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들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계에 다른 대의민주주의를 견제 및 보완할 시민의회를 도입하고, 새로운 체제에 걸맞는 기후생태헌법을 재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근저에 ‘성장주의’라는 거대서사가 흐르고 있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함을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신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원리이자 운동인 ‘탈성장(Degrowth)’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 이미 많은 분들이 여러 차례 다루었던 주제이지만, 앞서 말씀드린 맥락에서 살펴보려 하니 한번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1. 성장이 불가능한 이유: 지구가 보내는 경고
우리는 오랫동안 성장을 당연한 가치로 여겼지만, 이제는 객관적인 사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끝없는 성장’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기후위기 앞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환상입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이 파리협약 기준을 넘어설 경우, 2050년까지 세계 GDP의 평균 10%에 달하는 경제 손실이 예상됩니다. 극한 기후재난은 일시적인 충격을 넘어 경제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리스크입니다. 성장을 하려고 발버둥 칠수록, 기후는 역으로 우리를 더 깊은 침체로 밀어 넣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입니다.

더 나아가, 성장은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힙니다. 매년 3% 성장이 이어진다면 24년마다 경제규모가 두 배로 커집니다. 이는 경제의 생태·물리학적 한계를 무시하는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지금의 추세대로 가면 21세기 중반 이후 지구 시스템이 붕괴될 거라는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 보고서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듯, 우리는 이미 지구의 ‘물질발자국’ 한계를 초과했습니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지구 자원의 고갈을 야기하며, 한국과 같은 소비 행태를 유지하려면 지구가 4개 이상 필요하다는 분석은 이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함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결국 경제성장은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만을 심화시켰습니다. 성장을 이룬 선진국에서 소득 불평등은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전 세계 상위 10% 부자가 온실가스 배출의 50% 책임이 있다는 옥스팜 보고는, ‘성장’이 곧 ‘정의의 실패’였음을 고발합니다.
2. 탈성장은 ‘성숙‘을 통해 ‘행복‘을 찾는 해방 프로젝트
탈성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이들은 ‘가난해지는 것’, ‘침체로의 회귀’, ‘긴축 재정’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는 탈성장에 대한 가장 큰 오해입니다. 탈성장은 ‘고통’이 아닌 ‘번영(Flourishing)’을 지향하는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선택입니다.
더 적게 소유하고, 더 풍요롭게 존재하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일정하게 자라면 성장을 멈추고 성숙합니다. 경제만은 끝없이 커져야 한다는 강박과 맹목적 믿음에서 벗어나, 이제 질적인 성숙을 지향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행복은 소득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 증명하듯,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지수는 더 이상 높아지지 않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는 개인의 행복을 가장 잘 말해주는 지표가 소득이 아닌 사회적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탈성장은 바로 이 관계와 공동체를 회복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디그로쓰』의 저자들이 말하는 탈성장의 핵심입니다. 단순히 경제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물질 사용량과 시장 거래량 증대를 억지하는 것’을 넘어, “의미 있게 살아가고, 단순한 즐거움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관계 맺고 공유하며, 더 평등한 사회에서 더 적게 일하기”라는 해방 프로젝트입니다. “더 적게 소유하지만, 더 많이 존재한다(Less is More)”는 가치관이 바로 여기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경제 원리는 ‘돌봄’입니다. 이익 극대화 대신 인간과 자연의 안녕을 유지하는 활동(돌봄 노동, 생태계 돌봄)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재정립하고 투자하는 돌봄 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양적 성장(Growth)을 질적 발전(Development)과 번영(Flourishing)으로 대체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3. 탈성장은 이미 시작된 글로벌 트렌드

탈성장은 더 이상 학계의 이상론이 아닙니다. 이미 과학계와 국제기구, 심지어 일부 지자체의 정책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IPCC ‘제 2실무그룹 보고서’에는 ‘탈성장’을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하며 본문에 15회, 참고문헌에 12회, 총 27회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탈성장은 경제 성장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환경적 지속가능성, 사회정의, 행복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한다”고 명시했습니다(18장: Climate Resilient Development Pathways, p.81-82).
또한 1만 1천 명이 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은 정부들에게 “GDP 성장을 포기하고 좋은 삶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여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과학적 결론입니다. 이 논의는 유럽의 많은 지자체로 확산되어, 바르셀로나나 암스테르담 등에서는 탈성장 개념을 적용한 ‘도넛 경제’ 모델 등을 실제 정책에 구상하고 있습니다. 탈성장은 논의의 차원을 넘어 실제 정치적 행위로 전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4. 탈성장을 현실로 만드는 구체적인 정책들
탈성장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소비 절약을 넘어, 삶의 시스템 자체를 전환할 구체적인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1) 낭비의 고리를 끊어내는 물질 축소

