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우경화, 무능한 중년 정치판이 문제 아닐까?

차별과 혐오 정서의 확산은 막아내야 하고, 소수자를 향한 가짜뉴스는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청년 남성 내부에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격차나 노동의 불안정성 같은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효능감을 선사할 수 있고, 이준석 같은 혐오정치인에게 의존하는 구도를 파훼할 수 있다.

21대 대선에서 20대 남성 중 37.2%가 이준석, 36.9%가 김문수를 찍은 걸 두고 20대 남성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대 여성도 김문수 25.3%, 이준석 10.3%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가 방송 3사 출구조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에서 보수정당 후보 투표가 조금 더 높았던 걸 고려하면 김문수와 이준석의 실제 득표율은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최종 득표율은 이재명과 권영국을 합친 값이 김문수와 이준석을 합친 값보다 높지만, 20대에서 보수정당 득표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분명 의아한 일이다.

이러한 결과가 지난 윤석열 내란사태 이후 기승을 부렸던 극우세력의 청년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청년층이 극우화되는 증거가 아닌지 경계하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 상황을 20대의 보수정당 투표에 대해서 ‘극우화’라고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실제로 지난 12.3 윤석열 내란 사건에 대해 반대하고 윤석열 탄핵을 찬성하는 비율은 20대를 포함해 전 세대에서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배타주의, 공공제도에 대한 불신과 무시, 물리적인 폭력 행사,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선동 등이 극우의 대표적인 경향이라고 했을 때, 확실히 20대에서 보수정당에 투표한 이유가 반드시 그들이 극우성향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유대학 등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던 청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이 한국 청년의 전경은 아닌 것이다. 청년 우경화, 극우화 등 세대적 경향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유의미한 통계들을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자유대학 등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던 청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이 한국 청년의 전경은 아니다. 사진출처 : Bruno Yamazaky

관망만 할 수 없는 지점들도 있다. 오래된 문제인데, 정치, 경제, 문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는 비단 청년 세대의 문제만도 아니다. 60, 70대는 내란을 겪고도 압도적으로 김문수를 지지했다. 탄핵 반대 집회 등을 포함한 극우집회에는 경제, 문화적으로 소외된 노인들이 많다. 보수개신교나 극우 정치세력은 이들에게 현금을 약속하거나 강한 소속감을 부여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풀뿌리 조직 방식으로 노인의 정치세력화를 가꾸었다. 고령화사회에서 마땅한 노인 경제 정책이나 문화콘텐츠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실효성 있는 노인 경제, 문화 정책을 성공시켜야 한다.

장년층의 키워드가 ‘고립과 소외’라면, 청년층의 키워드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불안과 분노’다. 이 불안과 분노의 원인은 당사자들을 인터뷰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언론에서 다루는 인터뷰에서 성공적으로 이들의 불안과 분노를 조명한 경우는 거의 없다. 언론 상에서는 보수정당에 투표한 청년들이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불신을 호소하거나 청년 정치인으로서 이준석의 참신함에 많은 점수를 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이유에 가깝다. 어떤 청년들에게 민주당이 왜 이중적이고 믿을 수 없는 기득권처럼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불신과 분노가 왜 진보정당 권영국이 아니라 김문수, 이준석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지 현재로서 뚜렷하게 드러난 언어들은 없지만 유추할 수 있는 정황들은 있다. 연구조사에 기반한 것이 아니고 일상적 체감과 직관에 의존한 것이지만, 핵심은 정치적 효능감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지 못한 변명의 정치, 민주당의 위선

우선 민주당의 문제 해결 방식에 문제가 있다. 민주당의 정치 방식은 청년들에게 매우 고압적이고 위계적이다. 아마 민주당 내 청년들도 그 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가 있을 때 민주당은 숨겨진 의견그룹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할지 향배를 정하고,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진지한 토론은 피한 채 왜 이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는지에 대한 본심을 숨기려고 한다. 그리고 그 숨겨진 의견그룹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나온 담당자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꽤 적지 않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런 방식이 현실 정치라고 긍정적으로 이해하겠지만, 숨겨진 의견그룹의 향배에 대해 정보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그냥 직설적으로 판단 근거를 드러내고 문제 해결 담당자가 직접 소통하는 이준석 식의 소통이 속시원한 것이다. (진보정당이 대중 득표가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지만, 진보정치에서 이런 소통과 토론을 잘 하는 청년 정치인으로 장혜영도 있다.) 청년들은 자신이 정말 왜 힘들고 어렵고 사회에 불만이 많은 것인지 대체로 잘 인식하거나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고, 민주당이 갈등 회피 전략만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옳든 그르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인사이트를 제공하면 그게 그들의 유일한 세계관이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약 10여 년 전부터 댓글부대나 보수개신교 선동을 통해 우경화돼 왔는데, 이준석은 그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아예 거점으로 삼아버렸다.

