)가 있었을 것이다.” [205쪽 주 19)]

그래서인지 그는 아래와 같이 ‘주어서 기쁘게 하는 물건’과 ‘부족해서 기대하는 물건’이 고대에는 구분되었으리라는 의견도 제시한다.

“물건은 여전히 처음 소유자의 ‘가족’에게 구속받고(연결되어-옮긴이) 있으며, 또한 그 물건은 현재의 소유자가 계약의 이행을 통해서, 말하자면 물건, 가격 또는 봉사의 대가로 인도하는 것을 통해서-이러한 인도에 따라서 이번에는 처음 소유자가 구속받지만-해방될 때까지 그(현재의 소유자-옮긴이)를 구속하는 것이다.

모스는 소유자가 물건을 구속할 뿐만 아니라 물건이 소유자를 구속한다는 것이 아주 오래전 로마법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추측컨대 모스는 물건을 만들거나 한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쓰다보면 물건이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한편 사람은 물건을 자기 자신과 딱 부러지게 떨어져있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고 아주 오래전 로마 사람들은 생각하였을 것임이 아주 오래전 로마법에 반영되어있다고 보는 듯하다. 앞서 인용한 모스의 서술들은 분업에 의하여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제에서 생산자인 노동자와 생산물에 대하여 가지는 상념 흔히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는 느낌을 완전히 뒤집은 느낌을 연상케 한다. 그 느낌은, 물건을 만들거나 구하면 그것을 길들여 적절히 사용하고, 그것을 넘겨받은 사람 또한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그것을 만들거나 먼저 길들여준 사람의 힘씀을 생각해 줄 때 가지게 되는 느낌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겠다.

‘주해(註解)’에서 모스의 논증은 한층 어떤 한 방향으로 심화된다.

“물건은 그 자신 속에 영원한 권위(æterna auctoriras)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그 물건이 도난당할 때에도 영원히 그 존재를 느끼게 한다.”[206쪽]

모스는 물건에 힘이 내재한다고 보았다. 그것을 영원한 권위라고 평가한 것이다. 로마의 법이 도난을 다룰 때에도 그 힘이 고려되었다고 모스는 주장한다.

“증여가 행해지려면 먼저 물건이나 봉사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며, 아울러 그 물건이나 봉사가 (증여의-옮긴이) 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로마법에서는 나중에 출현했지만 우리의 법에서는 언제나 존재하는 은혜를 모르는 것(ingratitude)을 원인으로 하는 증여의 철회가 일반적인-또는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법제도라는 것은 명백하다.” [207쪽]

모스는 물건에 힘이 내재한다는 관념이 현대의 우리의 법뿐만 아니라 로마법에도 고려되었고, 당대의 법에는 ‘은혜를 모르는 것’을 원인으로 하는 증여의 철회가 일반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예시하는 듯하다.

“단순한 인도는 결코 소유권 이전을 일으키지 않는다”(nunquam nuda traditio transfert dominium) [207쪽]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로마법에 입각하여서도, 당대의 법에 입각하여서도, 인정받지 못하였다고 모스는 확신한 듯하다. 그러나 모스에 따르면, 이미 로마시대에도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중시하지 않는 정서와 풍토가 생겨났다.

“물건의 소유권은 인도나 취득 시효에 의해 이전되지, 합의에 의해서는 이전되지 않는다”(Traditionibus et usucapionibus dominia, non pactis transferuntur) [207쪽]

모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기원전 298년)에 이르러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고려하는 합의보다 ‘인도나 취득 시효’가 중시된 것을 예로 들었다.

이와 같이 모스는, 이미 고대로부터 물건에 내재하는 힘에 대한 고려가 약화되는 추세가 시작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물건으로부터 그것에 내재하는 힘을 배제할 수는 없음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 물건에 의해 소유된 자 ……. 물건의 인도에 의해서 야기된 소송에 연루된 자 …… 죄인 및 책임이 있는 자 ……” [210쪽]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계약・넥숨・소송(actio)의 기원인 ‘준(準) 범죄’(quasi-delit)의 모든 이론이 좀더 명료해진다. 단순히 물건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수령자는 인도인(引渡人, tradens)에 대해서 준유죄[準有罪, 책임을 지는 자(damnatus)], 구속된 자(nexus), 동괴(銅塊)에 얽매인 자(ære obæratus), 정신적인 열등감, 도덕적인 불평등[주인(magister)]과 종복(minister)의 관계]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201~211쪽]

