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발턴의 말을 들을 수 있는가?

20세기 말, 스피박은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서발턴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가’를 자문해볼 때다. 21세기 “구글 베이비(Google Baby)” 문제는 스피박의 서발턴 담론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서발턴의 말하기는 지금도 왜곡되고 있으며, 그들은 또 다시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지난해 해외의 대리모 산업에 대한 한 기사를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1 여성 문제를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대리모 산업’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대리모 산업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조용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전무하고 사회적 인식도 낮기 때문에 크게 이슈가 된 적은 별로 없다. 반면 해외에서는 ‘구글 베이비(Google baby)’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대리모 산업이 성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에 따른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QGlAM0iWFM&feature=youtu.be
다큐멘터리 『구글 베이비(Google Baby, 2009)』 유튜브 동영상. 지피 브랜드 프랭크(Zippi Brand Frank), 15세 이상 관람가, 76분, 이스라엘, 미국, 인도

대리모는 다른 사람의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이식 받아 출산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다. 이때 배아는 주로 대리모 의뢰인들의 난자와 정자를 체외 수정한 것이다. 대리모 의뢰인들은 대체로 제 1세계의 난임 부부, 한부모, 동성부부, 혹은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피하려는 여성 등이다. 그리고 대리모들은 대부분 제3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이다. 대리모들은 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대가로 약 7000달러의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인도 내 평범한 임금 근로자의 7~10년치 임금과 맞먹는다. 인도의 대리모가 미국보다 훨씬 더 금액이 저렴해 대리모 산업에도 국제적인 분업이 벌어지고 있다. ‘구글 베이비’는 서구권 출신 부부의 수정란을 제 3국 여성에게 착상시키는, ‘임신 하청’ 구조를 거대 IT 기업의 운영 구조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임신 하청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곳은 바로 인도다. 인도 정부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호객행위를 했고 ‘세계의 아기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리모 산업이 크게 발달했었다. 하지만 생명을 경시한다는 비판과 가난한 여성들을 착취의 구조로 몰아넣는다는 비판을 받던 인도 정부는 2017년 상업적 대리모 산업을 규제하는 법을 시행한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모든 외국인은 인도 내에서 대리모 의뢰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 법이 제정되었을 때 가장 크게 반대했던 사람들이 바로 인도의 대리모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혹은 그렇게 알려졌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정부가 가난을 해결해줄 것이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당사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야할까. 대리모 산업에 종사하는 제3세계 여성들은 스피박이 말하는 서발턴 여성들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 후반,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서발턴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따라서 스피박의 글을 상기하며 구글 베이비 문제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은 말할 수 있는가?”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2은 동명의 에세이3를 통해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서발턴’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본래 안토니오 그람시가 자신의 헤게모니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주창한 것이다. 그람시는 불균등하게 발전된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 속에서 산업화된 북부와 낙후된 남부의 노동자-하층 민중들을 단일한 ‘프롤레타리아트’로 통칭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사용한 용어가 서발턴이다. 그러므로 복합적인 존재로서 서발턴은 통일적인 주체가 되기 어려운 하위주체로,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에 종속하는 주변부의 하층 계급을 의미한다. 스피박은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의 국제 노동 분업 아래 계급 사다리의 가장 맨 아래에 위치한 서발턴들이 침묵을 종용당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서도 제3세계의 여성 노동자들은 더욱 말할 수 없다. 이 여성들은 인종, 민족, 계급, 가부장제 등의 중첩된 억압 속에 놓여있는 젠더화된 서발턴이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책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그린비, 2013)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책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그린비, 2013)

스피박은 역사적으로 서발턴 여성들이 왜 말할 수 없는지, 그들의 말하기가 어떻게 왜곡되고 지워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식민지배 시기의 두 인도 여성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라니 굴라리는 인도의 과부 순사 제도인 사티(sati)와 관련되어 식민 지배 상황 속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형상화되고 기록으로 남았다. 또 다른 사례인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는 정의를 위해 택한 자결이 처녀라는 이유만으로 왜곡되지 않기 위해서 처절하게 자신의 몸에 화행(speech act)을 남겼지만, 끝끝내 왜곡되어 버렸다. 두 사례에서 모두 서발턴 여성들은 이데올로기적 주체에 의해 ‘재현’된다. 이들은 식민지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인들에 의해 혹은 인도 민족주의자들에 의해서, 각각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게 이해되었다.