김문수에 대한 지지 양상은 이준석의 지지와는 결이 좀 다르긴 한데, 크게 다르진 않다. 단순히 이준석이 당선가능하지 않아 김문수에 투표한 사람도 많다. 다만, 김문수에 대한 지지는 음모론과 상관이 있는 것 같고, 원한에 매몰돼 민주당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조금 더 강하다고 느낀다. 이재명은 나라를 중국에 팔아넘길 심산이고, 민주당이 선호하는 사전투표도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등 여러 음모론에 솔깃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반면 이준석에 대한 지지는 조금 더 단순한 원한 관계에서 벗어난 지지로는 느껴진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음모론이나 극단적인 비방 선동에 휘둘리는 것은 정치적 효능감과 사회적 문해력이 낮은 청년들이 겪을 수 있는 혼란일 텐데, 민주당에는 그런 청년의 입장에 서서 대화하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민주당의 정치콘텐츠는 대체로 중년이 생산하고, 시청자도 중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주당의 청년 당원들도 같은 청년을 설득하고 대화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중년 정치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일부 민주당 청년 남성 당원들이 이준석을 지지하는 표심을 돌리기 위해 페미니스트를 공통의 적으로 삼고 소통을 시도했지만, 잘못된 방식일뿐더러 그런 지엽적인 문제가 아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진짜 문제는 민주당의 정치 방식이 세대적으로 위계화되어 있고, 청년을 주체적 정치 집단으로 배치하지 않고 항상 풍경화하며, 청년들의 욕구와 불안에 대한 경제적 분석과 해결책이 전무하거나,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설득하고 싶은 청년의 세계 속에서 설명하거나 확장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충 설명하고, 좋은 게 좋은 거처럼 얘기하면 되는 게 아니다.

차라리 권위주의적일 것이면 그에 상응하는 실력과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민주당이 보여주는 권위주의와 우월감, 즉 ‘우리가 펼치는 게 바로 현실 정치이고, 더 합리적이며 윤리적이다’라는 전제는 너무 자주 그 바닥을 보인다. 민주당의 숨겨진 혹은 권위적인 의견그룹이 생각보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고 시중에 알려진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탄로 나는 경우가 많다. 윤리적인 시민성을 가진 척하지만 치명적인 잘못이 드러나며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장 최근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은 그렇게 무너졌고, 조국은 감옥을 갔다. 물론 조국은 과도한 정치탄압을 받은 뒤로 시간을 두고 다시 재기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던 그가 자기 가정의 편법에만 관대했던 일들은 민주당을 위선적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내 수입과 어떤 관계도 없는 정치, 진보정치의 책임

정치만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도 낮다. 부동산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인 과오로 평가되지만, 당시 민주당은 이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청년들은 앞서 말한 정치적 비호감을 뚫고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만큼의 경제적 효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오세훈처럼 앞뒤 안 가리고 재개발을 밀어붙이고 실제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더라도 집요하게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모습 자체에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국민의힘이 경제적으로 유능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가 되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들의 솔직한 탐욕과 이기적인 이윤 추구 자체가 경제적으로 믿음직스럽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은 성남지사, 경기도지사를 지내며 유능한 행정가 혹은 경제적 실용주의자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는데 왜 지지가 압도적이지 않은 걸까? 이 또한 정확하지 않지만 하나의 가설은 세워볼 수 있다.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청년 남성들이 부모세대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것에 대해 느끼는 박탈감이 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박탈감에 비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데 민주당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민주당은 세금을 인상하고 여러 규제를 강화하는 정부라는 인식이 있고, 때문에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에 방해가 된다고 추정한다는 것이다.

일단 한국에서 청년 개인이 독립적인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비싸다.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청년들이 원하는 독립적인 사회경제적 지위란 게 특별히 과한 것도 아니다. 자가를 가지고, 자차를 가지고, 노후 의료 비용에 걱정이 없고,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고, 별도의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노년을 위해 저축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근데 이 수준에 필요한 자산이 얼마일까? 정확하게 얼마라고 말할 순 없지만, 아마 월에 600~700만원 임금을 받아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내 주변에서도 고소득 임금노동을 하는 청년들이 자신이 가난하다던가 돈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이 얼마나 얄밉겠나.