물건을 만들려면 시간도 걸리고 다양한 노동력도 필요하다. 그러니 이때 모스가 이야기하는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굳이 애니미즘에서의 정령(精靈)과 1:1 대응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까닭은 없어 보인다. 모스의 관점은 어떤 만들어진 물건을 그것의 제작에 관련된 노동자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는 관점은 당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지금 여기 2020년 한국을 들여다보면 어떠한가? 만들어진 물건과 그것을 만든 노동자의 관계가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가? 그때 거기 1920년대 파리를 상상하여보면 어떠한가? 만들어진 물건과 그것을 만든 노동자의 관계가 충분히 고려되고 있었을까? 그때 거기에서 모스가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거듭 강조한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을까? 모스는 대단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을 것 같다. 나아가 모스는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남달리 강조한 듯하다. 모스는, 로마법에 대한 해설들에 의거하여, 물건을 만들거나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건네거나 누군가로부터 건네받으려는 사람을 애초에 ‘물건에 의해 소유된 자’이면서 언제든지 ‘물건의 인도에 의해서 야기된 소송에 연루된 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제나 ‘죄인 및 책임이 있는 자’일 수밖에 없다고 정리한다. 여기에서는 책임에 주목하여야 할 것 같다. 이 개념은 모스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로마법에 대한 해설들에서 이미 사용된 것들이다. 모스는 이것을 인용하였고, 이러한 인용을 바탕으로 물건은 그것을 만든 사람 혹은 그것을 사용하고 길들인 사람과 무관하지 않으니 그것을 주고받는 것이 단순히 사람이 배제된 계약일 수는 없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모스는 로마법에 이어 ‘그밖의 인도유럽어족의 법’도 검토한다. 이러한 검토의 작업 중에 모스는 반어적으로 보이는 서술을 통하여, 1920년대를 풍미하던 경제체제 이전에, 물건에 내재하는 힘을 존중하는 경제체제가 장기간 지속되었음을 우회적으로 주장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로마민족과 그리스민족은-아마도 북방・서방의 셈족을 따라서-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의 구별을 생각해냈고, 판매를 증여 및 교환과 분리시켰으며, 도덕적인 의무와 계약을 격리시켰고, 특히 의례・법・(경제적인-옮긴이)이익 사이의 차이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실로 크고 존경할 만한 혁명을 통해 이 낡은 도덕 전체와 증여의 경제, 즉 너무나 모험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고 사치스러우며 사람에 대한 배려 때문에 거북스럽고 아울러 시장・거래・생산의 발전, 요컨대 시대와는 양립되지 않는 반(反)경제적인 증여의 경제를 넘어섰다.” [215~217쪽]

아주 오래 전부터 로마민족과 그리스민족은 증여의 경제를 영위하고 있었는데, ‘북방・서방의 셈족’의 영향을 받은 후 증여의 경제는 시대와는 양립되지 않는 반(反)경제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스는 셈족이 어떤 집단인지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았다. 추측하여보자면 셈족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집단의 문화 가운데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발한 상업활동을 하면서 형성된 ‘세속적’ 세계관을 염두에 둔 것 같다.

“2 고전 힌두법”에서 모스는 불교 성립 전개 이전 인도에서 규범의 기능을 하였던 마누법전을 거듭 인용하면서 브라만 신분의 사람들이 증여의 경제를 영위하였음을 보여주려 한다. ‘증여의 이론’에서 모스는 윤회까지 포함된 브라만 신분들의 생활의 구조 속에서 증여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물건을 주면, 그 보답은 이 세상에서도 또 저 세상에서도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그 선물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증여자에게 자동적으로 가져다준다. 선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생하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 증여자는 더 늘어난 똑같은 것을 되찾는다. 음식물을 주면 아 세상에서는 그 음식물이 증여자에게 되돌아오는데, 그것은 또한 저 세상에서의 그의 음식물이기도 하며,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계속되는 윤회과정에서의 음식물도 된다.” [217~224쪽]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성질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 ‘음식물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나 음식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브라만교가 자선과 환대에 대해서 제시한, 유물론적인 동시에 유심론적인 해석이다. 부(富)는 주어지기 위해서 모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받을 브라만이 없다면, “부자들의 재산도 헛된 것일 것이다.”” [226~227쪽]