제이슨 히켈은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 물질적 규모 축소를 위한 5단계 해법을 제시합니다. 핵심은 비효율적인 낭비를 줄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생산 규모 자체를 줄이는 것입니다.
1단계) 계획적 진부화 폐지: 계획적 진부화(계획적 노후화)는 기업이 일부러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제품의 ‘보증기간 의무 연장제도’를 도입하고, ‘수리할 권리(수리권)’을 보장하며, 대형기기나 장치들은 ‘장기임대 모델로 전환’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2단계) 광고 줄이기: 광고는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지 않는 것을 구매하도록 만들며 “한 산업의 규모를 조작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공적 공간뿐 아니라 마음까지 식민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광고지출 총량을 줄이도록 하는 ‘쿼터제’를 도입할 수 있고, 심리적 조직 기법을 활용하는 못하는 법안을 도입할 수 있으며, 공공 공간에서 광고를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
3단계) 소유권에서 이용권으로: 소유권이란 개념은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개인마다 가구마다 구매하게 만듭니다. 엄청난 물질자원과 에너지 낭비이며 매우 비효율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대신, 장비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유 모델’로 전환하여 제품 수요 자체를 감축해야 합니다.
4단계) 식품 폐기 없애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 전체의 약 절반(약 20억톤)이 매년 버려지고 있습니다. 식품 폐기는 에너지, 토지, 물, 탄소배출의 측면에서 엄청난 생태적 비용을 나타내지만, 반대로 이는 큰 기회이기도 합니다. 식품 폐기를 없애면 이론상으로는 농업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이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13%까지 줄이면서 24억 헥타르의 땅을 야생동물 서식지와 탄소 격리원으로 복원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5단계) 생태계 파괴 산업 축소: 세계 농지의 60%를 사용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소고기 산업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의 규모를 정부가 급격히 줄여야 합니다. 소고기 대신 식물성 단백질로 먹거리를 바꾸면 미국·캐나다·중국을 합친 크기의 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이곳을 산림과 야생동물 서식지로 돌려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탄소 흡수원으로 매년 8기가톤의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줄 일수 있는데, 이는 현재 연간 배출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궁극적으로 정부는 자원 및 에너지 소비에 상한선을 설정하고 지구의 위험 한계선 이내로 돌아가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2) 노동 해방과 경제적 안전망 구축
탈성장은 노동자를 성장의 강박으로부터 해방하고, 인간의 생존을 자본주의 시장의 필요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노동시간 대폭 단축: 더 적게 일하고 더 풍요롭게 존재할 수 있도록, 주 4일제 또는 주 15~21시간 노동 등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확보된 시간은 공동체 돌봄, 생태계 돌봄, 그리고 여가에 투입되어 삶의 질을 높입니다.
– 보편적 기본 서비스와 기본 소득: 일자리가 줄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주거, 의료, 교육, 교통 등 기본적인 생활 필수재를 ‘보편적 공공 서비스(UBS)’로 제공하거나, 최소한의 ‘기본 소득(UBI)’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개인의 생계 불안을 해소해야 합니다.
(3) 글로벌 정의와 ‘함께 잘 살기‘의 지혜

