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갑게 메마른 창백한 산하를 배경으로 여리고 가냘픈 선율을 노래하던 한송이 한송이 꽃들의 아름다운 독창이 어느덧 풍성하고 화려한 화음을 쌓아가며 중창과 합창으로 전개되더니 모든 풀과 나무들이 봄바람의 지휘에 맞춰 연주에 참여하는 오월의 대교향곡 향연으로 연결되었습니다.
풀과 나무들만 연주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요. 꿀벌과 호박벌, 등에 그리고 풍뎅이와 같이 붕붕거리는 친구들도, 나비와 같이 사부작거리는 친구들도, 지렁이나 달팽이나 애벌레들처럼 꿈틀거리는 친구들도, 꿈틀거리던 올챙이 시절을 벌써 잊어버린 듯한 폴짝거리는 개구리도, 바스락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미와 거미와 도룡뇽과 다람쥐, 청설모와 고라니도, 거침없는 멧돼지도, 참새, 박새, 산비둘기에 더해 새로운 합창단원으로 합류한 소쩍새, 휘파람새, 뻐꾸기, 꾀꼬리 같은 봄 철새들도 신록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입니다. 그래도 가장 많은 단원들은 역시나 풀과 나무들, 악기는 각각의 색깔과 모양과 크기를 가진 초록 잎사귀이지요.

오월의 풀과 나무들이 가진 초록 잎사귀를 신록이라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재주가 제게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우리말은 초록을 파란색과 혼용하여 ‘푸르다’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초록색인데도 파란 신호등, 청테이프, 청개구리라고 부르지요.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저 크고 높은 산도 푸른산(靑山)이라고 부르니 신호등이나 테이프, 개구리가 많이 억울해 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파란색을 표현하는 우리말이 파랗다, 새파랗다, 엷파랗다, 검파랗다, 파르스름하다, 파르무레하다, 파르댕댕하다, 퍼렇다, 시퍼렇다, 검퍼렇다, 푸르다, 시푸르다, 검푸렇다, 푸르스름하다, 푸르뎅뎅하다, 푸르죽죽하다, 푸르께하다, 새포름하다 등등 많은 것에 비해 초록색은 이름부터가 우리말이 아닌 초색(草色)과 녹색(綠色)의 한자어입니다. 초록색을 표현하는 말들도 신록(新綠), 연록(緣綠), 청록(靑綠)색, 연두(軟豆)색, 비취(翡翠)색, 옥(玉)색과 같은 한자어들이고 우리말은 그나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물의 우리 이름에 색을 붙인 수박색, 쑥색, 풀빛, 쪽빛 정도가 있습니다. 어쨌든 제게는 오월의 풀과 나무들이 각자의 시간과 방법에 따라 만들어낸 각각의 모양과 색을 설명할 능력도, 그리고 그들이 한껏 어우러져 경이롭게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할 재주도 없습니다. 그래서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오월’에서 문장을 빌려 왔습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1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꾸밈도 없이 찬물로 세수만 해도 맑은 첫 새벽 같던 스물한 살 얼굴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일상의 삶은 온갖 번잡한 일로 피곤합니다. 내 관심사를 빠르게 알려주는 스마트한 전자제품 덕에 쉽게 세상과 연결되었지만 예전에는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남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그 스마트한 것 때문에 내 인생을 남과 비교하고 평가받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 숨이 가쁩니다. 그래도 그 스마트한 것 덕분에 내 손바닥 안에서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편리함을 즐겼는데 지금은 그 스마트한 것 때문에 한순간에 내 모든 것이 남의 손에 넘어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걱정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과 불길한 소식이 만들어내는 숨 가쁜 박자의 불협화음 속에서 우리는 혹사 당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오월의 신록을 바라봐야 합니다. 뽀송한 하얀 솜털로 인해 은색으로 빛나는 다릅나무의 잎과 도드라진 잎맥을 따라 연두색 골을 내놓은 듯한 신갈나무의 잎을 찾아 보세요. 붉은 빛이 도는 연초록의 손바닥 모양의 단풍나무 잎도요. 지난 겨울을 이겨낸 강인한 녹색 바늘잎과 함께 연하고 부드러운 연두잎을 낸 전나무 또한 찾아보세요. 나무이름을 몰라도 상관없어요.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서로 다른 신록의 잎들을 찾아보세요. 이들을 놓고 무엇이 낫다 못하다 비교하는 것만큼 멍청하고 의미없는 일이 있을까요?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숨을 쉬고, 나의 색을 가진 나의 잎을 낸다는 나무들 앞에서 남의 삶과 비교당하는 압박을 내려놓고 고른 숨을 천천히 쉬어 보세요. 그리고 봄바람의 지휘에 따라 온 몸을 흔들며 봄 햇살에 반짝이는 잎들과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신록으로 물들이고 있는 오월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봅니다.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앞에 걱정과 근심,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모든 감각을 몰입해보세요. 아마도 조금씩 변형된 피천득 선생님의 문장이 각자의 마음에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신록 속에서 나도 자연의 일부로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걱정하고 근심하여 무엇하리. 나는 지금 나의 숨을 쉬며 나의 오월 속에 있는데.’
피천득, 오월,「인연: 피천득 수필집」, 민음사, 2018 ↩
저마다의 잎색깔이 있음으로 봄산은
숨이막힐듯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오밀조밀 언어의 유희로 풀어놓은
풀, 나무, 뭇생명들 그리고 초록의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의 글 맛있게 읽었습니다.
글과 사진으로 인하여 눈과 마음이
맑아지는 듯 합니다. ^^
나의 숨, 나의 색이 마음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