모스는 남들과 나누지 않는 음식은 헛된 것이라고 한다. 모스는 브라만들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윤회의 과정에서도 계속되어야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브라만의 암소, 그것은 독(毒), 즉 독사이다.” [228쪽]

브라만이 귀한 것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빈틈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의무의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때는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귀한 것 예컨대 암소는 독이고 독사라고 했다고 모스는 예시한 것이다. 이와 같다면 브라만의 의무 수행은 대단히 어려워서 비현실적인 것이기도 하다. 의무 수행의 기준이 되는 원리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은 브라만들에게 버거운 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브라만들이 당대의 지배 신분이었다는 현실과 맞물릴 때 그 원리원칙은 형해화하고 의무 수행은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브라만들도 원리원칙대로 하기 어렵거나 하기 싫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의무 수행을 겉치레로만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모스도 일이 그렇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두 아주 코믹하다. 이 카스트 전체는 증여로 살아가면서도 그 증여를 거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뒤 이 카스트는 조금 타협해서, 자발적으로 제공된 것만 받는다. 그 다음에는 이 카스트는 누구한테서, 어떤 경우에, 어떤 물건을 받아도 좋은가를 나타내는 자세한 목록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기근의 경우에는 분명히 가벼운 속죄의식을 치르면 아무것이나 받아도 괜찮게 되었다.” [232~233쪽]

증여로 살아가면서도 그 증여를 거부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수십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산 사대부의 묘지명에 그가 초가삼간에서 거친 음식을 기꺼워하며 수양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고 적어 넣는 모습을 떠올린다. 브라만이나 유교적 사회의 지주 겸 사대부가 자발적으로 제공된 것만 받는다고 공언하면 제공자는 그들 앞에서 비자발적이면서도 자발적이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공물의 목록을 만드는 것도, 공물을 주고받을 때의 의식절차를 정하는 것도 결국 그들이 하는 것이면서도 마치 그런 기준을 정하는 무관한 것처럼 처신하는 상황은 역사 속 여러 정치체제에서 반복되었을 것이다. 결국 “2 고전 힌두법”에서 모스는 브라만 신분의 사람들이 증여의 경제를 영위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그 법이 보여주는 세계에 증여의 경제가 언제든지 형해화될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보여주었다. 증여의 경제의 보편적 가능성을 역사 속에서 입증하는 것이 모스의 목표였다면, 그것의 형해화가 쉽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마도 증여의 경제의 유지에 권력을 가진 행위자들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듯하다.

모스는 고전 힌두법이라는 확실한 증거에 입각하여 불교 성립 전개 이전 인도에서 증여의 경제가 행하여졌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으므로 불교를 논의에서 배제하였다. 그가 불교에 관하여 좀더 깊은 이해를 가졌거나 논의를 확장할 생각이 있었다면, 모스는 고전 힌두법뿐만 아니라 불교 경전으로부터도 유사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을 듯싶다. 왜냐하면 모스가 고대 힌두법에서 증여의 경제를 도출할 때 중시하였던 종교관념 혹은 행동지침과 유사한 것들이 불교에서 업, 보시, 윤회 등의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교의 중심을 이루는 종교 관념과 행동지침은 불교 발생 전개 이전 힌두 종교 형성의 한 축인 페르샤 문화에서도 일부 확인되는 것이어서, 증여의 경제는 불교 나아가 페르샤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모스는 증여의 경제가 보편적으로 행하여진 증거를 역사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계기를 고대 힌두법 연구를 통하여 마련해 두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3 게르만법; 담보와 증여”에서 모스는, 당대까지 전하고 있던 독일의 민속을 예로 들면서, 게르만 세계에서 증여의 경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르만 문명에도 역시 오랫동안 시장이 없었다. 게르만 문명은 본질적으로 봉건적이며 농민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것에서는 가격・구입・판매라는 관념도, 또 그러한 용어들도 요즈음에 와서야 생겨난 듯하다. 훨씬 이전에 게르만 문명은 포틀래치의 모든 체계, 특히 증여의 체계를 대단히 발전시켰다. 부족 내부의 씨족들, 씨족 내부의 미분화한 대가족들 그리고 부족들, 추장들, 심지어는 왕들 서로가 그들 자신의 집단의 폐쇄적인 영역 밖에서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생활한 범위-이것은 무척이나 컸었다-내에서, 그들은 증여와 협동의 형태로 담보・인질・향연 및 가능한 한 많은 선물을 통해 교류하고 서로 도우며 동맹을 맺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하바말에서 따온 선물에 관한 연도(連禱)를 보았다. 이 에다의 아름다운 묘사 이외에,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더 지적한다.” [236~237쪽]

모스는 게르만 역사에 오랫동안 시장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게르만 역사 속에서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평가되었던 담보・인질・향연・선물 등을 증여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세 가지 예를 더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한다.