“백인종 남자가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 주고 있다” VS “여자들이 죽고 싶어했다”

사티 풍습은 힌두 과부가 죽은 남편을 화장할 장작더미에 올라가서 자신을 불태우는 행위다. 과부 희생을 뜻하기도 하는 사티는 산스크리트에서 과부를 관습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식민 초기 영국인들을 이것을 ‘수티’라고 쓰기도 했다. 사티 풍습은 보편적으로 수행된 것, 특정 카스트나 계급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성행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티 풍습의 당사자인 인도 여성들을 해석하는 것은 각기 이해관계에 따라 위의 두 문장으로 양분됐다. 첫 번째 문장은 식민 주체에게 명예로운 백인성을 부여한다. 영국인들이 이 제의를 폐지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준 백인종 남자”의 사례로 여겨져 왔다. 이것에 반대되는 지점에는 “여자들이 죽고 싶어 했다”라는 인도 토착주의 진술이 있다.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들은 여성들이 인도 고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스피박은 양측의 주장 어디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의식에 대한 증언과는 결코 마주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과부-희생 제의에 대한 동인도 회사 기록을 살펴보면 순사한 과부들은 이름조차 괴상하게 잘못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양분된 두 가지 구도는 이중의 억압적 역사를 기원으로 삼아 생산된다. 두 가지 기원 중 한 가지는 1829년 영국이 과부희생을 폐지한 사건 이면에 작동되던 식민지 정책에 감추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힌두 인도의 고전이자 베다적 과거인 『리그베다』와 『다르마사스트라』에 자리잡고 있다. 식민 지배 초기, 영국은 인도의 토착 관습이나 법을 공평하게 대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여성의 보호가 좋은 사회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기표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인도의 제식으로서 용인되고 널리 알려져 있던 관습들을 범죄로 재정의하는 것을 허용했다. 영국인들의 개입 이후 사티는 사적인 영역(가정)에서 공적인 영역(사회/국가)으로 도약하게 된다. 좋은 사회를 확립하려 노력하고 문명화를 도와준다는 제국주의의 이미지는, 여성을 같은 민족에게서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 옹호하는 입장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사티가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고 서구의 영향에 노출됨으로써 인도의 토착민, 민족주의자들은 심리적으로 주변부가 되었다. 그들의 제의 상의 순수함 혹은 전통 문화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사티를 ‘자신들이 규범에 순응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과부희생 풍습의 순수한 종교적 기원을 제시하기 위해, 『리그베다』나 『다르마사스트라』의 사티와 관련된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힌두 전통에서 자살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과부들의 자기-화살(火殺)은 예외적 규칙을 갖는 것처럼 묘사된다. 죽은 배우자를 화장할 장작더미 위에서 수행된 여성의 자살만이 인가된 자기-화살이다. 여성 주체의 인가된 자기-화살은 자발적인 선택 행위라는 찬양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사티 풍습으로의 여성 동원은 ‘민족’의 이름하에 죽는 ‘영웅주의적 자살’로, ‘’의 이름하에 죽는 ‘순교’, 그 외 다른 종류의 자기희생이라는 서사시적 심급의 자리에 위치시키며, 그들의 죽음을 초월적으로 형상화한다. 과부들이 만일 신념에 따라 자유의지로 자기-화살을 선택했다면, 이를테면 ‘행복한’ 사티는 자신의 선택이 전쟁·순교·테러리즘에서처럼 자신이 윤리적인 것을 초월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로, 초월적 존재를 대표하는 죽은 남편과 함께 읽힐 수 없고, 순교자가 될 수도 없고, 전쟁과 함께 주권자나 국가를 대표하기 위한 도취적인 자기-희생 이데올로기에 동원된 사람으로 읽힐 수 없다. 행위 능력은 항상 남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여성은 희생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유의지는 성공적으로 지워진다.