탈성장은 이미 풍요를 누린 글로벌 북반구(선진국)의 책임입니다. 이들이 과잉 생산과 소비를 줄여 생태적 부채를 갚아야 합니다.
동시에, 탈성장은 개발도상국(글로벌 사우스)에 ‘성장 중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오히려 선진국은 남반구의 부채를 탕감하고, 기후 재난 대응을 위한 재정적 지원과 기술 이전을 제공하여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러한 논의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안데스 원주민의 ‘부엔 비비르(Buen Vivir, 공동체적 잘 살기)’나 ‘탈발전(Post-Development)’ 사상처럼, 시장의 논리 바깥에서 공동체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다중우주(Pluriverse)적 지혜’를 포용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5. 탈성장 전략 캔버스: 거대한 시스템에 맞설 새로운 전략
우리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앞에 대안을 찾지 못하고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을 새롭게 열어줄 전략이 있습니다. 탈성장 연구자들은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의 ‘자본주의 잠식하기’ 전략을 확장해 ‘탈성장 전략 캔버스’를 제시합니다. 자본주의 잠식하기는 마치 어떤 생태계에 외래종이 들어와 틈새를 내고 공생하며 조금씩 우점종을 밀어내어 어느 순간 그 생태계 전체를 잠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해악을 줄이는 측면과, 구조를 넘어서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 틈새적 변혁: 기존 시스템의 ‘틈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확산합니다. (예: 생태마을 건설, 토지, 지식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커먼즈 확대).
– 공생적 변혁: 국가 권력과 제도를 활용해 점진적인 개혁을 이루고 기존 시스템을 길들입니다. (예: 보편적 기본 서비스 도입, 환경 규제 강화).
– 단절적 변혁: 기존 시스템의 근본을 뒤엎는 급진적 변혁을 요구하며 저항합니다. (예: 기후정의 시위, 생태계 파괴 산업의 전면적 금지).

예를 들어 우리가 기후정의 시위를 하게 되면(저항하기) 자본주의의 해악을 줄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틈새를 내는 것입니다. 국가온실가스감축을 위한 법률개정 활동 등은(길들이기) 자본주의와 공생하면서도 해악을 줄이는 일입니다. 생태마을을 만드는 활동은(대안의 건설) 틈새를 내면서도 자본주의의 구조를 넘어서는 전략입니다. 이는 지금 여기에 유토피아를 만드는 ‘나우토피아’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국가의 변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여기서 경험을 하고 영감을 얻고 연습을 하고 부분적으로 승리를 성취하는 실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연결이 될 때, 이 모든 것들이 대안의 모자이크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후정의운동을 한다고 할 때,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어느 영역에서 활동하는지, 또 다른 단체나 어느 영역에서 활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나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비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모두 필요하니까요.
이 모든 노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연결될 때, 이 모든 서사들이 모여 성장주의를 극복하는 탈성장이라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6. 녹색성장이라는 허상과의 물리적 결별

성장사회와의 결별은 다른 형태의 경제성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도 성장할 수 있다(탈동조화;decoupling)는 ‘녹색성장’은 대표적인 가장 위험한 대안입니다. 결론적으로 탈동조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현재 많은 국가들, 특히 기후위기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하는 국가들조차 ‘녹색성장’을 주된 방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2019년 유럽환경국이 발표한 「폭로된 탈동조화(Decoupling Debunked)」보고서는, “각국의 사례분석 결과 탈동조화가 되었다고 해도 상대적(relative) 또는 일시적(temporarily)이거나, 아니면 국지적(locally)인 수준에서만 확인되었고, 대부분은 상대적 탈동조화였다고 합니다. 절대적 탈동조화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단기간이었거나, 특정자원에 국한되거나, 아니면 특정 지역에 한정하거나, 또는 매우 소소한 비율에 불과했다고 보고서는 결론짓습니다. 한 마디로 절대적 탈동조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7. 결론: 성장의 시대를 넘어, 해방의 문명을 건설하자.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갇혀, 우리는 노동의 주체성을 잃었고, 불평등을 방치했으며, 이 아름다운 지구를 파괴했습니다. 이제 그 거대 서사의 종말을 선언해야 할 때입니다. 탈성장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닙니다. 이는 ‘무한한 소유’의 시대에서 ‘풍요로운 존재’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인류의 윤리적, 철학적 결단입니다. 우리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해 시간을 되찾고, 기본 서비스를 통해 생존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며, 돌봄이라는 숭고한 가치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이 약속하지 못했던 진정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장의 시대를 넘어, 우리는 지금 정의롭고 지속가능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새로운 문명의 닻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전환의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더 적게 일하고, 더 깊이 연결되며, 더 크게 변화합시다!