“ …… 교환, 제공, 이 제공의 수령(受領) 및 답례의 의무를 구성하는 Angebinde[생일 또는 명명일(命名日)의 선물-옮긴이], 즉 의무를 지우는 유대의 힘에 관한 재치있는 언급 ……” [238쪽]

“게다가 얼마 전까지도 존속한 한 제도가 있는데, 그것은 확실히 독일 촌락의 도덕과 경제적인 관습 속에 아직도 남아있으며 더욱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가벤(Gaben)이며, 힌두의 아다남(adanam)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세례식・성찬식・결혼식 때 초대받은 사람들-마을사람 전체인 경우도 종종 있다-은 예를 들면 결혼피로연 후나 전날-또는 그 다음날(Guldentag)-일반적으로 결혼식 비용을 능가하는 가격의 결혼선물을 준다. 독일의 어떤 지방에서는 이 가벤이 결혼식날 아침 신부에게 주어지는 신부의 지참금이 되기도 하며, 게다가 모르겐가베(Morgengabe)라고 불리고 있다.” [239쪽]

첫 번째 그는 당대의 독일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결혼식 풍습에 주목한다. 모스는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과한 결혼선물인 가벤(Gaben)을 힌두의 ‘아다남(adanam)’이라는 것과 동일시한다. 모스는 그것들이 ‘의무를 지우는 유대의 힘’을 가회 속에서 유지시켜주는 풍습이라고 보는 듯하다.

“두 번째 제도도 똑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게르만의 모든 종류의 계약은 담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어의 가주(gage: 담보・저당・인질・보증・급료-옮긴이)라는 말은 게르만어의 바디움(wadium)에서 유래한다(영어의 Wage, 즉 ‘임금, 전쟁을 하다, 전당잡히다’와 대조해보라).” [240쪽]

두 번째 그는 프랑스어와 게르만어에 각각 가주와 바디움이라는 낱말이 있는데 그것이 증여의 경제를 지탱했던 관행의 하나인 담보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세 번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주어지거나 인도된 물건에 의해 표현되는 위험이 매우 오래된 게르만의 법과 언어에서보다 더 잘 느껴지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gift’라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 즉 이 말이 한편으로는 선물(don) 또 한편으로는 독(poiso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불길한 증여, 독(毒)으로 변하는 선물이나 재산이라는 이 주제는 게르만의 민간전승에서는 기본적인 것이다. ‘라인의 황금’(중세 독일의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 나온다-옮긴이)은 그것을 획득하는 자를 파멸로 이끌었으며,‘하겐의 보배’(이것도 「니벨룽겐의 노래」에 나온다-옮긴이)는 그것을 마시는 영웅에게 재앙을 가져다 주었다.” [243~244쪽]

세 번째 그는 ‘라인의 황금’은 그것을 획득하는 자를 파멸로 이끌었으며, ‘하겐의 보배’는 그것을 마시는 영웅에게 재앙을 가져다주었다는 전승을 인용하면서, 게르만의 전통 서사가 인도 고대법보다 더 강력하게 증여의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서사는 물건이 독이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논법은 고대 인도법에서 본 바와 유사한 것이다.

“인도유럽어족의 또 하나의 종족도 확실히 이 제도를 알고 있었다.” [245쪽]

‘켈트법’에서 모스는 인도유럽어족의 또 하나의 종족인 켈트족도 증여의 경제를 알고 있었다고, 별다른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주장하였다.

“중국문명은 모든 물건과 원래 소유주 간의 해소(解消)될 수 없는 유대를 인정하고 있다.” [246쪽]

“안남인(安南人)의 관습에서는 선물을 받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247쪽]

‘중국법’에서 모스는 물건과 그 주인 사이의 끈끈한 관계, 선물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 등을 중국문명의 과거와 현재에서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였다.