이 상황에 인문학적 통찰이랍시고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을 하려는 경쟁적 욕심 자체가 이 자본주의 시대의 폐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가스라이팅이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청년들이 원하는 욕구라는 것이 뜯어보면 결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거, 교통, 의료, 교육, 돌봄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영역들이 아닌가. 사회공공성이 약해지기 때문에 각자도생 적자생존의 생존방식이 강요되는 것이다.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집권해도 해결이 안 되니, 이럴 거면 규제 혁파하고 돈이라도 벌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진보정당이 경제순환 구조 얘기를 전면적으로 못하고 있으니 사회의 추가 경쟁을 강조하는 보수정당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진출처 : CDD20

이런 때일수록 진보정치가 나서서 사회공공성의 급진적인 강화와 그를 위한 현실적인 방책을 내놔야 하는데 민주노동당, 녹색당, 노동당, 진보당 등 진보정당에서 설득력 있는 경제모델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진보정당은 대중적으로 득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이 친재벌 친기업 성향을 보여도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당장 수입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진보정당이 경제순환 구조 얘기를 전면적으로 못하고 있으니 사회의 추가 경쟁을 강조하는 보수정당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맥락에서 한국의 우경화는 진보정치의 책임도 막중하다.

산업 구조에 대한 진보정치만의 청사진이 없는 것부터 곤혹이다. 어디서 수입이 생길 것인가 고민하지 않고는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현실적인 로드맵 구축도 난망하다. 그나마 가장 기초적인 방식이 증세인데, 증세는 모든 경제 계층에 대한 맞춤형 설득이 필요하고 저항감도 강할 것이다. 사회공공성 강화 정책 효과는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조세 부담은 즉각적으로 체감되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내일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강조하는 게 와닿기 어렵다. 결국 증세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진보정치만의 산업 청사진은 필수적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안정적인 삶의 표준 달성을 위한 비용은 낮춰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사회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비트코인 한탕만 기다리는 삶을 원하는 청년은 없다. 어떤 경제모델이 필요한지 혹은 산업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 것이 좋은지 정치가 선제적으로 대책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당장 부동산과 주거 문제만이라도!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자산과 자원을 청년들이 원한다면, 그 자산과 자원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 청년의 표심을 바꿀 것이다. 나아가 사회공공성 강화에 대해 설득력 있는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경화된 표심 자체를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청년들은 극우 확신범이 아니다

이 점은 명확하게 하자. 이런저런 이유를 대도,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앞선 문제들을 해결할 전망과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현명한 대안은 절대 아니고, 시민들을 향한 총부리를 가져다 댄 내란수괴를 비호하는 김문수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을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싫다는 건 그 선택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민주당의 정치 역시 다방면에서 실패하고 있고, 맹목적인 팬덤 정치에 의해서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것도 공감하는 평가다. 진보정치도 설득력 있는 대안이 없다. 이 상황에서 청년의 보수정당 지지를 극우화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즉, 청년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닐지언정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없는 게 아니다. 이들을 확신에 찬 극우로 보긴 어렵다.

그래도 혐오정서를 기준으로 청년 남성의 극우화 경향은 경계할 필요가 없나. 우선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미디어 알고리즘을 통해 교실과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하는 상황이 심각한 게 사실이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의 핵심적인 투표 요인이 페미니즘, 성평등, 소수자 차별과 혐오였던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압도적으로 내란심판을 둘러싼 선거였다. 이재명은 그 구도에서 당선됐다. 김문수와 이준석이 단일화했어도 이겼을 거다. 양자구도 여론조사에서 그 누구도 이재명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이번 대선에 한정한다면, 청년 남성들 사이에서 확장되는 차별과 혐오의 정서가 김문수, 이준석 득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이준석이 마지막 방송 토론에서 여성 성폭력을 재현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저속하게 상대 후보를 비방하려고 했던 시도가 그의 최종 득표에 치명적이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그건 이준석조차도 시인했다.

