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진솔이 눈을 길게 감았다 뜬다. 눈동자가 잘게 쪼개질 듯 빠르게 움직인다. 미간 사이 주름이 깊어지며 입을 크게 벌린다. 절규하는 표정이다. 고함 소리는 안 들린다. 목에 관이 삽입되어 있어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린다. 팔과 손목, 손가락 마디마디가 안쪽으로 더 세게 굽어진다. 양쪽 엄지발가락 끝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각을 세운 왼쪽 다리 무릎이 점점 위로 세워진다. 오른쪽 다리는 일자로 빳빳해진다. 진솔은 지금 강직을 하고 있다. 온 몸에 고압 전류가 흐리는 느낌이라고 한다. 딱딱한 다리를 내 손으로 쓸어내린다. 그에게 아프지 말라고 속삭인다. 미간 사이 주름을 억지로 펴본다. 그럼에도 평온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 옆에 내 몸을 우겨 넣고, 가만히 기다린다. 몸의 파도가 잠잠해졌을 때, 다시 말한다. “언니야, 아프지 마라.” 눈동자가 휙 돌아 내 입술을 향한다. 헷갈린다. 언니가 내 얘기를 듣고 있나?

언니는 2023년 6월, 트럭에 치였다. 경사진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를 걷고 있던 중이었다.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뇌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압력을 줄이고자 머리뼈 일부를 절단했다. 의사는 뿌리가 잘린 나뭇잎이 말라가듯 언니 뇌도 끝에서부터 시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후 언니는 뇌사를 간신히 면했다.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다. 반대로 뇌는 거의 죽었지만, 몸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 눈동자는 흔들린다. 하루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고, 이따금 휠체어에 앉는다. 기저귀에 용변을 누고 뱃줄로 경관식을 투여 받는다. 나는 언니 영혼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비루하고 아픈 몸을 벗어 던진 채로. 아마 언니는 지금 흙에 스며들고,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하다가 하늘을 날고 있겠지. 자유롭게 아주 자유롭게.
언니가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그를 붙잡았다. “진솔아, 안 된다. 가지마라. 엄마 다시 할 수 있다.” 나는 죽어도 좋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고,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너무 아프니까 떠나도 괜찮다.” 언니는 사고 이전부터 중증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 할 수 있다고 말한 건 한 번 더 아픈 몸을 돌볼 수 있다는 간절한 호소였다. 내가 죽어도 좋다고 말한 이유는 언니가 자주 죽음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늘 죽음에 기시감을 느끼던 그이다.
언니 몸엔 사연이 많다. 매일 몸과 싸워야 했고, 역동적인 감정을 느꼈다. 여러모로 할 말이 많던 몸이지만, 언니는 이제 그 몸을 발화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언니를 대신해서 그의 몸을 기록하려고 한다. 언니 몸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언니 몸이 살고 있는 사회를 향한다. 사회가 언니 몸을 어떻게 끊임없이 굴복시켰는지 기록으로 증언하고 싶다. 하고 싶다기보단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운을 띄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없다. 언니와 똑같은 피가 흐르는 것만으로 이 글을 쓸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이미 실패할 증언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 내가 언니 몸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니가 얼마나 몸을 징하게 사유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무슨 생각인 지, 어떤 감정인 지 물어도 답변을 들을 수 없다. 언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플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옆에 나란히 눕는 것뿐이니까. 언니의 고통은 철저히 그 몸을 지니고 산 당신의 몫이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언니 몸을 가까이에서 느꼈다. 언니 몸은 같이 침대에서 뒹굴며 놀 땐 큰 베게 같았다. 같이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 땐 분신 같았다. 목소리, 웃음소리, 방구 소리, 살결, 몸의 굴곡, 머릿결.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는 그 시절 언니 몸은 내 감각에 각인돼 있다. 언니와 내 몸이 바뀌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언니가 나를 대신해 아픈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끝엔 늘 죄책감에 다다랐다. 언니는 이렇게 아픈데, 나는 건강하다는 사실이 죄스러웠다. 동시에 언니 몸을 미워했다. 예민한 그의 몸을 돌보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언니 몸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자주 빼앗아갔다. 서로를 때려도 언니 몸에 상처가 더 잘 남아 억울했고, 똑같이 감기에 걸려도 언니 몸이 더 뜨거워지는 게 못미더웠다. 몰래 언니 몸을 혐오했다. 삐뚠 감정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언니에게 분출하고 나면 나를 혐오했다. 언니 몸 앞에서 나는 늘 찌질 했다.

사진출처 : Roman Kraft
세월을 견뎌 동생도 어른이 됐다. 어린 마음을 가다듬고 언니 몸과 화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픈 몸에겐 동반자가 필요하다. 이젠 내가 그런 존재가 돼 주겠다고 약속했다. 정기 검진에 같이 갔다. 언니가 매일 스스로에게 겨눠야 했던 주삿바늘을 거둬, 대신 주사를 놓아 주기도 했다. 서툴어도 노력하겠다고, 같이 잘 맞춰나가 보자며 큰소리 쳤다. 언니는 못 믿겠다는 듯 놀렸지만, 내심 반가워했다. 애석하게도 언니 몸은 내게 사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언니 몸은 순식간에 더 큰 강도의 고통을 장착했다. 하필이면 이번에도 내가 아닌 언니 몸이 아프다. 그가 사고 당한 날은 내가 운전면허를 딴 지 딱 25일이 지난 때였다. 한창 땀 찬 손으로 운전대를 쥐고 도로 위를 달렸다. 마찬가지로 내가 당했어야 할 사고를 언니가 대신 당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언니 대신 아프지 못하는 내 몸이 하찮다. 오그라드는 언니 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여전히 작아진다.
진솔과 솔빈. 한 글자를 겹치면 이어지는 우리 이름. 언니 오른쪽 팔에 왕점. 내 오른쪽 다리에 똑같이 찍힌 왕점. 여기 내 이름과 몸에 깃든 언니 영혼을 매만져본다. 언니에게 칭얼대며 물어본다. 언니야, 내가 이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을까? 내 말이 들린다면 눈을 깜빡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