■ 제4장 결론

〈제4장 결론〉은 다음과 같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1. 도덕적인 결론
  2. 정치사회학적・정치경제학적 결론
  3. 일반사회학적・도덕적 결론

‘1. 도덕적인 결론’에서 모스는 증여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법률 체계가 역사 속에서 확인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씨족간의 전체적인 급부체계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는 체계-개인과 집단이 서로 모든 것을 교환하는 체계-는 우리가 확인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경제・법률 체계를 이룬다. 그것은 증여-교환의 도덕이 출현한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정도의 차이는 있어도-우리 사회가 나아가기를 바라는 유형과 똑같은 것이다.” [258쪽]

일단 그것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씨족사회에서부터 그것은 작동하고 있었다고 모스는 주장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증여-교환의 도덕이 출현한 바탕’을 말한다. 모스는 그러한 바탕이 당대 프랑스 사회 더 나아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경제・법률체계와도 부합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또 의무적으로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틀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260쪽]

모스는 ‘주는 것’ 즉 증여가 인간 본성에 부합되는 것처럼 주장했다. 자발적 의무적으로 주어야한다고 하지만 이때 의무는 틀릴 염려가 없음에 기인하는 의무라는 것이다. by Caleb Lucas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tE9ziE9ULaA
모스는 ‘주는 것’ 즉 증여가 인간 본성에 부합되는 것처럼 주장했다. 자발적 의무적으로 주어야한다고 하지만 이때 의무는 틀릴 염려가 없음에 기인하는 의무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 Caleb Lucas

모스는 ‘주는 것’ 즉 증여가 인간 본성에 부합되는 것처럼 주장했다. 자발적 의무적으로 주어야한다고 하지만 이때 의무는 틀릴 염려가 없음에 기인하는 의무라는 것이다.

‘2. 정치사회학적・정치경제학적 결론’에서 그는 먼저 증여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정서가 인류와 함께 하여왔다고 주장한다.

“씨족 연령집단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별집단은-그들간의 접촉에서 생기는 다양한 관계 때문에-끊임없는 경제적 흥분상태에 있으며, 게다가 이 흥분 자체에는 현실적인 것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도-옮긴이) 그 흥분은 우리의 판매와 구입보다도, 노무의 고용보다도, 또는 증권투기보다도 훨씬 더 활기차다.” [263쪽]

“후한 인심 …… 거부할 권리도, 거부하는 데에 따른 이익도 없었다.” [266쪽]

씨족사회 단계에서부터 이미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의 접촉 또는 관계 때문에 흥분상태에 있었으며, 이것이 이익 추구보다 먼저 그리고 더 강력하게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것이 경제도 활기차게 하는 것임을 시사하였다. 모스는 그 활기로부터 후한 인심이 나오며 그것은 이익과 무관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모스가 그러한 흥분상태를 이익과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이득을 향한 집착과 무관심은 이러한 부의 순환형태와 그것을 따르는 부의 표시물의 원시적인 순환형태를 다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의 순수한 파괴조차도 그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익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대응하지 않는다. 이 위대한 행위조차도 이기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267쪽]

‘이득을 향한 집착’과 ‘무관심’은 반대관계에 놓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모스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순환형태’를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모스는 포틀래치에서 볼 수 있는 ‘부의 순수한 파괴’를 ‘이익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으로 보지 않는다. 모스는 그것이 이기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모스는 이기주의를 나름대로 재정의하려고 한 듯하다.

“준다는 것은 자기의 우월성, 즉 자기가 더 위대하고 더 높으며 주인(magister)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답례하지 않거나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서 받는다는 것은 종속되는 것이고, 손님 또는 하인이 되는 것이며, 작아지는 것이고 더 낮은 지위(minister)로 떨어지는 것이다.” [268쪽]