난 권영국의 1% 득표 실패 요인을 인권과 평등을 강조한 것에서 찾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겠다는 호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설득력 있는 경제, 산업 정책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 소수자 곁을 지킨 것이 잘못이라면 진보정치는 태생이 모순이고, 그런 분석은 틀렸을 뿐 아니라 소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질 나쁜 일이다. 오히려 권영국은 민주당과 다르게 이번 대선을 통해서 거짓과 위선이라는 프레임에서 빗겨나간 유일한 후보였다. 사기 피해자가 돼도, 재난 피해자가 돼도, 어떤 사회경제적 실패를 겪어도 ‘우리’를 확실하게 대변해주고 함께 싸워줄 것이라는 믿음을 대중에게 선사했다. 그 행보를 이어가면서 경제 정책만 보완된다면 민주노동당은 약진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청년 남성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갈등한다는 구도를 정치가 수용하고 재현해버리면 그것이 청년 남성의 극우화를 촉진시키는 위험천만한 일이 된다. 가령 페미니즘에 대한 청년 남성들의 반감이 신남성연대 등으로 조직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혐오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청년 남성의 표심을 여성정책에 책임을 돌리면 안 된다. 여성인권 정책의 필요성을 호소할 때 여성의 피해자성을 강하게 주장하게 되기 때문에 청년 남성들은 이 정책이 자신을 나쁜 사람처럼 싸잡아 비난하는 것처럼 느끼고 정치적 소외감을 느낄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세심한 대중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강구하거나 청년 남성들도 일반적으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할 부분이다. 강조했던 부동산정책부터 게임산업 정책, 모병제, 노인부양 정책, 학자금 대출 등 청년 남성이 부담을 갖고 있거나 불만을 가진 문제들에 집중하면 된다.

청년 남성들은 동성혼이 법제화돼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것이다.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있겠지만, 시대가 바뀌긴 했나보다 하면서 자기 할 일 할 것이다. 차별금지법도 사실 그렇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 국회를 장악한 보수개신교 출신의 정치권력자들이 반감을 더 부풀리고 계속 차별주의자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이 확대된다고 표심에 영향을 줄 것인가? 이슬람 사원 건축이 허가되든지 난민 인정률이 높아지든지 자기 삶에 체감되는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면 상관하지 않는다. 혐오적인 가짜뉴스들 때문에 반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주체부터 해서, 그 모든 혐오를 선동하는 진원지가 거의 다 보수개신교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확신의 극우세력들을 제외하면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소수자 인권 정책을 막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청년 남성은 없을 것이다. 여성정책도, 여성이 감당하는 폭력의 수위에 비하면 가당찮다고 생각은 하지만, 싸잡아서 나쁜 놈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지 여성의 권리가 증대되는 것을 막자는 게 핵심 욕구는 아니다.

차별과 혐오 정서의 확산은 막아내야 하고, 소수자를 향한 가짜뉴스는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청년 남성 내부에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격차나 노동의 불안정성 같은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효능감을 선사할 수 있고, 이준석 같은 혐오정치인에게 의존하는 구도를 파훼할 수 있다.

세금 아깝다, 정치개혁하자

참, 정치가 문제가 많다. 솔직하지 못하고 항상 불순한 이해관계를 내포하는 정치 방식. 시민의 사회경제적 안정에 책임을 다 하지 않는 정치.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갈등으로부터 도망치기에 급급한 정치. 청년들은 중년들의 병풍으로 착취되는 정치. 청년들이 뽑을 사람 없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된다. 관행에 얽혀 청년들에게 어떤 효능감도 제공하지 못하는 정치 이제는 바꿔야 한다. 청년의 보수정당 투표 경향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당장할 수 있는 게 있다. 무능한데 경력만 길게 적어둔 405060 인물들보다 성실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득력을 갖출 수 있는 2030을 대거 공천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정치는 정당 상관없이 공천 때 줄 잘 섰을 뿐인 무능하고, 심지어 연설 능력도 별로 없는 405060 인물들이 지방자치단체부터 국회, 행정부까지 장악한다. 지난 지방선거의 무투표 당선자가 400명을 넘겼다. 나는 정말 세금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자원을 그저 당 권력자에게 잘 아첨하고 줄 서는 것 말고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얼마를 쏟아내고 있는 건가. 물론 그중에는 꽤 유능하고 성실한 사람들도 있다. 근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그런 인물이 화제의 인물로 가끔 소개될 정도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무능하다 못해 민폐인 사람들도 많다. 하나는 내란을 일으키는 극우정당, 하나는 그 극우정당을 막는 일에서만 존재 의의가 느껴지는 잡탕 중도 보수정당. 이런 정치구도는 정말로 개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의 극우화가 정말 걱정된다면 차별과 혐오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청소년, 청년 세대에 퍼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는 심각한 수준이다. 설령 이게 매번 투표에서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핵심 요인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윤석열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의 면면을 보았듯이, 언젠가 극우의 차별과 증오를 원동력으로 또 다른 내란세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겪었지 않았나. 성별을 갈라치고, 남성과 여성의 이해관계가 대단히 다른 것처럼 조장하면서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극우가 성장하기 좋은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압도적 여당으로서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30 남성의 표심을 잡고 싶다면,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바꿔야지 여성과 성소수자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대처다.

이재명 정부가 시작됐으니, 응원하고 간절히 요구한다. 부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심기용

도마뱀과 함께 사는 30대 게이입니다.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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