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직업을 갖고 직장에 다녀야만 되는 줄 알았다. 계단 오르듯 차근차근 진급해서 정년을 맞아 은퇴하는 게 최고의 인생인 줄 알았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라치면 가족, 친구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그걸로 밥 먹고 살 수 있니?”, “나중에 돈 벌고 해도 돼“ ”취미로 해도 돼“라는 소리가 뒤따라왔다. 매달 받는 월급을 위한 노동이 직업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회경제활동이 생업(生業)이다.
‘재미없이 일할 수 있어!?’는 힘들어도 발랄하게 자기 일로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다. 단비님은 결국엔 다시 연기를 선택하게 된다고 했다. 연기를 할 때의 즐거움과 성취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단비님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로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윤단비 : 8년차 배우

단비: 배우 윤단비라고 합니다. 27살에 연기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8년 동안 연기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연기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일이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있어: 늦게 27살에 연기를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왜 연기를 하게 되었는지도요?
단비: 광고 대행사에서 잠시 일 했어요. 대학에서는 카피라이터를 꿈꾸며 광고를 전공했고요. 고등학생 때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고 대학교 때도 광고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명확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회사에 들어가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거예요. 직장 생활이 저랑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연기를 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문득 “나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가 “해봐, 너 잘할 것 같아”라는 말 덕분에 용기를 내서 연기학원을 찾게 되었죠.
있어: 연기를 결심하셨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특히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을 것 같은데요.
단비: 사실 처음에는 주변에 알리지 않았어요. 연기를 결심하기 전에 극단에서 잠깐 공연 기획 일을 했었는데, 그때 부모님이 많이 속상해하셨거든요. 제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몸도 많이 상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를 시작할 때는 오히려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응원해주셨죠. 물론 배우라는 직업이 불안정하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걱정도 많으셨죠. 하지만 부모님은 제 행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 주셨어요.
있어: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단비: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컸어요. 배우로서의 수입은 불규칙하고 안정적이지 않아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죠. 특히 물가가 오르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힘들었죠. 한때는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국 연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연기는 저에게 너무 소중한 일이니까요.
있어: 배우로 활동하면서 생계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단비: 지금은 심리상담센터에서 데스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또 연기 수업을 열어 제 경험을 나누며 소득을 얻고 있고요. 연기수업을 열 때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해 소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서 용기를 내야했어요. 그 외에도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죠. 촬영 스케줄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시간 조정이 가능한 일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전날 촬영 스케줄이 잡힐 경우 다음 날 근무 일정을 빠르게 조율해야 하니까요.
있어: 배우로서의 수입과 아르바이트로 얻는 수입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단비: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크지만, 평균적으로 배우로 얻는 수입은 전체 수입의 약 40% 정도예요. 나머지 60%는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로 벌고 있어요. 배우로서의 수입이 불규칙적이라 정기적인 수입에 비해 안정적이지는 않죠.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한 번에 많은 수입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서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요.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연기는 단비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단비: 연기는 제게 정말 특별한 의미를 가져요.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자기 성장의 과정이 너무 소중해요. 연기를 통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느껴요. 물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너무 힘들 때는 다른 일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하지만 결국엔 다시 연기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의 즐거움과 성취감이 너무 크니까요. 이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 좋고,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줘요. 연기는 저에게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있어: 배우가 되기 위해 포기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비: 좋은 딸, 효녀가 되는 것을 포기했어요. 직장을 다녔다면 지금쯤 부모님께 더 많은 것을 해드릴 수 있었겠죠. 어버이날에 큰 용돈을 드린다든지, 여행 경비를 지원해 드린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배우로서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많이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부모님은 늘 저를 응원해 주시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라세요.

있어: 결혼이나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단비: 결혼에 대한 로망은 크지 않아요. 오히려 동거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결혼이 노동력의 교환이라는 제도적 성격이 강하다고 느끼거든요. 하지만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경험이 배우로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삶의 경험이 연기에 깊이를 더해줄 테니까요. 결혼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고 있어요.
있어: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취미나 방법이 있나요?
단비: 친구들과의 대화, 맛있는 음식, 반려묘와의 시간이 큰 위로가 돼요. 특히 친구들이 저를 지지해주는 순간들이 큰 힘이 돼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술을 마시는 것도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먹는 게 진짜 제일 손쉬운 위로죠. 맛있는 커피 한 잔도 큰 행복을 주고요.
있어: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단비: 여성 서사가 담긴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미디어 속에서 기존의 여성들이 아내, 엄마 등의 역할로 납작하게 비춰졌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선배님들이 이 폭을 넓혀주고 계신 것 같아요. 저도 선배님들이 개척해놓은 길을 따라 많은 역할에 도전하면서 미디어에 비춰지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넓혀 가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있어: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단비: 연기는 정말 재미있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불안정성도 크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민도 많이 하셔야 해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도전해보세요. 연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현실적인 부분도 항상 고려해야 해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주변의 지지를 받으면서 나아가길 바랍니다.
있어: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비: 솔직히 말해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돈 버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이 정말 커요. 그걸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좋은 기회가 올 거예요.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그 용기가 결국엔 나를 지탱해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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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이무열 20여년 마케팅 경험으로 전환담론을 실험하는 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에서 지역, 문화, 생업을 주제로 일하고 있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공저), 『전환의 시대 마케팅을 혁신하다』, 『협동조합 마케팅기술』, 『돌봄의 시간들』(공저)등의 글을 쓰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특히 욕망하는 이들을 추앙하며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즐긴다. 무엇보다, 내일만큼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있다. happyyeori@gmail.com 사 진 : 유소영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사람의 흔적 없는 사진은 심심하다. 일상의 흔적을 담아 인물을 찍는 사진가. Soyoung7586@gmail.com |
배우님 너무 멋지네요. 포말에 부서지는 햇살 파편같은 삶을 살길, 응원해요
배우님에게 전달해 드릴께요 ^^ 고맙습니다.
글 좋고 사진 좋고 인터뷰이 좋고 인터뷰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