모스는 사람이 증여를 통하여 위대한 존재 달리 말하자면 주인이 된다고 하였다. 만약 모스가 증여의 경제와 이기주의를 결부시켰고, 동시에 궁극적 이익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기주의의 내용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면, 모스가 생각하는 궁극적 이익은 위대함 혹은 주인됨이라 해야 할 듯하다. 아마도 모스가 이 책을 쓰던 1920년대에 이기주의가 경제를 설명하는 기본 전제였기에 모스가 이기주의를 재정의하면서까지 증여의 경제와 이기주의를 연계시킨 듯하다. 그렇지만 모스는 궁극적으로는 증여의 경제를 이익의 추구와 직결시키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익(intérêt)이라는 말 자체는 최근에 생겨난 것으로서, 그것은 부기용어(簿記用語), 즉 장부에서 징수해야 할 지대(地代) 맞는 편에 기재한 라틴어의 ‘interest’에서 유래한다. 가장 향락주의적인 고대도덕에서도 추구되는 것은 행복과 쾌락이지 물질적인 효용이 아니다. 이득(profit)과 개인(individu)이라는 관념들이 널리 유포되고 원리의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합리주의와 상업주의의 승리가 필요하였다. 개인적인 이익이라는 관념의 승리는 거의 맨드빌(Mandeville, 1967~1733. 영국의 의사이며 풍자작가-옮긴이)과 그의 저서 『벌의 우화』(Fable des Abeilles)가 나타난 다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 이익이라는 말을 라틴어나 그리스어 또는 아랍어로 표현하기는 매우 힘들며, 단지 완곡한 표현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270쪽]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animal économique)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사회이다.” [271쪽]

“인간이 계산기라는 복잡한 기계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71쪽]

모스는 고대의 라틴어 그리스어 아랍어로는 개인적 이익이라는 것을 표현하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고대에 중요했던 것은 이익이 아니라 행복이었다고도 한다. 상업주의가 승리한 후 이익이 중요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익이 사람들에게 중요해진 건 얼마 안 된 현상이라고 모스는 시사한다. 상업주의가 인간을 경제동물 혹은 계산기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모스는 주장한 것이다. 모스는 궁극적 이익을 독자적으로 정의한다.

“가장 좋은 경제조처는 개인적인 욕구의 계산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를 늘리고자 하는 한에서도, 비록 유능한 회계원이나 뛰어난 관리자가 된다 하더라도, 단순한 금융업자와는 다른 존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의 목적만 추구하는 것은 전체의 평화, 전체의 노동과 즐거움의 리듬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그 반작용에 따라-개인 자신에게도 해롭다.” [272쪽]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성실하게 수행한 노동에 의해서 평생 동안 정당하게 보답받는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보다 사람을 더 잘 일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272쪽]

모스는 개인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궁극적으로 이익이 증진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이익의 추구가 평화, 즐거움의 리듬을 해친다면, 그것은 개인의 궁극적 이익 추구에도 반대되는 것이라고 모스는 주장했다.

‘3. 일반사회학적・도덕적 결론’에서 모스는 인류사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증여의 경제는 더더욱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두 집단이 만나는 경우, 그들은 서로 피하거나-경계심을 나타내거나 도전하는 경우에는 싸우거나-아니면 잘 거래할 수밖에 없다.” [280쪽]

언제나 집단들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피하거나 싸울 수 있기 때문에, 거래할 수밖에 없다고 모스는 주장했다. 그리고 거래는 문서로 고착된 정교한 계약으로 완성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모스는 생각한 듯하다.

“축제와 전쟁 간의 불안정한 관계” [280쪽]

모스는 태평양 상의 섬들에 사는 집단들 사이의 일상적이다시피한 전쟁에 주목하였다. 모스는 섬사람들이 언제 무력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사소한 어떤 행동 때문에 유혈충돌이 돌발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소한 행동 덕에 혹은 간단한 의식을 매개로 충돌의 위협이 물거품 꺼지듯 사라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그들이 어제의 심각한 충돌을 오늘 마치 없었던 일처럼 여기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그러다가도 상대방의 사소한 행위를 계기로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판국에 행위자를 이성적인 존재로 상정하고 법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성적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 거의 모든 순간에 충동적이라는 것을 인정한 위에 거래를 통해 순간순간을 넘어가는 것이 이성적인가? 모스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스스로 답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민족은 감정에 이성을 대립시킴으로써, 또 이러한 종류의 돌연한 광기에 대해 평화를 향한 의지를 대항시킴으로써 전쟁・고립・정체를 동맹・증여・교역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모스는 이성과 평화를 향한 의지가 전쟁을 증여로 바꾼다고 하였다. 나의 것을 지키려고 애쓰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과감히 베품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본 듯하다. 모스는 자신이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키려 한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는 사회 그 자체, 그 하위집단과 그 성원이 제공・수용・답례를 행하며 자신들의 관계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한도 내에서 발전해왔다. 교역을 개시하려면 먼저 창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281쪽]

