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산책] ⑮ 겨울이 오고 있다

드라마 속 명대사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가 우리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시간입니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맞이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비워냅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우리에게 이 나무들이 들려주는 무언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강세기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수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나왔던 명대사입니다. 가상의 중세 대륙 패권을 놓고 일곱 가문이 펼치는 피의 투쟁과 대립, 복잡한 동맹과 배신, 사랑과 판타지 이야기가 매력적인 인물들과 엮이며 예측하기 어렵게 전개되는 가운데 북부 지역을 다스리는 가문의 여러 인물이 수차례 반복했던 대사이기도 하지요. 그 드라마의 명대사가 우리에게 실현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도착했지요. 이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생명들이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겨울잠을 자러 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더 촘촘한 털과 두꺼운 지방으로 무장을 합니다. 그에 비해 나무는 오히려 지난 계절 열심히 만들어 놓은 나뭇잎을 모두 버리고 영하의 날씨 속에서 헐벗은 빈 몸으로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견딥니다. 참 놀라운 생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나무는 ‘버리고 비우기’가 그 비결이라고 알려줍니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얼어 죽지도 말아야 하고 굶어 죽지도 않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의 대부분은 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도 나무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두 알다시피 물은 0도에서 얼어붙습니다. 또 물은 얼면서 팽창하지요. 냉동고에 생수병을 넣어두면 얼음이 얼면서 병이 터질 지경으로 부풀어 오르는 걸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세포 안에 있는 물들이 얼면 세포벽이 터져 버리기 때문에 밭이나 냉장고 안에서 서리가 낀 채소가 축 처지고 문드러지는 것처럼 되며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는 겨울이 되기 전에 먼저 몸 안에 있는 물들을 비웁니다. 물은 나무가 햇빛으로 영양분을 만드는 광합성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광합성은 대부분 잎에 있는 초록 엽록소에서 이루어지지요. 나무는 서서히 잎들을 떨구어 버림으로써 광합성을 중단하여 물의 공급을 차단합니다. 그야말로 수도꼭지를 잠그는 거지요. 그리고 나무는 몸속에 남아 있는 물의 농도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잎에서 만든 영양분을 농축해서 아주 효과적인 부동액 역할을 하도록 만듭니다.

나무는 미련도 집착도 없이 단풍잎을 떨구며 겨울을 대비합니다. 사진 제공: 강세기

물을 비우고 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나무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고한 초록 잎을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이며 미련과 집착을 태워버리는 의식을 행한 후 단호히 잎을 떨구며 겨울을 대비합니다. 물론 나무는 내년 봄에 다시 만날 초록 잎을 품은 겨울눈을 단단히 만들어 놓는 일을 일찍이 여름부터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풍요로운 계절에 열심히 만든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에 힘껏 저장해 놓은 나무는 겨울 동안 거의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먹을 필요도 없고 굶어 죽을 걱정도 없지요. 지금부터 나무는 빈 가지로 겨울바람을 가르며 묵묵히 견디고 서서 다시 올 봄을 기다릴 겁니다.

나무는 일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만듭니다. 하나의 나이테를 살펴보면 연한 춘재와 짙은 추재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제공: 정태성

이렇게 준비하여 맞이한 겨울을 지내며 나무는 연륜(年輪)을 쌓아갑니다. 연륜은 나무의 줄기에 1년마다 하나씩 생기는 나이테를 말합니다. 나이테를 잘 살펴보면 겨울을 이겨낸 후 따뜻하고 촉촉한 봄에 부지런히 자라느라 세포 크기도 크고 조직도 성기고 연한 부분[춘재(春材)]과 서늘해지고 건조해 가는 가을부터 천천히 자란 세포 크기도 작고 조밀하며 색도 짙은 부분[추재(秋材)]으로 구분됩니다. 추재 부분이 다시 봄을 맞이하여 자란 춘재와 구분되는 곳에 명확한 한 개의 나이테가 만들어집니다. 나무들은 한번 자리 잡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만 매일 달라지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과 각도, 공기 중의 습도와 바람의 방향, 찾아오는 새들과 벌레들과 주변 생명에 민감하고 성실하게 반응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착실하게 그 결과를 1년에 한 개씩 몸에 새겨 넣는 것이지요.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무가 주는 무언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진 제공: 강세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도 나무와 같은 연륜이 쌓였을까요? 정확하게 일 년에 한 개의 나이테를 더하는 나무와 달리 우리에게는 세월의 흔적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저 늙어감의 징후만을 더할 뿐이지요. 해가 뜨나 달이 뜨나 관심 없이 밤낮 불을 환히 밝히고 조금만 더워지거나 추워지면 냉난방기 부지런히 돌려대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다른 생명과의 관계에 무디고 둔감합니다. 매일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희망도 없음 속에서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살아가기에 나무와 달리 명확한 시간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은 연륜의 다른 뜻으로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으로 이루어진 숙련의 정도’를 말합니다. 삶의 연륜이 있다는 것은 무엇에 대한 경험이고 숙련일까요? 나무가 자기 몸에 나이테를 새겨 넣는 것을 보면 연륜이란 꽃을 만발하며 열매를 많이 맺고 잎을 키우고 가지를 내는 것처럼 무엇을 이루고 성취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작은 것이나마 미련 없이 버리고 비워 겨울을 이겨낸 경험과 숙련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성한 잎과 화려한 꽃과 풍성한 열매를 얻지 못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한 번 뿐인 삶, 어떻게든 열심히 한 해를 살아낸 우리. 이미 버리고 비운 채 말없이 서서 수억 번의 겨울을 이겨 낸 인생의 선배 나무가 들려주는 무언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강세기

빨리 이루고 많이 누리기 위해 무겁게 힘주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조금씩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풀과 나무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숲과 산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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