사티 풍습은 젠더에 의해 억압받는 주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생산해낸다. 자기-화살이 여성들의 자유의지라고 강요하는 인도 남성들의 시각과 피해자 여성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영국인들 사이에는 ‘디페랑(differend; 분쟁)의 공간이 발생한다. 영국인들의 사티 폐지, 범죄로의 재코드화는 여전히 여성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부수적인 존재로 위치 짓는다. 반면 토착 식민 엘리트 인도인들은 과부의 자기-희생이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주장하며 민족주의적 낭만화를 시도한다. 또한 과부 희생이 가장 빈번히 벌어진 벵골 지역이,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이 작동하던 지역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진짜 여성들의 목소리는 디페랑의 공간 속에 남아서 들리지도 읽히지도 않는다. 이처럼 과부-희생 제의는 이데올로기적 전쟁터나 다름없다. 스피박은 서발턴 여성을 중첩적으로 억압하는 각기 다른 주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힌두 과부의 자기-화살이 다르게 해석되었음을 주장한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사티를 단순하게 희생자로 상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스피박은 그들에게 왜 ‘남편’이 근본적 대타성을 나타내는지, 왜 ‘존재하기’가 ‘아내이기’와 똑같은지를 질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주체-구성과 대상-형성 사이에서 여성의 형상은 ‘제3세계 여성’의 전위된 형상화 속으로 사라진다. 제국주의-속의-여성의 범례로서 사티 사례는 침묵이나 비실존과는 다른, 서발턴 여성의 ‘사라짐’을 보여준다. 스피박이 제시한 두 번째 사례 부바네와스 바두리는 사티와는 또 다르다. 열여섯 살 혹은 열일곱 살의 젊은 처녀였던 바두리는 1926년 북캘커타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했는데, 자살함에 있어서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화행(Speech act)’을 시도한다. 생리 중일 때 자살을 택한 바두리는 이를 통해 자신이 불륜이나 혼전 성관계로 임신을 해서 자살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자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바두리는 인도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 단체의 일원이었다. 정치적 요인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감당하지 못해 부담감을 느꼈고, 신의를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바두리는 자신의 죽음이 오인될 것을 알았기에 생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바두리의 화행은 그녀가 의도한 대로 읽혀지지 않았다. 스피박이 바두리 사례를 인도의 산스크리트 연구자들이나 바두리의 조카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왜 훌륭하고 온전한 삶을 산 바두리의 언니들 대신 불운한 삶을 산 바두리에게 관심을 갖느냐였고, 또 다른 하나는 바두리의 조카들이 보여준 반응으로 바두리가 불륜을 저지른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스피박은 이러한 반응들에 낙담하여 이 글의 초고에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단정 짓게 된다. 물론 개정판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철회해, 그들이 말할 수는 있지만 침묵되어지거나 왜곡되어 이해된다고 강조한다.

정리해보자면 사티 풍습의 과부들은 토착 가부장적 세력에 의해서 장례식 기록으로만 남겨지거나, 식민 역사는 그녀들을 식민 지배의 부수적 도구로만 필요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라니 굴라리 같은 사티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 수도 없이 침묵하며 사라졌다.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는 자신의 육체를 여성/글쓰기의 텍스트로 바꿈으로써 ‘말하기’를 시도했지만, 그녀의 말하기는 가족에게도 여성들에게조차 실패했다. 즉,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정말로 그들이 말할 수 있는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가 온전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역시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서발턴의 말을 들을 수 있는가

다큐멘터리 『구글 베이비(Google Baby)』(2009) 의 한 장면. 대리모 계약의 코디네이터가 대리모를 지원하는 여성과 그녀의 남편에게 대리모 산업에서 계약 조건들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대리모들은 계약 전에 임신이나 출산 중 죽을 수 있고, 그 죽음이 대리모 의뢰인이나 병원 측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 코디네이터는 여성에게 대리모 산업이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돕는 것’이라 말한다.
다큐멘터리 『구글 베이비(Google Baby)』(2009) 의 한 장면. 대리모 계약의 코디네이터가 대리모를 지원하는 여성과 그녀의 남편에게 대리모 산업에서 계약 조건들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대리모들은 계약 전에 임신이나 출산 중 죽을 수 있고, 그 죽음이 대리모 의뢰인이나 병원 측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 코디네이터는 여성에게 대리모 산업이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돕는 것’이라 말한다.