“민중・계급・가족・개인은 부유해질 수는 있지만,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탁의 기사들처럼 공동의 부(富) 주위에 앉을 수 있을 때뿐이다. 선(善)과 행복이 무엇인가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부과된 평화 속에, 공공(公共)을 위한 노동과 개인을 위한 노동이 교대로 일어나는 리듬 속에, 또한 축적된 다음 재분배되는 부 속에 그리고 교육이 가르치는 서로간의 존경과 서로 주고받는 후함 속에 있다.” [282쪽]

증여이건 답례이건 ‘서로 주고받는 후함’ 속에 있다고 모스는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런 태도 내지는 마음가짐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집단 간 개인 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스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이익보다 행복을 우선시해왔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총체적인 행동과 사회생활 전체를 연구할 수 있는가가 이해된다. 또한 어떻게 하면 이러한 구체적인 연구가 풍습의 과학 및 부분적인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결론, 아니 오히려 오늘날 일컬어지고 있는 바와 같은 ‘예의’(civilité)・‘공민정신’(civisme)-옛말을 다시 받아들이면-의 결론에도 이를 수 있는가가 이해된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심미적・도덕적・종교적・경제적인 다양한 동기들과 물질적・인구학적인 여러 요인들을 엿보고 평가하며 비교할 수 있다. 이 다양한 동기와 요인들의 합(合)이 사회의 기초를 이루며 공동생활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 동기와 요인들의 의식적인 관리(管理)가 최고의 기술, 즉 그 말의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의 정치(Politique)이다.”[283쪽]

〈제4장 결론〉의 마지막 문장이다. 모스는 자기가 인간의 총체적인 행동과 사회생활 전체를 연구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니까 경제에 관한 당대의 다른 연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모스는 자기가 행한 바와 같은 방식의 연구는 풍습의 과학 및 부분적인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결론, ‘예의’(civilité)・‘공민정신’(civisme)의 결론 달리 말하자면 예의・공민정신의 정립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모스는 자기가 심미적・도덕적・종교적・경제적인 다양한 동기들과 물질적・인구학적인 여러 요인들을 엿보고 평가하며 비교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모스는 이러한 동기와 요인들의 합(合)이 사회의 기초를 이루며 공동생활을 구성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모스는 이러한 동기와 요인들의 의식적인 관리(管理)가 최고의 기술 즉 그 말의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의 정치(Politique)라고 했다. 모스는 소크라테스적 의미에서의 정치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설명하지는 않았다.

【비평】

* 『증여론』에서 모스가 주장한 것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1920년대 유럽의 경제체제 즉 자본제가 생겨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스만이 이야기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한 것들 가운데 하나였고 나에게는 사고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주장을 접하고 돌아보니 그간 나는 항상 자본제를 고정변수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제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내가 좋아할만한 것인지 싫어할 것 같은 것인지를 가리는 것과 무관하게, 설령 그것이 좋고 옳고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일지라도, 모든 것을 자본제를 전제로 생각하는 것은 인기 연예인 팬클럽 열성회원의 행태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나치게 열성적인 팬클럽 회원은 무조건적으로 특정 인기 연예인을 옹호하고 모방하며 그를 기준으로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평가한다. 그러던 열성회원은 다른 연예인으로 ‘갈아타기’를 하기도 한다던데, 나는 자본제 말고 다른 경제체제를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런 나에 비하여 모스는 너무 쉽게 자본제 대신 증여의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스가 주장한 증여의 경제에 관하여 검토하는 것과 무관하게, 자본제도 언젠가는 사라져갈 수 있는 경제체제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은 의미있는 일인 듯하다.

* 이 책은 모스가 자기가 살고 있던 1920년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는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그렇게 느끼고 나니 책을 읽으면서 불쑥불쑥 1920년대의 세계를 상상해보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모스가 말하여주지 않았는데도, 모스가 살았던 1920년대의 프랑스를 내 마음대로 상상해보게 되었다. 1870년 프러시아와 한 전쟁에서 졌고 1918년 끝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승전국이 되었지만 주 전장이 프랑스였기에 그 직후의 프랑스는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의 식민지에서 착취한 것은 상처 입은 프랑스를 버텨내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 파리를 갈아엎어 세계 문화의 수도 소리를 듣게 하고 다다이즘 슈르레알리즘을 낳고 자라게 하는 도시가 되게 하였다. 모스는 여기에서 극단적 모순을 느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모스는 스쳐가듯 파리와 프랑스의 여타지역을 구분해서 말한다. 미세하지만 이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스는 프랑스 ‘농촌’에는 아직 증여의 경제가 남아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모스가 말하지 않았으나, 세계 문화의 수도는 경제체제에 있어서도 자본제가 가장 심화된 양상에 도달하여 있었을 것이다. 이 또한 극단적 모순 아니었을까? 모스는 프랑스 농촌의 경제체제를 증여의 경제와 결부시켜 이야기하면서 개인 소유 중시의 이익추구와 대비시켰다. 이러한 모스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살았던 1920년대의 프랑스도 상상해 보았지만, 그 시기 세계 전체에 대해서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나아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사회과학적 이론을 만든다는 것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특정 지역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하였을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 모스가 고전 힌두법을 소재로 증여의 경제를 예증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불교를 떠올렸다. 불교는 인도 고대의 정치제도 신분제도 종교문화를 비판하면서 발생 발전한 종교이지만 윤회 업 보시 등의 종교 관념을, 페르샤 등지의 영향을 받은, 고대 인도 문화와 공유하고있는 종교이다. 가장 큰 차이는 불교가 브라만과 같은 신분에서 자유로운 사상체계라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모스는 고전 힌두법을 소재로 삼았으므로 인도 고대 그리고 고전 힌두법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브라마 신분을 거듭 언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불교를 소재로 하였으면 특정 신분과 무관하게 증여의 경제를 더 쉽게 예증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모스가 왜 불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나아가 증여의 경제와 불교를 연관시켜보려는 나의 발상이 적절한 것인지 비판받아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민족지적 연구를 소재로 증여를 예증하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모스가 제1세계 지식인의 처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그가 ‘식민지’ ‘원주민’들을 대상화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지역 지배자의 권력유지를 위한 장치들을 증여의 경제로 분식(粉飾)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모스가 회의의 시선을 보내는 개인주의와 소유의 중시도 나름대로 맥락을 가지고 발생 발전해 온 것이고, 대개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를 억압하던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한 면이 있는데다가, 원시 고대의 문화 중에는 소수의 권력자의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피지배집단이 내면화한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스가 이런 면을 보지 못할 사람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 모스는 식민지 원주민들을 소재로 ‘판타지’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구성한 듯하다. 또한 나는 모스가 살았던 1920년대 프랑스가 식민지 착취를 바탕으로 지탱하고 있음에도 미국 영국 독일 등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허울만 좋은 강대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해 보았다.

* 이 책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거듭 머릿속에 떠올렸다; ‘돌봄’, ‘모심’, ‘살림’, ‘나눔’, ‘베품’, ‘손때 묻은 물건’, ‘물건 만드는 데 들인 정성’, ‘물건에 깃든 사연’, ‘물건 만드느라 흘린 땀’. 이런 단어나 구절 가운데 몇 개는 모스의 책을 번역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었을 듯하다.

발제(發題)

* 모스의 증여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베품에는 역동적이며 밀접한 접촉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 전형이 포틀래치 등 폭발적 소비를 수반하는 잔치인 것 같다. 잔치들은 사람들을 밀접하게 접촉하고 나아가 연대하게 한다. ‘거리두기’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미래에 이 텍스트가 보여준 접촉과 연대는 어떤 식으로 작동할까?

* 쿨라는 수건돌리기와 유사하지만, 수건돌리기에서 빠지는 것보다 쿨라에서 빠지는 것은 천만 배는 어려워 보인다. 모스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경제체가 있다면 거기에서 개인은 어떻게 자리매김될 것인가?

* 모스는 고대 유럽 사회의 증여 풍습이 셈족 문화의 영향으로 단절된 것처럼 여러 차례 서술한다. 사람과 물건의 분리는 셈족 문화가 유럽에 유입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는 서술도 있다. 모스는 이익을 중시하는 풍조가 최근 1~2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대두된 것도 셈족 문화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모스는 셈족과 그 영향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모스가 말하는 셈족은 누구이며 그들이 유럽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