스피박이 서발턴의 말하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난 뒤로, 30여년이 흘렀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시공간이 압축된 현대 사회에서는 스피박이 비판하던 국제 노동 분업의 상황이 더욱 심화됐다. 앞서 말했듯, 대리모 산업에서 역시 제3세계에 ‘임신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발달하고 있다. 대리모 산업 역시 디페랑의 공간이다. 이 공간 속에는 아이를 가지려는 난임·동성애·맞벌이·한부모들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대리모가 되는 3세계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남편, 그리고 “임신할 수 없는 여성을 가난한 여성이 돕는다”는 대리모 브로커들과 기업, 외화벌이를 위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고 ‘구글 베이비’가 친부모에게 빠르게 입양될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의료관광 정책이나 자국의 가난한 여성들을 서구열강의 착취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대리모 산업 규제 정책을 펼치는 국가가 있다.

국가가 대리모 산업을 규제하고자 했을 때, 대리 출산을 하는 여성들이 반발했다는 사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과연 그들이 대리모 산업을 원한다고 이해해도 될까? 우리는 이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와 더불어 또 한 가지를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우리는 서발턴의 말을 들을 수 있는가?”

다큐멘터리 『구글 베이비(Google Baby)』(2009)의 한 장면. 인도의 대리모가 출산 후 갓 태어난 아이를 보는 장면이다. 아이는 곧바로 친부모에게 보내진다. 아이가 보내진 후 여성은 눈물을 흘린다.
다큐멘터리 『구글 베이비(Google Baby)』(2009)의 한 장면. 인도의 대리모가 출산 후 갓 태어난 아이를 보는 장면이다. 아이는 곧바로 친부모에게 보내진다. 아이가 보내진 후 여성은 눈물을 흘린다.

대리모 기업들은 임신이나 출산 중 대리모가 죽었을 때 그 책임이 의뢰인이나 기업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국가는 대리모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산업 규모를 키워둔 뒤 갑자기 그 태도를 바꾸어 대리모 산업 규제 정책을 펼쳤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산 수단이 한정적인 가난한 제3세계 여성들에게 대리모는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대리 출산을 해 막대한 금액을 한 번에 벌게 된다.

대리모들의 선택을 단순히 자발적 선택이라 보거나 또는 그들이 자본에 의한 혹은 국가나 가부장제에 의한 희생자로만 볼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발턴들의 목소리를 어떤 이해관계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들을 재현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과 그들에게 가해진 중첩적 억압의 구조를 보는 것이다.

  1. 중앙일보, “돈만 주면 아이 낳는다···임신 하청 ‘구글 베이비’”, 2019.01.13.

  2. 인도 캘커타 출신의 여성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가이자 콜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피박은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의 핵심적인 글로 꼽히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집필한 것 외에도 다양한 책을 쓰고 번역해 왔다. 특히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OF GRAMMATOLOGY, 1976)를 영어로 번역하고 비판적인 서문을 붙여 서구 문단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3. 로잘린드 모리스가 편저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그린비, 2013)에 1부 텍스트로 실려 있는 판본을 말한다. 이 글은 스피박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1988) 초판본을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1999)의 3장 「역사」의 후반부 섹션에 실으면서 수정한 것을 다시 다듬어 수록한 것이다. 스피박은 이 글에서, 자신이 1988년의 에세이에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단정한 것을 “권장할 만한 주장이 아니었다(P.135)”고 말한다. 스피박의 정정처럼 서발턴이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서발턴의 침묵이 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말하기가 가능한지에 대한 스피박의 질문은 유효하다.

소연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이끌어나가기도 합니다. 예술을 통해 체현하는 감각적 경험은 강한 울림으로 우리를 사유로 이끌고, 의미를 생성해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정동적 힘을 지닌 예술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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